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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명 없음'의 함정

보이지 않는 고통

by Mia 이미아

"이상 없습니다." 이 말을 듣고 안도했던 적이 몇 번이나 있었을까? 병원에 갔다가 검사를 마치고, 의사가 ‘정상’이라는 판정을 내리면 다행이어야 하는데, 나는 오히려 더 큰 혼란에 빠졌다. 처음 진료실에 들어가면 의사는 심각한 얼굴로 내 증상을 경청하지만, 검사 결과가 정상 범위로 나오면 태도가 급격히 바뀐다. 나는 분명히 아픈데, 어디에도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고통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내 몸이 나를 속이는 걸까? 아니면 아직 의학적으로 규명되지 않은 질환이 내 몸속에서 조용히 진행되고 있는 걸까?


보이지 않는 질병을 가진 많은 사람들은 비슷한 경험을 한다. 병명이 없으면 환자가 아니라는 듯한 시선, 이해받지 못하는 증상들, 병원을 전전하다가 결국 혼자 해결해야 하는 현실에 부딪힌다. 우리 의료 시스템은 명확한 진단과 수치화할 수 있는 증상이 없는 사람들에게 지나치게 가혹하다. 신체화 장애, 자가면역 질환경계에 있는 사람들, 만성질환 환자들은 병명조차 받지 못한 채 각자도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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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가 말하는 '보이지 않는 고통'삶을 지탱하는 가장 근본적인 토대가 무너졌음을 의미한다. 마음의 긍정이나 의지로 극복할 수 없는 단계, 즉 몸이 버티지 못하면 마음 또한 기능할 수 없다는 절박함이다. 이 절박함을 인식하지 못하면, 환자의 언어는 단순한 의지 부족으로 오해된다.


그러나 현실의 진료 현장에서는 의사들이 이를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검사 결과에 나타나지 않는 고통을 설명할 언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의사들이 자신의 무지나 한계를 솔직하게 드러내기보다 이를 모호한 진단명이나 ‘정신적 요인’이라는 포장으로 감추는 것이다. “신경성입니다”, “스트레스성입니다”라는 말은 전문적 판단처럼 들리지만, 사실상 원인을 알 수 없음을 가리는 방패막이가 되곤 한다. 이는 환자의 증상을 있는 그대로 다루지 못하는 회피이며, 의료의 신뢰를 무너뜨린다.




검사 결과가 정상이라는 이유로 고통이 무시되는 현실은 환자에게 더 깊은 무력감을 심어준다. 의사는 검진을 마친 후 환자의 상태를 설명하면서 "큰 문제는 없습니다"라고 말하지만, 환자는 여전히 일상생활을 유지하기 힘들 정도의 고통을 겪는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다 보면, 환자는 스스로 의심하게 된다. ‘혹시 내가 예민한 걸까?’, ‘내가 상상 속에서 병을 만들어내는 건 아닐까?’ 그러나 신체 증상은 명확하다. 통증, 피로, 만성적인 염증 반응 등은 존재하지만, 이를 증명할 수 있는 객관적인 검사 수치는 나오지 않는다.


그 결과 많은 환자들이 진료실을 떠나면서 절망감과 좌절을 느낀다. 의료진이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지 않고 ‘정신적 요인’으로 돌리는 관행은 환자에게 이중의 상처를 준다. 단순히 원인을 모른다고 말하는 대신, 그 공백을 환자 탓으로 돌려버리는 것이다. 이는 환자를 더욱 고립시키고, 의료 불신을 확대시킨다. 결국 필요한 것은 완벽한 해답이 아니라, 모른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와 환자와 함께 찾아가는 태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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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중요한 점은, 나는 이 글에서 이러한 질환을 진단된 심각한 질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과 비교하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고통의 비교는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그 의미가 없다. 다만, 명확한 병명이 없다는 이유로 의료적 지원과 이해를 받지 못하는 또 다른 환자들의 이야기를 조명하고자 한다.


일부는 여러 병원을 전전하다가 결국 대체 치료나 비과학적인 요법에 기대기도 한다. 이는 현대 의료 시스템이 만들어낸 또 다른 문제다. 체계적인 의료 지원을 받지 못한 환자들이 의료 시스템 밖에서 해답을 찾으려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방법은 종종 비효율적이거나, 오히려 증상을 악화시키는 경우도 있다.




진단명이 없다는 것이 곧 건강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증상을 겪는 사람이 있다면, 그에 맞는 치료와 대책이 필요하다. ‘정상’이라는 말로 덮어버릴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질환을 겪는 사람들이 의료 시스템 안에서 적절한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바뀌어야 한다. 병명이 없다는 이유로 환자의 증상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더욱 세밀한 연구와 장기적인 모니터링이 필요하다.


또한, 환자 스스로도 자신의 증상을 기록하고, 자신의 몸을 객관적으로 관찰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의료 시스템이 완벽하지 않다는 점을 인정하고, 내 몸에 대한 정보와 경험을 정리해 의료진과의 대화를 더욱 구체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환자의 경험은 단순한 주관적인 감각이 아니라, 임상 데이터의 수집이란 방향으로 접근해야 한다.


‘이상 없다’는 말이 절망이 되지 않도록, 의료계는 보이지 않는 질환을 이해하고 지원할 수 있는 새로운 접근법을 고민해야 한다. 환자 또한 자신의 경험을 소중히 여기고, 자신에게 맞는 의료적 해결책을 찾아가는 여정을 지속해야 한다.


이번 이야기가 그 여정에 관해 함께 고민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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