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5월 15일 목요일 / 둘 째 날 / 인천에서 로마로
아침에 일어나 호텔 로비로 내려가 커피를 마셨다. 웰컴 쿠폰으로 무료 음료를 주문할 수 있었는데 얼그레이 티를 주문했다가 커피로 바꿨다. 커피의 맛은 잘 모를뿐더러, 커피콩의 기름이 나와 썩 맞지 않는다는 진단을 받은 뒤로는 커피를 마시지 않게 됐다.
그럼에도 커피를 마시기를 선택할 때는 어떤 기분을 느끼고 싶을 때이다. 긴장을 풀기 위해 향을 피운다던가 편안한 음악을 틀게 되는 것처럼 일종의 작은 의식을 행하는 것이다. 내게 커피는 강한 후각을 자극하는 요소인데 그래서 무조건 따뜻해야한다. 그리고 온도가 잘 유지될 수 있는 머그잔에 담아 편안한 곳에 앉아서 마셔야만 한다. 딱 한 모금씩. 뜨겁고 시꺼먼 액체를 머금고 혀로 이리저리 굴린다. 향이 손끝으로 퍼지면서 세포에 말을 건다.‘나 여기 있어! 안심하고 눈을 떠도 돼!’
물론 커피콩이 말을 거는 것은 아닐 것이다. 진실은 필요한 기분을 만든다는 것이다. 커피향을 제단에 올리면서 최면을 건다. 나는 주로 이 때 새벽의 신을 부른다. 새벽처럼 누구에게나 열려있고 여백 가득한 밝음을 몰고 오는 그녀를 부른다. (그래서 나는 조용한 아침 혼자서 혹은 승일이와 함께. 3시 이전 좋아하는 카페의 햇살 잘 드는 창가 자리에서 혼자 커피 마시기를 좋아한다.) 씁쓸하고 고소한 연료를 넣지 않고도 언제든 기분을 제조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그래도 가끔은 이 지구별 몸뚱이에 기름칠도 좀 해줘야 하지 않을까?
아침에 읽은 책에서 ‘표현된 것은 죽어버린 것’이라는 구절을 읽었다. (정확히 이 문장은 아니고 내가 받아들인대로 다시 만들어낸 문장이다.) 그 책의 작가는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 문장은 정확하다. 그런데 이것도 해야 할 것 아닌가?) 영화 <콘클라베>에서도 로렌스는 콘클라베의 시작에 앞서 연설을 하는 자리에서 이렇게 말한다.
“저는 무엇보다 두려워하게 된 죄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확신입니다. 확신은 화합의 가장 큰 적이요 관용의 가장 치명적인 적입니다. 그리스도조차 십자가에서 확신하지 못하고 외치셨습니다.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믿음은 살아 움직이고 의심과 함께 존재합니다. 만약 확신만 있고 의심이 없다면 신비는 없을 것이고, 더 이상 믿음도 필요치 않을 것입니다.”
확신이야 말로 경계해야할 것이다. 정말 그렇다고?
10년 전만 해도 확실해 보이는 것이 없어서 머리칼을 풀어 헤치고 그것을 찾아 사방팔방 뛰어다녔다. 잃어버린 절대 반지를 찾아다니는 생물처럼. 요가의 길을 접하고 나는 절대 세계에 대한 가설을 점점 믿음으로 변모시켜왔는데, 지금은 몇 가지 가설을 굳게 믿고 있다. (다섯 개의 구체적인 문장은 이 지면에서 생략했다.)
그것들이 확실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아차! 이 생각을 연필 끝으로 태어나게 하기도 전에 내가 저지른 큰 실수를 알아채버렸다! 생략한 그 문장들 끝에 마침표를 꾸욱 찍는 순간, 나는 그것을 뒤로 던져 거들떠도 보지 않았던 것이다. 니체가 설명했던 “우리가 발견한 단어들은 이미 우리 마음속에서 죽어 있다.”는 것이 이와 비슷한 행색일까? 확신하는 순간 그것은 아크릴판으로 제작된 네모반듯한 통에 들어가서 이름 모를 전시관 몇 번 구역에 놓여진다. 나의 여러 자아들은 그것을 가끔 들여다보기도 하고, 아주 가끔 쌓인 먼지를 걸레로 닦아주기도 한다. 하지만 절대 꺼내보지는 않는다. 그것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궁금해 하지 않는다.
아! 나의 믿음이 그런 것이었을 수도! 희미하게 빛나던 이 절대반지가 문방구에서 팔던 색깔이 변하는 건강 반지였을 수도! 나는 다시 길을 잃었다. 그런데 기꺼이, 기쁘게 길을 잃고 싶다. 목적지를 두지 않는 여행자처럼. 목적지가 있을 때는 목적지가 보인다. 어떻게 가야하는지, 얼마나 걸리는지. 가다가 무엇을 볼 수 있는지 알고 있다. 그런데 당신... 방금 당신이 밟고 지나간 들풀 아래에 반짝이던 반지가 있었는데. 보지 못했는가?
우주의 98%는 암흑 물질이라고 하고, 우리는 그것에 대해 모른다. 인간이 아무리 많이 알아봤자 2%이고, 그것도 초인에게 가능한 영역이다. 그러니까 ‘나는 알고 있다’고 확신하는 사람은 지금 내 옆에 널브러진 지우개가루가 ‘내가 다 알고 있다!!!’고 소리치고 있는 것과 비슷한 꼴인 셈이다. 더 많은 열쇠들이 길목에, 수풀 속에, 우연히 만난 사람의 왼쪽 어깨 위에 숨겨져 있다고 생각하니 여행이 더 재미있어졌다. 저기 저 한 점에서 눈을 떼지 않으려 빳빳하게 세우고 있던 목의 긴장을 이제야 좀 풀어본다. 왼쪽 오른쪽 고개를 돌리고 발걸음도 늦추면서. 안녕? 안녕하세요?
참으로 신비롭지 않은가. 목적지를 두어도, 두지 않아도, 길을 제대로 걷고 있어도, 길을 잃어버리더라도. 우리는 그것을 발견하고야 만다. 발견해야만 한다. 태양은 자비로워서 한 점 빛으로, 한 줄기 광선으로, 은은한 햇살로도 그 모습을 드러낸다. 그가 가닿지 않은 곳은 없고 그 자리를 전부 길과 목적지로 만들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