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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경 Mar 30. 2024

셰익스피어의 가장 비극적인 작품, 타이터스

서평) 셰익스피어의 비극 속에서 현대사회에 만연한 분노와 복수를 읽다. 



로마의 남성 중심주의적 가치관에 도전하는 타모라

 - 러비니아와의 비교를 중심으로 



 『타이터스 앤드러니커스 (Titus Andronicus)』작품은 가부장적이고 남성중심적인 고대 로마 제국 시대를 배경으로 하며, 이 극에는 기존 사회가치에 순응하는 인물인 러비니아(Lavinia)와, 이에 저항하는 여성인 타모라(Tamora)가 등장한다. 


당시 로마 제국에서는 남성의 ‘명예’와 여성의 ‘순결’이 가장 중요한 가치였는데, 러비니아는 이에 이용 당하고 타모라는 이를 이용하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이에 타모라와 러비니아가 각각 로마의 시대정신에 어떻게 대응하는지 차이점을 중심으로 두 인물을 비교하고, 이후 타모라와 아론과의 관계, 그리고 타모라와 타이터스의 관계를 비교하여 결론적으로 타모라가 로마 제국에 어떻게 복수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2막 3장에서 타모라와 러비니아가 숲속에서 만나 대화하는 장면을 중심으로 두 인물을 비교하여 로마 제국의 가부장적 사회구조에 두 인물이 어떻게 대응하는지 분석해보겠다. 






  2막 3장에 등장하는 타이터스의 딸, 러비니아는, 여성의 ‘정숙’을 최우선시한다는 점에서 타모라와는 대비되는 인물이다. 그녀는 또 남성중심적인 로마 제국 내에서 여성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가치인 아름답고 정숙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어, 타이터스의 ‘사회적 명예’를 높이는 ‘소유물’로써 존재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5막에서 타이터스는 그녀를 ‘흠하나 없는 정숙함 (5.1.176)'이라 칭하기도 하고, 2막에서 카이론과 아론도 그녀의 정숙이 루크리스와 비교하여도 손색이 없을 정도라고, ‘Lucrece was not more chaste/ Than this Lavinia (2.1. 108-09)’라 표현하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그녀의 삼촌인 마커스조차 러비니아의 아름다움을 칭찬하는데, ‘Kings…/might not gain so great a happiness/ As half thy love? (2.4.19-21)’ 라며 그는 러비니아가 모든 로마 남성의 욕망의 대상이라고 말한다, 이는 모두 러비니아의 ‘정숙’의 가치가 높이 평가되어 그녀 존재자체가 이상화되었기 때문이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정숙’을 상징하는 러비니아는 2막에서 타모라와 숲에서 만나 대립한다. 여기서 러비니아는 타모라의 ‘정숙하지 않음’을 비난하며, ‘Tis thought you have a goodly gift in horning, (2.3.67)’라고 비꼰다. 또, ‘Cuckold라는 노골적인 표현으로 타모라의 불륜을 지적하며 포로 흑인에서 갑자기 황후자리에 ‘간택’당한 그녀를 하대하고 무시하기도 한다. 


  이러한 러비니아의 도발은. 타모라가 황후가 되었음에도 자신을 간택한 황제가 아닌 자신의 욕망을 더 추구하고, 정숙보다는 성적 욕망을 드러내는데 주저함이 없었던 타모라에게 결핍감에 따른 분노감을 부여한다. 또 자신의 맏아들을 눈 앞에서 살해하고, 무릎끓고 애원했음에도 이를 무시해버린 타이터스에게 복수하고자 하는 마음이 이미 있었던 타모라의 화를 더 돋구었을 것이다. 황후가 되었음에도 로마에 소속감을 갖지 못한 타모라에게는, ‘정숙함’이라는 사회적 가치에 따라 로마인의 ‘명예’와 ‘존경’의 대상이 되는 러비니아가 자신의 ‘정숙하지 못함’을 지적한 것이기 때문이다.



 분노의 여신이 된 타모라는 러비니아를 직접 죽이려고 하다가 결국 러비니아가 가장 중요시 여기던 ‘정절’의 가치를 뺏기 위해 아들들을 이용하는 것으로 계획을 변경한다. 이때, 러비니아는 자신을 살려달라 요청하며 역시나 로마의 남성주의적 가치관에 동화된 여성으로서의 모습을 보인다.

 ‘’Tis present death I beg, and one thing more/ That womanhood denies my tongue to tell./ O, keep me from their worse-than killing lust, And tumble me into some loathsome pit/ Where never man’s eye may behold my body. (2.3.173-177)



  

  인용문에 따르면, 러비니아는 자신의 목숨은 죽여도 되지만 죽는 것보다 정절을 지키지 못하는 게 두렵다 말한다. 또 타모라에게 같은 여성으로서의 ‘동정’을 베풀어달라며, 남성의 눈이 닿지 않는 곳에 차라리 묻어달라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타모라는 정절보다는 자신의 욕망을 추구하는 여성이다. 그녀는 타이터스의, 그리고 로마의 가장 큰 명예로운 가치인 ‘여성의 정절’을 철저히 무시하며 자신이 육체적, 성적 욕망을 끝까지 놓지 않고 추구한다. 타모라는 ‘Now will I hence to seek my lovely Moor,/ And let my spleenful sons this trull deflower. (2.3.191-2)’ 라고 말해, 결국 러비니아는 타모라와 그녀의 아들들에 의해 강간당하고 두 손과 혀를 절단당하고 숲에 홀로 남겨지게 된다. 이는 타모라가 러비니아 뿐만 아니라, 딸의 ‘정절’을 본인의 사회적 가치와 동일시했던 타이터스에게도 도전장을 내민 것이라 볼 수 있다. 

 







  다음은 복수의 여신 타모라가 아론을 통해 어떻게 로마와 대항하는지 알아보겠다. 우선 타모라는 고트족의 포로로 끌려온 이후에 새터나이너스에게 갑작스럽게 황후로 ‘간택’받음으로써 최고 권력자라는 신분으로 사회적 위치가 상승하게 된다. 이처럼 타모라는 노골적으로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는 여성이기도 하지만, 로마 황제의 ‘선택’을 받은 순간만큼은 이를 거부하지 않고, 오히려 받아들이고 이용하는 모습을 보인다. 황후가 되어 가장 높은 자리 옆에 앉게 되면 그녀가 복수를 하기 더 용이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로마족과 고트족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피부색으로도 남들과 철저히 구분되어 가장 낮은 사회적 계급에 속한 아론은, 새터나이너스와 반대로, 여성이 주체적으로 성적 욕망을 발산하는 대상이 된다. 






  특히 2막에서 그녀는 ‘Let us sit down and make their yellowing noise. (2.3. 20)라 말하며, 아론에 대한 자신의 성적 욕망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더불어 새터나이너스 황제의 무능함을 이미 눈치채고 있던 타모라는 그를 달콤한 말로 위로하는 척하면서 근본적으로는 그를 조종하며 로마 황제의 권위를 사회적으로도 완전히 매장해버리기까지 한다. 이는 그녀가 아론에 대한 욕망을 감추지 않음으로써 남성의 권위를 무시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로마 황제의 자리에 위치한 남편을 무시함으로써 로마 자체에 대항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타모라의 로마 질서에 대한 위협은 그녀가 아론과의 혼외자를 낳음으로써 절정에 달한다. 당시 로마 사회에서는 여성이 자신의 성적 욕망을 억제하고 정절을 지켜 남편의 ‘핏줄’을 이어갈 수 있게 하는 것이 로마 남성의 ‘명예’에 해당했을 것이기 떄문이다.


 


  이처럼 타모라는 1장에서 자신의 첫째 아들 알라버스를 눈 앞에서 잃고, 그를 살려달라고 무릎끓고 빌었음에도 무시당했던 경험에 대해 타이터스와 더불어 로마 전체에 복수하게 된다. 러비니아를 죽이지 않고, 오히려 로마 사회가 가장 중요시 여기던 그녀의 ‘정절’을 파괴함으로써 복수한 것이다. 특히나 로마 남성의 시선의 ‘대상’이 되었던 그녀의 신체를 조각조각 내어 로마 남성들이 그 비극을 두 눈으로 목격하고, 특히 타이터스 자신이 본인에 닥친 불명예와 부정의를 직면하도록 만들었다. 따라서. 이는 타이터스에 대한 사적 복수이면서 동시에 로마 국가에 대한 복수가 되기도 한다. 사적 복수인 이유는, 타이터스의 ‘사회적 명예’를 높이는 그의 소유물 중 하나를 망가뜨렸기 때문이다. 그녀는 ‘러비니아’의 신체와 정절의 가치를 산산조각내어 타이터스의 사회적 명예를 실추시키고, 명예를 더럽히며 온갖 부정의를 겪도록 했다. 동시에, 한 평생 로마를 지키기 위해 전쟁터에서 목숨을 바쳐온 타이터스는 사실상 로마 그 자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에 이는 로마 전체에 대한 대항이라고 볼 수도 있다. 



  황후가 된 타모라의 노골적인 성욕과 주체적인 욕구 표현 역시 로마의 기존 질서에 대립되는 것으로, ‘핏줄’로 후계자를 정하던 로마 황실을 위협하는 요소라고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타모라는 극 중에서 악인에 가깝게 묘사된 인물이었지만, 동시에 당시 가부장적 사회구조에 대항하여 본인의 욕구에 대해서 주체성을 드러내는 여성 인물이었다는 점에서 의의를 갖는다. 그녀의 행위 역시 복수를 위한 연쇄적 폭력의 일부였으나, 그 당시 가장 많은 사람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는 인물인 타이터스에게, 타지에서 온 여성으로써 맞설 수 있는 힘을 얻었다는 것만으로도 그녀의 입체적인 면을 한 번 더 돌아볼 계기가 되지 않을까.  



Julie Taymor 감독 인터뷰 참고 : https://youtu.be/sYhxFqyB00k?feature=sha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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