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내란 사태와 가족이라는 이름의 트라우마

나르시시스트 가족

by Mia 이미아

2024년 12월 3일, 윤석열이 비상계엄을 선포했을 때, 나는 놀라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비상계엄을 선포한 사실에 놀라지 않았다. 21세기 민주주의 사회에서 비상계엄이라는 단어는 상상조차 어려운 일이지만,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는 사실보다 더 무겁게 다가온 건 그것이 사람들에게 어떤 충격을 주었는지, 그리고 그 여파로 인해 벌어진 일이었다.




지난 2년 반 동안, 이 나라는 점점 더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사람들은 윤석열의 성향을 의심하면서도, 막연히 ‘설마’라는 기대를 품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달랐다. 그는 처음부터 나에게 과거의 그림자를 떠올리게 했다. 그의 행동과 말투, 그 속에 드러나는 태도와 사고방식은 나에겐 너무 익숙했다.




내가 “명신이들”이라 부르는 원가족, 부모와 자매들, 그 이름은 윤석열의 부인 김건희의 본명, 김명신에서 따온 것이다. 그들의 이름을 부르기만 해도 내 안에 쌓여 있던 감정들이 되살아나기 때문에 붙인 별칭이다. 그들과 윤석열 부부는 너무나 닮아 있었다. 타인의 고통에는 무감각하고, 오직 자신들의 욕망만이 중요한 사람들.


내가 수술실에 누워 있던 날, 생모는 백화점에서 쇼핑을 했다. 마취에서 깨어나 몸을 일으키려 하자, 병실 문 앞에서 지켜보던 간호사들이 놀란 얼굴로 달려와 나를 붙잡았다. 그런 순간마다 그들에게 나는 무의미한 존재라는 걸 잘 알 수 있었다. 아니, 나라는 존재는 없었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들의 욕망뿐이었다. 그들은 수치심도 느끼지 않았다. 수치심을 느낄 인간의 사유도 양심도 없었다.




12.3 내란 사태는 충격적인 사건이었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드러나 있던 거대한 사회악의 연장이었다. 어쩌면 혼란은 필연적이었을 것이다. 이번 사태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그의 진실을 마주하게 되었다는 점에서는 작은 위안이 되기도 하지만 그 대가가 너무 컸다.


내가 살고 싶어서 손을 내밀 때, 가족들에 대해 이야기할 때마다 들었던, 가족이라면 그럴 수 있다는 말들, 가족끼리 왜 그러냐는 지적들, 내가 잘못했을 거라는 추측들, 그런 뜻이 아니었을 거라는 가해자 편에 선 변명들까지 당시의 깊은 절망감이 지금의 혼란과 겹쳐진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이후의 2주는 나에게도 힘든 시간이었다. 내 몸은 민감하게 반응했다. 예상보다 빠르게 주기가 시작되었고, 머릿속은 멍했다. 시간은 무의미하게 흘렀다. 그리고 어제, 12월 5일 이후로 단 한 줄도 글을 쓰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2024년 12월 5일


온몸이 아프다. 어깨가 돌덩이 같다. 눈이 떠지자마자 비상계엄 관련 뉴스를 확인하고 몸을 왼쪽으로 굴려 모로 눕는다. 어깨를 감싸고 몸을 둥글게 웅크리며 ‘내가 오늘 꼭 해야 할 일이 있나?’가 뿌연 머릿속으로 하는 첫 번째 생각이다. 언제 몸 상태가 갑자기 나쁠지 모르고, 나쁘더라도 살아남기 위해 해야 할 일은 꼭 해내야만 했던 양극단을 살아와 몸에 밴 습관이다.


예를 들면 스스로 휴직하기 전, 올해 상반기까지는 불명열로 열이 38도가 넘더라도 수업은 꼭 해내야 했다. 그러기 위해 다른 모든 활동은 극도로 제한한다. 에너지를 아껴야 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여가로 하던 소소한 취미부터 시작해서 소셜 활동이나 외출, 매일 하던 청소•설거지• 빨래 같은 집안일의 빈도를 줄이고 먹는 것을 간편식으로 바꾸기도 한다.


물은 원래 많이 마셨지만 이젠 하루 3리터는 넘게 마시고, 갈증이 해소되지 않거나 38.5도 이상의 고열로 올라가면 전해질 음료에 얼음을 가득 부어 마신다. 그래도 열은 내려가지 않는다. 해열제는 당연히 듣지 않는다.




오늘 또 침대 무드 등을 켠 채 잤구나. 불안이 심한가 보다. 햇빛에 취약하고, 빛에 민감해 암막을 필수로 하던 내가 밤에 불을 켜고 자기 시작한 건 정확히 2012년이었다. ‘그 사건’ 이후 어둠에 공포가 생겨서 불을 켜고 잔다. 처음엔 형광등을 켜고 잤다. 욕실에 있는데 누가 실수로 불을 끄기라도 하면 공포로 소리를 질렀다.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것은 그래도 여전히 빛에 민감해서 지금은 안방에 딸린 드레스룸 안에 아주 작은 무드 등을 낮은 조도로 켜고 얇은 커튼까지 치고 잔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틀째 침대 머리맡 무드 등을 켜둔 채 자고 있다.




겨우 이틀 잠을 설쳤다고 오른쪽 허벅지 안쪽과 뒤쪽, 피부가 연한 곳에 발진이 심하게 올라왔다. 번지지 않으려면 오늘은 최대한 누워있어야겠다. 예전엔 병원에 가서 접촉성 피부염 약을 처방받아먹고 연고를 발랐는데 잘 낫지도 않고 착색이 남았다. 우연한 기회로 나에겐 자운고가 훨씬 잘 듣는다는 것을 알게 된 후엔 이 정도 발진으로 피부과에 가지 않는다.

(*그렇지만 자가면역질환 검사는 양성이 나오기도 하고 음성이 나오기도 하며, 수치가 기준 미달이라 진단이 나오지 않는다.)




트라우마는 내 몸과 마음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몸은 내 마음대로 되지 않고, 기억은 흐릿해지고, 단어는 쉽게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기록을 남겨야 한다. 그래야 나와, 그리고 나의 어린 나 자신이 여기 있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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