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순된 현실과 감정의 공존
나에게 가족이라는 이름은 터부에 가까운 존재였다. 가족을 떠올리면 따뜻함보다 먼저 불안이 스쳤다. 의무감과 죄책감이 뒤섞여 마음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사랑과 두려움, 그리움과 혐오, 연민과 분노가 한 몸 안에 뒤엉켜 있었다. 나를 아프게 했던 그들이었지만, 동시에 그들을 단죄해도 되는가에 대한 도덕적 딜레마에 오랫동안 시달렸다. 이해하려 하고, 용서하려 하고, 기다리기를 반복하다가 끝내는 인연을 끊는 선택을 했다. 그 결정은 해방이면서도 또 다른 상실이었다. 이 감정의 복잡함은 나를 혼란스럽게 했지만, 동시에 내가 여전히 인간이라는 증거이기도 했다.
가해자를 미워하고 싶은 마음과 여전히 이해하려는 마음이 공존했다. 그 모순은 내 마음을 갈라놓았다. 한쪽에서는 분노가 치밀었고, 다른 한쪽에서는 그들을 이해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고개를 들었다. 마음은 늘 반대 방향으로 끌려가며, 어느 한쪽에 서기 어려웠다. 그 끝에서 나는 종종 스스로를 배신자처럼 느꼈다. 하지만 이러한 양가감정은 병이 아니라, 복잡한 관계를 겪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품게 되는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트라우마의 회복 과정에서 이 모순은 특히 뚜렷해진다. 미워하면서도 그리워하고, 도망치고 싶으면서도 여전히 이해받고 싶어 한다. 그 감정의 공존은 나약함이 아니라, 사랑받고 싶었던 마음의 흔적이다.
때때로 나는 과거의 장면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다정했던 순간은 사실 없었다. 나는 언제나 후순위였고, 존재를 부정당하거나 거부당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이니까 이해해야 한다’, ‘가족이니까 그들의 진심은 다를 거야’라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사회 역시 그렇게 가르쳤다. 피로 맺어진 관계는 끝까지 지켜야 한다고, 가족을 미워하는 건 부끄러운 일이라고. 그런 말들이 내 내면의 목소리보다 더 크게 들렸다. 그것은 의무감과 자기 합리화가 만들어낸 희미한 희망이었다. 하지만 그 희망은 늘 배신으로 끝났고, 그때마다 내 안의 사랑과 분노가 뒤섞였다. 사랑받고 싶었던 마음과 상처받았던 기억이 얽혀, 어느 쪽이 진짜였는지 구분하기 어려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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