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궁내막증 발병에서의 유전학, 후성유전학, 호르몬의 복잡한 상호작용
자궁내막증(Endometriosis)은 가임기 여성의 약 10%에게 영향을 미치는 만성 질환입니다. 극심한 생리통과 만성 골반통을 유발하며, 불임 여성의 경우 유병률이 50%에 달할 정도로 심각한 문제입니다. 하지만 복잡한 병인으로 인해 증상 발현 후 진단까지 평균 7~10년이 걸리는 것이 현실입니다.
오늘은 2020년 Journal of Clinical Medicine에 게재된 논문 "Genetic, Epigenetic, and Steroidogenic Modulation Mechanisms in Endometriosis"를 바탕으로, 자궁내막증이 단순한 부인과 질환이 아닌 유전자와 환경이 얽힌 복합 질환임을 파헤쳐 보겠습니다.
자궁내막증은 가족력이 강하게 작용하는 다인자성 유전 질환입니다.
가족력의 위험성: 중증 자궁내막증 환자의 어머니나 자매는 일반인에 비해 발병 위험이 7배나 높습니다. 쌍둥이 연구에 따르면 자궁내막증 감수성의 약 52%는 유전적 요인에 기인합니다.
유전자 연구 (GWAS): 전장 유전체 연관 분석을 통해 WNT4, VEZT, GREB1과 같은 특정 유전자들이 발병 위험과 관련이 있음이 밝혀졌습니다. 이들은 자궁 발달이나 호르몬 조절에 관여하는 유전자들입니다. 하지만 단일 유전자의 돌연변이가 아니라, 여러 유전자의 작은 변이들이 모여 질병의 위험도를 높이는 구조입니다.
자궁내막증은 '에스트로겐 의존성' 질환입니다. 병변 조직은 정상 자궁내막과는 완전히 다른 호르몬 환경을 조성하여 스스로 생존합니다.
자체적인 에스트로겐 생산: 놀랍게도 자궁내막증 병변은 StAR나 Aromatase (CYP19A1) 같은 효소를 과발현시켜 콜레스테롤로부터 에스트로겐을 직접 만들어냅니다.
수용체의 불균형: 에스트로겐 수용체 베타(ESR2)는 정상 대비 142배나 높게 발현되는 반면, 알파(ESR1)는 9배 낮습니다. 이 비율 차이는 염증 반응을 억제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프로게스테론 저항성: 에스트로겐을 견제해야 할 프로게스테론의 작용이 억제(저항성)되어 있어 병변의 증식을 막지 못합니다.
이 모든 호르몬 교란의 중심에는 SF-1이라는 전사 인자가 있습니다.
정상 자궁내막세포에서는 거의 발견되지 않는 SF-1이 자궁내막증 조직에서는 과도하게 발현됩니다.
악순환의 고리: SF-1은 에스트로겐 합성 효소(Aromatase)의 생산을 자극하고, 만들어진 에스트로겐은 다시 염증을 유발하며 병을 키웁니다.
원인: SF-1 유전자의 프로모터 부위가 '저메틸화(Hypomethylation)' 되어 있어 유전자가 꺼지지 않고 계속 켜져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 연구들은 DNA 염기서열의 변화 없이 유전자 발현을 조절하는 후성유전학(Epigenetics)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자궁내막증 환자의 자궁내막은 DNA 메틸화와 히스톤 변형에 심각한 오류가 발생해 있습니다.
정상적인 유전자 조절이 무너져 어떤 유전자는 과도하게 켜지고(저메틸화), 어떤 유전자는 침묵(과메틸화)합니다.
켜지는 유전자 (저메틸화): SF-1 (호르몬 합성), COX-2 (염증), ESR2.
꺼지는 유전자 (과메틸화): HOXA10 (착상 관련/불임 원인), PR-B (프로게스테론 수용체).
이 도표는 후성유전학적 변화(DNA 메틸화)가 어떻게 에스트로겐 우세(Estrogen Dominance)와 프로게스테론 저항성을 유발하여 자궁내막증을 악화시키는지를 보여주는 핵심 요약도입니다.
왼쪽의 DNA Hypomethylation(저메틸화) 박스는 유전자의 스위치가 '켜지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SF-1 + StAR + Cyp19A1 (↑): 이 유전자들의 메틸화가 풀리면서 과도하게 발현됩니다. 이들은 에스트로겐을 합성하는 공장 역할을 하므로, 결과적으로 에스트로겐(Estrogen) 생성이 증가합니다.
COX-2, PGE2 (↑): 염증 유발 물질이 증가합니다. 이는 다시 에스트로겐 합성을 자극하는 악순환을 만듭니다.
ESR2 (↑): 에스트로겐 수용체 베타가 증가하여 염증 반응을 촉진합니다.
오른쪽의 DNA Hypermethylation(과메틸화) 박스는 유전자의 스위치가 '꺼지는(침묵)' 과정을 보여줍니다.
17β-HSDII (↓): 이 효소는 원래 활성 에스트로겐(Estradiol)을 비활성 형태로 바꿔주는 '브레이크'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과메틸화로 인해 이 유전자가 꺼지면서 에스트로겐을 제거하지 못하게 됩니다.
PR-B (↓): 프로게스테론 수용체가 줄어들어 프로게스테론 저항성이 생깁니다.
E-cadherin, HOXA10 (↓): 세포 접착과 착상에 필요한 유전자가 줄어들어 조직 침습이 쉬워집니다.
결과적으로 (Estrogen Box): 왼쪽에서는 에스트로겐을 계속 만들고, 오른쪽에서는 에스트로겐을 분해하지 못하니 결국 강력한 '에스트로겐 우세' 상태가 됩니다.
하단 박스 (Effects of PGE2 - EP2/EP4 inhibition): 이 부분은 치료적 시사점입니다. 만약 염증 경로인 PGE2 수용체(EP2/EP4)를 억제한다면, 반대로 에스트로겐 우세를 감소(↓ Estrogen dominance)시키고 프로게스테론 반응성을 회복(↑ Progesterone responsiveness)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후성유전학적 변화로 인해 에스트로겐을 만드는 엑셀은 눌러지고(저메틸화), 에스트로겐을 멈추는 브레이크는 고장 난(과메틸화) 상태가 되어, 결국 자궁내막증 병변이 에스트로겐 우세 상태로 치닫는다는 것을 설명하는 그림입니다.
이러한 후성유전학적 이상을 유발하는 상위 원인은 '저산소증(Hypoxia)'과 '염증' 그리고 '에스트로겐'의 복합작용입니다.
에스트로겐은 일반적으로 DNMT의 발현을 증가(또는 유지)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합니다. 하지만 자궁내막증 조직에서는 저산소증(Hypoxia)과 같은 다른 요인이 DNMT1을 억제하는 반대 작용을 하여, 결과적으로 복잡하고 비정상적인 메틸화 패턴이 나타납니다.
정상 자궁내막의 월경 주기에 따른 DNMT 변화를 통해 에스트로겐의 역할을 설명합니다.
증식기(Proliferative phase, 에스트로겐 우세): 이 시기에는 자궁내막의 전반적인 메틸화 수준이 높고, DNMT의 발현도 높게 유지됩니다.
분비기(Secretory phase, 프로게스테론 우세): 자궁내막이 분비기로 넘어가면 전반적인 DNMT 발현이 감소합니다.
즉, 에스트로겐이 우세한 환경에서는 DNMT의 발현이 활성화되어 DNA 메틸화 상태가 높게 유지됨을 알 수 있습니다.
자궁내막증 병변은 국소적으로 에스트로겐 농도가 매우 높으므로, 이론적으로는 DNMT가 높아야 합니다. 실제로 일부 연구에서는 자궁내막증 조직에서 DNMT1, 3A, 3B가 과발현됩니다.
하지만, 자궁내막증 조직은 '저산소증(Hypoxia)'이라는 특수한 환경에 놓여 있으며, 이것이 에스트로겐의 작용을 방해합니다.
저산소증의 작용: 저산소증은 DNMT1의 발현을 하향 조절(Downregulation)합니다.
결과 (복합적 이상): 에스트로겐은 DNMT를 높이려 하고, 저산소증은 DNMT1을 낮추려 합니다. 이 두 가지 상반된 힘과 염증 반응이 섞이면서, 자궁내막증 조직은 특정 유전자는 과메틸화(예: HOXA10, PR-B), 특정 유전자는 저메틸화(예: SF-1, COX-2)되는 뒤죽박죽인(aberrant) 메틸화 패턴을 갖게 됩니다.
"상피세포의 반응이 기질세포의 존재 여부에 따라 달라진다"는 문구는 세포 간의 파라크라인(Paracrine) 상호작용을 의미합니다.
논문에서는 구체적으로, 자궁내막 상피세포의 DNMT1 발현이 스테로이드 호르몬에 민감한데, 이 반응이 주변 기질세포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조절된다고 언급합니다.
이는 호르몬이 상피세포에 직접 작용하기도 하지만, 기질세포를 자극하여 기질세포가 내뿜는 신호 전달 물질을 통해 간접적으로 상피세포의 DNMT 발현을 조절하기도 한다는 뜻입니다.
요약하자면:
에스트로겐 자체는 DNMT 발현을 증가시키는 촉진제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자궁내막증 병변 내의 저산소증이 DNMT1을 강력하게 억제합니다.
이로 인해 SF-1과 같은 병인 유전자 프로모터에서는 메틸화가 풀려버리는(발현 증가) 현상이 발생합니다.
히스톤 탈아세틸화(Deacetylation): 일반적으로 히스톤이 아세틸화되면 유전자 발현이 활성화되고, 탈아세틸화되면 억제됩니다.
자궁내막증의 특징: 병변 조직에서는 전반적으로 **히스톤 아세틸화가 감소(Hypoacetylation)**되어 있으며, 이는 유전자 침묵을 유발합니다. HDAC (Histone Deacetylase) 활성 증가: 병변 세포에서 HDAC 활성이 증가하여 세포 증식을 억제하는 유전자(p16, p21 등)나 분화 유전자(HOXA10)의 발현을 억제합니다.
치료 가능성: HDAC 억제제(HDACI)를 사용하여 히스톤 아세틸화를 복구하면 세포 증식을 억제하고 세포 사멸을 유도할 수 있어 유망한 치료 표적으로 꼽힙니다.
역할: mRNA를 분해하거나 번역을 억제하여 유전자 발현을 조절합니다.
주요 miRNA: 발현 증가: miR-1, miR-29c, miR-143, miR-145 등. 발현 감소: miR-20a, miR-200 family, let-7b 등. 기능: 세포 사멸, 증식, 혈관 신생, 스테로이드 합성 등을 조절합니다. 예를 들어, miR-23a/b의 감소는 SF-1의 증가와 관련이 있습니다.
진단 마커: 혈청 엑소좀 내의 특정 miRNA(예: miR-22-3p, miR-320a)는 자궁내막증의 비침습적 진단 마커로 활용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위에서 언급했듯, 자궁내막증 조직에서 DNA 메틸화 효소(DNMTs)의 발현 이상과 그로 인한 메틸화 패턴 변화를 유발하는 상위 원인(Upstream Drivers)은 크게 미세환경적 요인(저산소증, 염증)과 호르몬 요인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단독으로 작용하기보다 서로 상호작용하며 복합적으로 DNMT의 발현을 조절합니다.
자궁내막증 병변 내의 저산소 환경은 DNA 메틸화 패턴을 변화시키는 가장 강력한 원인 중 하나입니다.
DNMT1의 억제: 저산소증은 **DNMT1의 발현을 감소(Downregulation)시킵니다.
결과: DNMT1이 줄어들면 DNA의 메틸화 상태를 유지하지 못하게 되어, 이소성 기질세포(Ectopic stromal cells)에서 전반적인 저메틸화(Global hypomethylation)가 발생합니다. 이는 SF-1이나 COX-2와 같은 병인 유전자의 과발현을 유도하는 직접적인 원인이 됩니다.
만성적인 염증 상태와 그로 인해 생성되는 물질들이 후성유전학적 효소를 조절합니다.
PGE2 (Prostaglandin E2): 자궁내막증의 핵심 염증 매개체인 PGE2는 EP2 및 EP4 수용체를 통해 신호를 전달하며, 이는 DNMT3A의 발현 유지에 관여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상호작용: 전염증성 사이토카인(Proinflammatory cytokines)은 미세환경 신호로서 후성유전학적 인자(Epigenetic players)를 조절합니다.
자궁내막증은 에스트로겐 의존성 질환이며, 호르몬 자체가 후성유전학적 변화를 유도합니다.
호르몬에 의한 DNMT 조절: 스테로이드 호르몬은 정상 자궁내막에서도 DNMT의 발현을 변화시킵니다.
자궁내막증에서의 작용: 병변 조직에서 국소적으로 과잉 생산된 에스트로겐(Estradiol)은 DNMT, 특히 DNMT1의 발현에 영향을 미쳐 메틸화 패턴 이상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기질세포의 영향: 상피세포의 스테로이드에 대한 반응(즉, DNMT 발현 변화)은 주변 기질세포(Stromal cells)의 존재 여부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복합적 작용: 유전적 요인, 면역 반응, 결함 있는 에스트로겐 대사, 그리고 환경적 요인들이 잠재적으로 연결되어 비정상적인 DNA 메틸화를 유발하는 메커니즘으로 작용합니다.
환경적 자극: 식이, 스트레스, 환경 독소 등의 외부 요인도 후성유전체(Epigenome)에 영향을 주어 질병의 시작에 기여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요인들이 개별적으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저산소증(Hypoxia), 염증(Inflammation), 스테로이드 경로(Steroidogenic pathway)"가 함께 작용하여 비정상적인 DNA 메틸화 패턴을 만듭니다.
저산소증 및 염증 발생 ➞ DNMTs (DNMT1, 3A, 3B) 발현 이상 유발 ➞ 유전자 프로모터의 과메틸화/저메틸화 발생 ➞ SF-1, Aromatase 등 병인 유전자 발현 증가 ➞ 에스트로겐 생성 및 염증 심화 (악순환)
자궁내막증은 유전적 소인 위에 후성유전학적 변화(DNA 메틸화, 히스톤 변형, miRNA 조절 장애)가 더해져 발생하는 복잡한 질환입니다.
후성유전학의 중요성: 유전적 변이는 바꿀 수 없지만, 후성유전학적 변화는 가역적(Reversible)이라는 점에서 치료의 중요한 표적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