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가면역질환, 만성질환 경계에 선 사람들
내 몸은 분명한 신호를 보내고 있는데, 병원에서는 ‘정상’이라는 진단이 나온다. 하지만 피로는 여전하고, 증상과 통증은 사라지지 않는다. 일상은 지속적인 불편 속에서 이어지고 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쉽게 무시된다.
나는 환자가 맞을까, 아니면 단순히 예민한 사람일까? 이런 질문이 머릿속을 맴돌며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든다. 진단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의료 시스템과 사회는 내 고통을 쉽게 인정하지 않는다. 때로는 "그냥 좀 쉬면 나아질 거야"라는 말이 오히려 나를 더 지치게 만든다. 정말로 쉬는 것만으로 나아질 수 있었다면, 나는 벌써 건강해졌을 것이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질병을 가진 사람들은 자주 ‘진짜 환자가 아니다’라는 말을 듣는다. 만성 피로, 지속적인 통증, 소화 장애 같은 증상들은 외형적으로 보이지 않고, 검사나 수치로 증명되지 않기 때문에 환자의 말을 쉽게 무시하는 경우가 많다. "스트레스 때문이에요", "신경을 덜 쓰면 나아질 거예요" 같은 말들로 진료가 마무리되기도 한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질병은 실제로 존재하며, 많은 환자들이 신체적 고통과 함께 사회적 낙인이라는 이중의 부담을 겪는다. 신체적인 증상만으로도 충분히 힘든데, 자신의 상태를 끊임없이 증명해야 하는 정신적 스트레스까지 감당해야 한다. 현대 의학이 발전했음에도 불구하고, 만성 피로 증후군, 기능성 소화불량증, 만성 통증 등은 뚜렷한 검사 결과로 진단받기가 어렵다. 이 때문에 환자들은 의료진과 주변 사람들로부터 "꾀병"이라는 낙인을 받을 때가 많다.
겉으로 보기엔 멀쩡해 보이는 사람이 계속 병원을 다니면 ‘건강염려증’이라는 오해를 받는다. 병가를 내기도 쉽지 않고,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의 상태를 설명하는 것도 부담이 된다. 결국 환자는 자신의 아픔을 표현하는 것조차 포기하게 된다. 보이지 않는 질병을 가진 사람들은 점점 더 고립되고, 필요한 치료와 지원을 받지 못한 채 버텨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사람들은 악의 없이 “어디가 아파?”, “왜 아픈 거야?”, “요즘 몸은 좀 어때?” 같은 질문을 가볍게 던진다. 하지만 이런 질문이 환자에게는 또 하나의 부담이 된다. 보이지 않는 병을 설명하는 것은 쉽지 않다. 병명이 없고, 명확한 원인을 알 수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내가 원인을 알았다면, 이미 해결하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해답이 없으니 설명조차 고통스럽다.
병명을 설명할 수 없을 때, 환자들은 대개 ‘너무 신경 쓰지 마’, ‘운동하면 좋아질 거야’ 같은 가벼운 위로나 조언을 듣는다. 좋은 의도라는 걸 알지만, 이런 말들은 환자의 아픔을 더욱 외면하는 느낌을 준다. 누구보다도 건강해지고 싶은 사람은 환자 자신이며, 누구보다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것도 환자 본인이다. 좋은 의도라도 너무 쉽게 던지는 말들은 때때로 허무함을 안긴다. 오랜 시간 동안 몸과 싸워온 환자들에게는 효과 없는 해결책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고통을 인정하고 이해해 주는 태도가 더욱 절실하다.
마치 오랜 친구가 아무 말 없이 곁을 지켜주는 것처럼. 그저 누군가가 판단 없이 이야기를 들어주기만 해도 환자에게는 큰 힘이 된다. 긴 설명이나 거창한 해결책이 없어도, 조용한 경청이 더 많은 것을 전한다. 경계에 서있는 환자는 답을 찾기보다, 자신의 고통이 진짜라는 사실을 누군가가 인정해 주길 바란다. 해결책보다 먼저 필요한 것은 그저 곁에 머물러 주는 마음이다.
우리는 이제 증상을 치료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 증상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적응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완치되지 않는 증상 속에서도 일상을 유지하고, 나만의 삶의 방식을 찾아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현대 의학의 한계를 인정하고, 분명히 존재하는 진단명이 없는 병을 억지로 부정하기보다, 그 안에서 몸과 균형을 맞춰 살아가는 방법을 찾도록 돕는 것이 지금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일지 모른다.
진단을 받지 못한 고통은 환자의 삶을 깊숙이 파고든다. 병원을 찾으며 치료의 가능성을 기대하지만, 반복되는 검사와 정상 소견 속에서 환자는 점점 더 지쳐간다. 심지어 나는 지난 10여 년 간 아파도 병원을 찾지 않았다. 전과 같은 대답만 돌아올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일까? 더 이상 보이지 않는 병을 단순한 신경성 문제로 치부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고통 자체를 인정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해결책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잘 사는 법을 고민하고 이해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 아플 때 자신의 증상을 숨기지 않고, 증명하지 않아도 존중받을 수 있는 사회. 그저 있는 그대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이 나와 비슷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진정으로 바라는 변화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