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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남은 기억

생존자 죄책감 (survivor’s guilt)

by Mia 이미아

오늘은 ‘몸’의 이야기를 잠시 내려놓고 마음의 영역으로 눈을 돌린다. 사고와 학대 이후의 생존자의 몸이 신호를 보내듯, 마음도 자신만의 언어로 이야기를 꺼낸다. 그중 하나, 아니 가장 집요했던 언어가 ‘죄책감’이었다. 폭력과 재난을 통과해 살아남았다는 이유만으로 등에 얹힌 무게. 원가족의 학대 안에서 아파도 참아야 한다는 규칙, 부당함 앞에서 조용히 있으라는 강요가 일상이던 시절, 나는 내 존재가 나의 부재를 증명하는 듯 느꼈다. “내가 더 빨리 벗어났다면, 내가 더 저항했다면.” 마음속 문장은 늘 반복되었다.


비슷한 감정은 사고와 재난의 생존자들에게도 낯설지 않다. 전쟁터에서 돌아온 군인은 동료가 쓰러진 순간 자신만 살아 돌아왔다는 이유로 평생 죄책감을 안고 산다. 대형 재난의 생존자들은 구조된 직후에도 ‘내가 조금만 더 빨리 손을 잡아줬다면’ ‘내가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하는 문장 속에 갇힌다. 세월호 참사의 학생 생존자들은 친구들의 이름을 부르며 스스로 살아남은 이유를 묻는다. 그들에게 죄책감은 현실을 버티게 하는 동시에 무너뜨리는 힘으로 다가온다.


매번 병원 진료실을 나올 때면 스스로를 의심하는 독백이 뒤따랐다. “의사는 정상이라는데 왜 나는 통증/증상을 느끼지?” “내가 전달을 잘못한 걸까? 내게 문제가 있는 걸까?” 설명되지 않는 고통과 무시당한 감각은 곧 내 탓이 되었다. 통제력을 잃은 순간을 견디기 위해 마음은 책임을 내게로 불러들였고, 그 책임은 죄책감이 되어 머물렀다. 합리적이지 않다는 걸 알아도, 그것이 나를 붙잡는 유일한 ‘이해’처럼 느껴지는 때가 있다.


밤늦게 베개에 얼굴을 묻고, ‘오늘도 잘 버텼다’고 말하기 직전 떠오르는 문장은 습관처럼 늘 같았다. “그래도 내가 더 잘했어야 했다.” 이제 다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주민센터에서 가족관계 단절 관련 업무를 떠올리기만 해도 심장이 빨라지고 손끝이 저려 왔다. ‘나 때문’이라는 낡은 믿음이 다시 깨어나 몸을 휘감았다. 진료실에서 “수치상 정상”이라는 말을 듣고 대책 없이 복도를 나올 때는 막막함에 온몸의 힘이 풀리며 고개가 떨구어졌다. 그 순간 마음은 또다시, “내가 틀렸나?”로 방향을 틀곤 했다.


죄책감은 나를 찌르는 칼날 같았지만, 동시에 작은 희망의 불씨가 되기도 했다. “왜 나는 이렇게 아픈가?”라는 질문은 “나는 문제가 아니다”라는 문장으로 조금씩 바뀌어 갔다. 답을 주지 않는 병원 진료실에서 나와 혼자 복도를 걸을 때면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아야 했고, 집에 돌아와서는 열로 밤새 뒤척이며 시간을 보냈다. 스스로를 의심하며 끝없이 자책하던 기억도 있다. 의사가 ‘아닐 것’이라던 통증의 원인을 내 몸은 매일 신호를 보내며 증명했다. 그 경험들은 내 감각을 믿을 수밖에 없게 만들었고, 나는 기록을 남기기 시작했다. 매일의 증상을 적고, 객관적 수치를 모으고, 짧은 메모를 쌓아가면서 나라는 존재가 조금씩 또렷해졌다.


외상 이후의 변화는 단일한 방향으로 흐르지 않았다. 어떤 날은 무너지고, 어떤 날은 아주 조금 자랐다. 삶의 우선순위가 달라지고, 관계가 깊어지며, 내가 가진 강점이 이름을 얻었다. 어떤 이들은 이를 ‘회복’이라 말하지만, 내게는 단순히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었다. 이전보다 더 성숙한 상태로 다시 짜이는 과정, 그것이 성장이라고 느껴졌다.

‘조용히 있으라’는 명령 대신, 내 감정을 언어로 적어 남기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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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시시스트 가족에게서 벗어난 가스라이팅 생존자. 내 글을 통해 독자들이 자신의 상처를 이해하고, 트라우마와 함께 살아나가는 과정을 발견하기를 바라며 용기를 내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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