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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환 Apr 03. 2022

일요일 첫 영업

책방일기 #봄

책 하나 골라봐요. 사줄게요.

아유, 나는 머리 아파. 


가족관계인 것 같은 한 무리가 우르르 들어왔다. 4명 중 두 명은 문턱을 넘었다가 바로 빠져나가시고, 두 명은 한참 동안 서점을 둘러보았다. 두 사람은 책에 관심이 많아 보였다. 밖으로 나간 여자분께 책을 사줄테니 고르라는 호의도 거절당한 남자분은 '나는 책을 잘 안 읽지만 너에게 꼭 사주고 싶다' 이런 강한 의지가 보였다. 책을 사주고(서점주인에게, 가족에게 모두 해당) 싶다의 의지를 읽어서 기분이 좋았다. 


오픈일부터 일요일은 꼭 쉬겠다고 마음먹었었는데, 평일 매출이 떨어지면서 월요일에 쉬고 일요일에는 영업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바꿨다. 때마침 소그룹 모임 시간도 옮겨졌고, 2주간의 격리휴가로 주말에 일할 힘이 생겼기 때문이다. 일요일 영업 첫날인 오늘. 날씨가 참 좋다. 3월에 주말엔 비가 오거나 춥거나 바람이 부는 흐린 날씨가 계속 되어 봄이 도대체 올까 싶었는데, 4월이 되자 거짓말처럼 햇살도 공기도 달라졌다. 

우리 동네는 주말에 특별히 갈 데도 없지만, 가족들이 산책을 다니거나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경우가 많아 일요일에 문을 열면 손님이 평일보단 많겠다는 계산이 섰다. 

책방 손님의 마음은 잘 모르겠다. 책방이란 곳은 세상의 흐름과는 다르게 돌아가는 것 같다. 겨울은 추워서 손님이 안 오고, 봄에는 날씨가 너무 좋아서 손님이 없다.(모두 꽃놀이 가셨나) 여름과 가을에는 어떤 이유로 손님이 없을까 생각하니 아찔하다. 오픈빨은 1월 한달로 끝이었나보다. 그땐 손님이 그래도 많았는데 말이다. 

어제 김지선 작가의 <책방에서 행복을 찾는 당신에게>를 속독으로 읽었다. 새벽감성1집 책방이 마의3년을 지나 4년차에 접어들기까지 책방을 어떻게 꾸려왔는지, 책방주인으로 어떤 생각과 고민을 하고 경험을 했는지 솔직담백하게 쓴 글이었다. 책방 사장님들이 쓴 책은 볼만큼 많이 봐서 이제 좀 지겹다 싶어서 책방 관련 책을 당분간 피하고 있었는데, 역시 책방 이야기는 재미있다. 작가님의 기름기 뺀 담백한 이야기가 잔잔한 공감과 부러움과 응원의 마음을 불러일으켰다. 부러운 건, 작가님은 조용한 책방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는 걸 무척 좋아하고 행복해한다는 거였다. '서점학교' 수업 들을 때 우분투 대표님이 혼자놀기를 잘 해야 책방 주인을 할 수 있다고 했는데, 그말은 곱씹을수록 진리다.

바로 옆 상가에 무인문구점이 오픈을 했다. 10평 남짓의 공간에 장난감, 클레이, 문구, 스티커, 간식 등 아이들이 좋아할만한 모든 것이 오밀조밀 진열되어있다. CCTV가 지켜보고 있지만 간섭하는 어른이 없으니 유치원생부터 중고등학생, 심지어 어른들까지 쉽게 들락날락한다. 그들의 웃음소리가 종종 책방 안까지 들려온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저리도 행복해하니, 문구점은 참 좋겠다. 슬그머니 질투심이 생긴다. 반면 책방은 우선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는 낯설고, 뭐하는 곳인지 정확히 모르겠고, '책'이라고 하니 선뜻 들어서기에는 부담스러운 그런 곳이다. 지금 생각하면 턱도 없는 책방 문턱을 과감히 넘어오신 분들이 참 고맙게 느껴진다. 책을 사는 사람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 사람이다. 

아무튼 일요일도 사람이 없는 건 마찬가지구나. 3월의 어느 월요일이 나았구나.


아직 퇴근 2시간이 남았다. 커피도 한 잔 했고, 간만에 책방일기도 썼다. 점심을 안 먹어서 배는 고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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