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질지 모른다는 두려움
나는 환자가 되지 않으려고 애쓴다. 병원에 가는 것도, 누군가에게 아프다고 말하는 것도 쉽지 않다. 나 스스로도 인정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내 몸은 분명 신호를 보내고 있지만, ‘이 정도쯤이야’ 하며 넘겨버린다. 아닌 척하면 안 아플 거 같은 어리석은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애써 외면하는 동안, 몸은 점점 더 지쳐간다.
어느 순간부터 피로는 단순한 피로로 설명할 수 없었고, 통증도 하루 이틀 쉬어서는 나아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아프다고 인정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나는 아프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내 삶이 환자로 규정될 것만 같았다. 어릴 적 경험을 떠올려 보면, 아프다는 걸 인정하는 것이 곧 내 존재를 부정당하는 일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버텼지만, 내 몸은 이미 한계를 넘어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 신호를 애써 무시했다. 몸은 멈추라고 끊임없이 경고했지만, 나는 여전히 괜찮다고 스스로를 속였다.
아프지만 쉽게 아프다고 말하지 않는다. 사람들의 시선이 두렵고, 어디가 잘못된 것 같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하기조차 망설여진다. "요즘 괜찮아 보여"라는 말을 들으면, 정말 괜찮은 사람처럼 행동해야 할 것만 같다. 병원에서는 검사 결과가 정상이니 걱정하지 말라 하지만, 나는 결코 안심할 수 없다. 증상은 여전하고, 일상은 점점 더 버겁다. 그래서 스스로를 다그친다. ‘더 강해져야 해.’, ‘이 정도 아픈 건 다 겪는 일이지.’ 그렇게 밀어붙이다 보면 언젠가 나아질 거라 믿는다. 하지만 그런 믿음이 내 몸을 더 멀리 내몰고 있다는 걸 나중에야 깨닫는다.
그렇게 버티다 보면 언젠가는 나아질 거라 믿으면서 어떻게든 견디고, 숨기고, 일상에 적응하려 한다. 혹시라도 약해 보일까 봐, 민폐를 끼치는 사람이 될까 봐, 나 자신을 더욱 엄격하게 다룬다. 하지만 몸은 속이지 못한다. 무리한 하루를 보내고 나면 더 큰 반동이 찾아온다. 피로가 몰려오고, 사소한 감기도 쉽게 낫지 않는다. 작은 움직임에도 숨이 차고, 전날 했던 일의 대가가 몇 배로 되돌아온다. 그제야 나는 내 몸을 너무 몰아붙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주의하려고 해도, 그 무리함의 정도가 예측하기 어렵다는 것이 늘 문제다. 하루 4시간은 앉아 있을 수 있겠지 했는데, 그것도 무리가 되어 버렸다.
하지만 더욱 어려운 건, 무리했다는 걸 깨달았을 때조차 ‘그래도 이 정도면 괜찮아’라고 타협하려는 마음이다. 정말 이대로 괜찮은 걸까? 이렇게 버티는 것이 맞는 걸까? 아니면 더 이상 버티지 않는 방법을 찾아야 할까?
나는 언젠가부터 ‘아프지 말아야 한다’는 강박 대신, ‘이 몸과 함께 살아간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처럼 질환을 인정하는 건 포기가 아니라, 더 나은 삶을 위한 첫걸음이다. 나는 쉬어야 할 때 쉬고, 무리하지 않도록 조절하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 완벽하게 나을 수 없더라도, 지금의 몸으로 살아가는 방식을 익히는 것. 그것이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는 걸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
억지로 침대에 누워야 하는 상태가 되어서야, 내가 내 몸을 얼마나 몰아붙였는지 깨달았다. 피로가 쌓여도 멈추지 않았고, 통증이 반복되어도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결국 무너진 것은 내 몸이 아니라 나 자신이었다. 질환을 받아들이면서 비로소 나를 돌볼 준비가 되었다. 하루의 에너지를 어떻게 나누고, 무엇을 줄여야 하는지를 배워가며 조금씩 조심스러운 균형을 찾았다. 예전에는 ‘해야 한다’와 ‘할 수 있다’ 사이에서 끝없이 자신을 몰아붙였지만, 이제는 ‘지금의 몸으로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이라는 기준으로 하루를 살아간다.
어릴 적부터 가족 내 학대를 겪으며, 아프다는 말을 꺼내면 늘 비난과 조롱이 돌아왔다. 열이 나거나 다쳐도 ‘별것도 아닌 일로 징징댄다’ '너만 왜 유난이냐'는 말을 들었고, 울거나 힘들다고 하면 방으로 쫓겨나 혼자 앓았다. 그런 경험이 쌓이며 ‘아프면 버려진다’는 공포가 깊이 각인됐다. 그 두려움은 어른이 된 지금까지 이어져, 조금만 힘들어도 ‘이 정도로는 아프다고 하면 안 된다’며 스스로를 단속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몸이 약한 사람이라는 꼬리표를 피하려 애썼지만,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나를 지키는 것이었다. 질환을 부정한다고 사라지는 것도, 버틴다고 나아지는 것도 아니었다. 이제는 내 몸의 신호를 무시하지 않고, 필요한 만큼 돌보며 살아가려고 한다.
나는 여전히 환자가 되고 싶지 않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 몸이 보내는 신호를 무시할 수는 없다.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일상을 유지하고, 내 몸이 허락하는 만큼의 삶의 방식을 찾는 것이 더 현실적인 목표라는 걸 점점 깨닫고 있다. 억지로 버티는 것이 아니라 내 몸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조절하며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