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와 혼란 사이 그 어디쯤
진실을 알게 된 뒤의 고요는 생각보다 무겁다.
나는 오랜 시간 ‘내가 잘못한 걸까’라는 질문 속에서 살아왔다.그런데 어느 날, 모든 것이 뒤집혔다. 문제는 나에게 있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지만, 그 깨달음은 구원이 아니라 낙하였다. 마치 오래 잡고 있던 줄이 끊어진 듯, 바닥 없는 곳으로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그동안 믿고 견뎠던 이유들이 한순간에 사라지고, 세상 전체가 낯설게 보였다. 내가 감당해 온 고통이 이유 없는 것이었음을 깨닫는 순간, 안도보다 깊은 혼란이 밀려왔다.
그동안 나를 괴롭히던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들의 행동이 ‘폭력’이었다는 걸 이해하게 되자 오히려 더 큰 절망이 찾아왔다. 그 절망은 단지 그들의 잔혹함 때문이 아니었다. 폭력을 폭력이라 인식하지 못한 채 견디던 나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는 그동안 나를 지키려 애쓴 것이 아니라, 버텨내는 법만 배워왔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진실은 자유를 주기도 하지만, 그 자유를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고통이 된다. 부모가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사실, 그들의 관심이 통제였다는 사실, 나의 순종이 생존이었다는 깨달음은 해방이 아니라 오래 묶여 있던 굴레가 풀린 뒤의 공허함 같았다. 익숙한 세계가 낯설어지고, 마음 한가운데에 차가운 바람이 지나갔다. 깨달음의 첫 단계는 눈을 뜨는 일이지만, 그다음은 그 시야를 견디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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