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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과 AI, 몸의 언어 번역하기

데이터를 남긴다는 것의 의미

by Mia 이미아

불명열이 시작된 뒤, 건강검진 전문 병원에서 받은 조언대로 열을 재기 시작했다. 타임스탬프 어플로 날짜와 시간을 기록하며 체온계를 찍었다. 1차 병원에서는 “2차 병원에 가기 전, 일주일치라도 그래프로 만들어보면 패턴이 보일 것”이라고 했다. 이미 경험으로 뚜렷한 규칙이 없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기록표를 만들었다.


7월 초, 아침 체온이 37도 초반에서 출발해 오후에는 38도까지 치솟았다. 기립 시 혈압이 20 가까이 변동하며 어지럼증이 겹쳤고, 8월에는 습도가 높은 날마다 허리 통증과 발열이 동시에 심해졌다. 그러나 2차 병원 전문의는 내 기록을 잠시 쳐다보기만 했을 뿐, 읽어주지도 않았다.


그저 기록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이 수치가 실제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그리고 최소한 내가 어떤 병원을 찾아야 하는지조차 나는 알 수 없었다. 그래서 AI를 활용하기 시작했다. 매일 일정한 방법으로 수치를 기록하고, GPT에게 “이 수치의 변화가 의미하는 게 무엇인지”를 물었다.


AI는 내가 놓친 흐름을 짚어냈다. 예를 들어, 아침 혈압이 안정적이더라도 일어나서 3분 안에 수축기 혈압이 20 이상 뛰는 날에는 대체로 두통과 피로가 함께 나타난다는 점. 혹은 습도가 높은 날엔 허리 통증, 어지럼증이 심하다는 점 등. 내 기록이 단순한 숫자에서 ‘해석된 언어’로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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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시시스트 가족에게서 벗어난 가스라이팅 생존자. 내 글을 통해 독자들이 자신의 상처를 이해하고, 트라우마와 함께 살아나가는 과정을 발견하기를 바라며 용기를 내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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