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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의 자리에 서다

금지된 감정의 이름

by Mia 이미아

분노는 내게 오래도록 금지된 감정이었다. 화를 내면 버릇없다고 했고, 억울하다고 말하면 ‘다 너 잘되라고 하는 말이야’로 덮였다. 울면 유난스럽다고, 말대꾸하면 버릇없다고, 침묵하면 눈치 없다고 했다. 어떤 반응도 정답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점점 감정의 방향을 안으로 돌렸다. 목구멍까지 차오른 말들을 삼키고, 억울함을 스스로 설득하며 살아야 했다. 분노를 표현하는 순간 ‘잘못된 나’가 되었다. 그렇게 나는 매번 나를 탓하며, ‘참는 아이’로 자랐다. 그 시절의 분노는 소리 없는 뜨거움으로 내 안에서 타올랐지만, 누구에게도 닿지 못한 채 몸속 어딘가에 갇혀버렸다.


하지만 억눌린 감정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몸 어딘가에 스며들어 불안과 통증, 그리고 무기력으로 형태를 바꾼다. 나의 분노는 소리 없이 깊은 곳에 잠들어 있었고, 그 침묵 속에서 몸은 끊임없이 신호를 보냈다. 억눌린 감정은 심박수를 불규칙하게 만들고, 때로는 혈압을 올렸다가 곤두박질치게 했다.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이 엇갈리며 균형을 잃은 몸은 늘 경계 상태에 머물렀다. 기초대사량은 낮아지고, 회복은 지연되었다. 그렇게 몸은 나를 대신해 분노를 기억하고 있었다.


오랜 시간 나는 ‘좋은 아이’으로 보이기 위해 내 감정을 희생했다. 거절을 못했고, 불합리한 말을 들어도 웃으며 넘겼다. 그러나 그 끝에는 늘 같은 감정이 남았다. ‘왜 나는 늘 참아야 할까?’ 그 질문이 쌓여가며, 내 안의 분노가 경계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분노는 파괴의 신호가 아니라, 나를 지키려는 마지막 경고였다. 나를 침범하는 무례함, 반복되는 가스라이팅, 그리고 설명되지 않는 억울함 앞에서 분노는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방패였다. 타인의 감정에 맞춰 내 온도를 조절하던 나는, 이제야 그 온도를 내 쪽으로 돌리는 법을 배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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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시시스트 가족에게서 벗어난 가스라이팅 생존자. 내 글을 통해 독자들이 자신의 상처를 이해하고, 트라우마와 함께 살아나가는 과정을 발견하기를 바라며 용기를 내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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