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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의 기록

가지지 못한 것의 상실

by Mia 이미아

내게 상실은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가지지 못했던 것의 이름에 가깝다. 사람들은 종종 가족을 잃은 슬픔을 이야기하지만, 나는 그 반대의 자리에서 자랐다. 온기를 느껴본 적이 없으니, 결핍은 내게 상실이 아니라 ‘결여의 일상’이었다. 그러나 부재에도 나름의 형태가 있다.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매일의 틈새마다 그림자처럼 스며 있다.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은 순간마다, 그 자리가 텅 비어 있다는 사실로 드러난다. 그 부재는 단지 없음을 뜻하지 않았다. 언제나 거기에 있었고, 나의 일상과 함께 자라났기 때문에 오히려 더 무거웠다. 존재하지 않았던 관계의 공허 속에서 관계의 모양을 상상했고, 그것이 나의 상실이 되었다.


다른 자매들이 부모님의 부드러운 목소리를 들을 때, 그 부드러움이 나에게는 항상 긴장으로 번졌다. 따뜻함의 자리와 공포의 경계가 뒤섞여 있었다. 나는 언제 날아올지 모르는 날카로운 비난과 폭언 때문에 불안함에 떨어야 했다. 그때의 나는 늘 눈치를 살피며 공기의 흐름으로 분위기를 읽어야 했다. 작은 소리에도 몸이 긴장했고, 말 한마디로 상황이 바뀌는 집 안에서 늘 조용히 숨을 죽였다. 그런 날들이 반복되며, '부재'는 곧 내 세계의 기본값이 되었다. 사랑을 받은 적이 없다는 사실은, 언젠가 그것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그래서 상실은 나와 언제나 함께 있었다.


어린 나이에 ‘상실의 시대’라는 제목을 보고, 꼭 읽어야겠다고 마음먹었었다. 내용은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책이 말하는 상실과 내가 겪어온 상실은 전혀 다른 결이었다. 그들의 상실은 잃어버린 관계의 슬픔이었지만, 내 상실은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관계의 공허함이었다. 그 이후 나는 오랫동안 상실이란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질문하며 살아왔다. 누군가에게는 ‘잃음’이 슬픔이라면, 내게는 ‘없음’이 현실이었다. 그것은 부재의 감정이 아니라, 처음부터 손 닿지 않았던 자리의 기억이었다. 그렇게 나의 상실은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존재하지 않았던 것에 대한 기억으로 남았다.


사람들은 상실을 순간의 사건으로 생각하지만, 진짜 상실은 그 이후의 시간에 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 같은 일상, 그러나 모든 것이 조금씩 낯설어지는 시간. 부재는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감정의 층위에서 나타났다. 함께 있어도 닿지 않는 거리, 말을 걸어도 닿지 않는 마음. 그 거리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선명해졌다. 나라는 자아는 여전히 존재했지만, 일부가 상실된 채로 그 간극 속에 머물러 있었다. 그 간극은 마치 따뜻한 공기와 차가운 공기 사이에 생긴 얇은 막처럼, 서로 닿지 못한 채 흔들리고 있었다. 의식은 여전히 현재에 있었지만, 감정은 그 막을 건너지 못한 채 시간의 반대편에 머물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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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시시스트 가족에게서 벗어난 가스라이팅 생존자. 내 글을 통해 독자들이 자신의 상처를 이해하고, 트라우마와 함께 살아나가는 과정을 발견하기를 바라며 용기를 내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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