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5월 16일 금요일 / 셋 째 날 / 로마
로마의 중심을 걷다 보면 저절로 하늘을 우러러보게 된다. 테르미니 역에서 나와 조금만 가면 성모마리아와 아기 천사의 조각상이 하늘 가까이에 세워져있고, 골목 귀퉁이를 돌면 마차를 탄 신이 무너져가는 성 꼭대기에 올라가 있다. 강을 건너가는 다리에는 악기를 든 천사, 십자가를 든 천사, 검을 쥔 천사들이 우리처럼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우리보다 높은 곳에서, 큰 날개를 활짝 펼치고서. 조각상일지언정 실제로 머리 위에서 거인만큼 큰 신과 천사들을 두 눈으로 보게 되니 겸손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정말로, 천사들이 이런 모습으로 인간들을 지켜주고 있구나 생각하게 됐다. 실재하는 천사에 대하여 구체적인 상을 그려보았다.
천사의 날개를 좇아 하염없이 걸으니 다리가 아팠다. 아래 허리까지 욱신거릴 때 즈음에 딱 맞춰 성당이 나타났다. 미켈란젤로의 예수 조각상이 있다는 산타마리아 소프라 미네르바 성당에 도착했다. 바티칸 시국의 성 시스티나 성당은 새벽 6시부터 줄을 서서 들어간다는데 이 곳 성당 앞에는 웃옷을 벗고 공을 차는 청소년들만이 활기를 불어주고 있었다. 여기가 맞나? 하고 어두운 성당 안으로 발을 들인 순간...!
순식간에 하늘의 끝으로 넘어온 것 같았다. 분명 인간의 손으로 만든 천정의 돔이지만 결코 손으로 만질 수 없을 것만큼 높게 느껴졌고, 인간의 눈으로 재조립한 스테인글라스 조각이지만 결코 이 세상의 빛이 아닌 것처럼 영롱했다. 성당은 압도적인 어둠으로 가득했지만 스테인글라스 창으로 들어오는 빛은 모든 어둠을 검으로 베어버렸다. 그 아래에 다소곳이 자리잡은 촛불들. 성당 안에서 빛과 어둠은 한 몸이 되어 영화롭게 싸우고 있었다. 그 광경의 목격자이자 참여자로서 긴 회랑을 걸어갔다.
가장 안쪽의 여섯 개의 촛불과 십자가, 파란 여덟 꽃잎의 스테인글라스 창, 성인으로 보이는 여섯 인물에 이끌려 안으로, 안으로 들어갔다. 천정에는 신들이 무언가를 쓰고, 읽어주고, 가리키고 있었다. 어떤 상황인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 구체적인 질문은 떠오르지 않았고 그저 의자에 숨을 죽이고 앉아 있었다. 잠시 쉬러 들어왔다는 것은 진즉에 잊어버렸다.
시간이 흐르긴 한 걸까? 어떤 소리가 들렸다. 꿈인가? 꿈은 아니었다. 지나가던 성가대가 들어와서 찬송가를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엔 한 사람의 목소리로 시작된 음율은 다음 사람, 그 다음 사람의 목소리가 얹혀지면서 점점 완전해지고 있었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눈을 감고 두 손을 모을 수밖에 없었다. 익숙한 기도문을 찬송가에 싣어 보냈다. .... Let Light and Love and Power restore the plan on earth ... 한 줄기 빛은 스테인글라스 창을 뚫고 내리꽂힌다. 사랑은 사람들의 목소리를 타고 사방으로 울려퍼진다. 힘은 빛과 사랑으로 직조한 이 세계를 만든다. 하늘에는 영광을, 이 땅에는 평화를. 그 말씀을 아로새긴다.
한참을 머물다 밖으로 나왔다. 아이들은 여전히 공을 뻥뻥 차고 있었다. 다시 길을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