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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와 사회 제도의 그림자

설명되지 않는 고통과 2차 가해

by Mia 이미아

내가 가족관계가 이상하다고 뚜렷하게 느낀 것은, 그들로부터 1만 킬로미터 떨어져 지내던 시절이었다. 런던에서 나는 처음으로 내 재능이 인정받고 있다는 확신을 가졌고, 그 재능을 붙잡아 가족에게서 되도록 멀리 도망치고 싶었다. 런던에 간 계기는 더 복잡했다. 언니가 내 신분증을 훔쳐 내 이름으로 신용카드를 만들고 돌려 막기 하다가 천만 원이 넘는 빚이 생겼고, 부모는 그것을 자신들이 해결해 줄 테니 내가 그냥 넘어가는 조건으로 영국 어학연수를 보내주겠다고 했다.


(그것이 부모가 더 적극적으로 내 명의를 도용하기 위한 사전 작업이었던 것을 그때의 나는 알지 못했다.)


그렇게 얻게 된 기회였지만, 집에서 보내주는 돈은 방세와 교통비 정도밖에 충당되지 않아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해야 했다. 여름에는 열 때문에 한겨울 외투를 껴입고 다녔고, 겨울에는 기침이 멈추지 않아 몸살과 발열, 발진으로 고생했다.


나는 런던 서쪽의 오래된 셰어하우스 방 한 칸을 쓰고 있었다. 낡은 카펫이 깔린 100년 된 집, 가끔은 주방에 쥐가 나타나기도 했다. 그때 런던 동쪽 신도시 아파트에 살던 언니들은 나를 데려가 먹이고 재워주었다. 한국에서 살던 현대식 아파트 같은 집이었다. 서쪽 내 방의 월세는 그대로 내고 있었기에 언니들은 방세도 관리비도, 심지어 식비조차도 받지 않았다.


그곳에서 나는 낯선 경험을 했다. 학교에서 돌아온 언니들은 내게 먼저 “오늘은 몸이 좀 어때?”라고 물어주었다. 그런 질문을 받아본 적이 없어 당황했지만 마음이 따뜻해졌다. 아, 자매라는 건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스쳤다. (물론 내게도 친자매가 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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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시시스트 가족에게서 벗어난 가스라이팅 생존자. 내 글을 통해 독자들이 자신의 상처를 이해하고, 트라우마와 함께 살아나가는 과정을 발견하기를 바라며 용기를 내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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