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병리적인 원인‘이 있었다면 벌써 돌아가셨을 거에요”
2024년 6월 17일
불명열이 난지는 1년이 넘었지만, 5월부터 유난하게 체온이 높았고, 최근 며칠간은 하루종일 38도 정도의 고열이 지속되어 힘들다. 에어컨 바람을 귀 쪽에 쐬고 있어야 37.5도 정도로 내려간다. 아침에 일찍 눈이 떠져서 유튜브를 보다가 다시 잠이 들었다. 천식 아닌 천식(검사 수치가 진단 기준에 못 미쳤기에) 기침이 나서 잠이 자꾸 깼지만, 기침에 오기가 생겨서 억지로 다시 잤다. 그러는 2시간 동안 무슨 일인지 악몽을 여러 개 꾸었다. 온몸에 힘을 주며 자서 몸살이 났다.
누운 상태에서 남편에게 전화를 해본다. 조금 통화를 하고, 거실로 나와 거실 창을 열고 환기도 시키고 에어컨도 틀었다.
현재 체온 38.0도, 이건 마음의 여진이다.
2024년 6월, 그나마 집에서 하던 온라인 영어 강의를 모두 정리하고 본격적인 휴직에 들어갔다. 처음엔 쉬는 동안에도 뭐라도 해보고 싶은 마음에, 또 한 편으로는 몸의 관찰을 위해서, 유튜브 영상을 만든다던지 흥미로운 AI 툴 공부를 한다던지 하며 매일 얼마간이라도 앉아서 뭔가 해보려 애썼다.
한 달도 못 가고 7~8월 한여름은 극심한 통증과 지속되는 불명열로 흐지부지 지나갔다. 9월은 통증이 더 심해진 건지 견디는 힘이 약해진 건지 거의 누워 잠을 잤고. 올 초부터 크고 작은 병원들에 다니다가 10월에서야 불명열의 원인을 찾을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처음부터 원인을 찾을 거란 기대는 없었다. 그나마 암 같은 병이 없다는 것만 확인한 셈이다. 외출을 못 한 것은 지난해, 2023년 5월부터이고 체온이 높다는 것을 자각한 것은 10월이었으니까 만약 '병리적인 원인이 있었다면 벌써 돌아가셨을 것이다.'라는 반우스갯소리도 들었다.
그렇게 다른 병리학적 이상이 없는 것을 확인한 후 드디어 찾아간 신경외과에서 극심했던 골반과 하반신의 통증이 결국은 척수 낭종 때문이라는 것, 그리고 신경이 붙어 있어 수술은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수술 가능하다 하더라도 척추 수술을 쉽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며칠은 통증 때문에, 며칠은 충격에, 며칠은 생각에 잠겨서 또 누워서 보냈다.
그렇게 두 달쯤 누워 보내다가 하루는 날을 잡고 근 2~3년 눈에 거슬렸던 주방 아일랜드 정리를 했다. 선반을 주문하고, 밥솥과 그릴, 커피 머신 따위를 옮기고.. 작은 주방에서 주방 기구들과 자질구레한 물건들로 꽉 차서 제 역할을 못 하던 아일랜드가 깔끔히 정리되고 나니 요리나 식재료 정리나 플레이팅에 쓰일 공간이 확보되었다. 두 달쯤 누워 보내니 하루는 무언가 미뤘던 일을 할 에너지가 생긴 것이다. 문제는 그날 이후 옷 벗고 입는 게 힘들 정도의 왼쪽 어깨 통증으로 한 달은 고생했다는 것이지만, 이게 나에겐 정상이다.
11월 초 어느 날 밤에 남편에게 ‘그냥 마음 내려놓고 잠이나 많이 잘 걸, 쓸데없이 뭘 해보겠다고 그랬나 봐’라고 했다. 특정한 주제가 없이는 말이 없는 경상도 남자인 남편은 ‘뭐가 쓸데가 없어’라고 말했다. 그 나름의 위로고 격려이다. 그래, 어쩌면 아주 쓸데없는 일은 아니었을 거야. 아이맥 키보드를 모니터 거치대 위에 올리고 예쁜 타자기형 키보드를 꺼냈다. 뭘 해도 이뻐야 하는 것도 그렇고 글을 쓸 때는 왠지 이 기계음이 나야 제맛이다.
나는 감정을 억제하며 자랐기 때문에, 그것이 병이 되어 감정을 잘 느끼지 못한다. 어떤 큰 사건이 있어도, 감정을 느끼는 게 아니라 그 앞뒤 모든 상황과 진행, 나의 생각과 반응을 관찰해서 분석해야 한다. 아마 병원을 오가며 울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눈물 한 방울 나지 않는다.
아, 트라우마 반응일 때는 다르다. 바로 뾰족한 신체 반응이 일어난다.
생존을 위협받은 아이는 울지 않는다.
아이들은 부모가 감정을 다루는 방법에 놀라울 정도로 민감하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아이는 긍정적으로 수용되는 감정이 있고 그렇지 못한 감정이 있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알아차린다. -애니 짐머만 / 런던의 마음치유 상담소-
나는 부모에게 나의 존재가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진 경험이 없다. 그것이 아마 기억과 감정 소실의 이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