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눈처럼 마음속에 내려앉아 스며드는 책
(『작별하지 않는다』, 한강 지음, 문학동네, 2021)
성근 눈이 내리고 있었다.
그렇게 내리기 시작한 눈은 그치지 않고 제주 일대를 다 돌아 꿈과 현실의 경계를 넘나들었고, 펑펑 쏟아져 내린 후에는 읽는 이의 마음까지 먹먹하게 적시었다.
이처럼『작별하지 않는다』는 눈과 같은 책이다. 휘몰아치는 바람처럼 격정적이면서도 소리 없이 내려와 온몸을 뒤덮기 때문이다. 수많은 결정들이 모여서 한 송이 눈의 결정체를 이루듯, 소설의 문장 하나하나, 인물 한 명 한 명이 작품 전체를 이끌고 세상에 내려온 듯했다. 그리하여 ‘성근 눈이 내리고 있었다’는 이 소설의 가장 첫 문장이면서도, 소설을 관통하는 주제적 문장이 된다.
개인적으로 문학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문학이 가진 상징성 때문이다. 다른 글과는 달리, 상징과 은유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이번 소설은 상징의 집합체였다. 따라서 이번 소설의 서평은 이 상징들을 해독해 보는 것으로 작성하고자 한다.
내용에 앞서, 책을 읽으면서 눈에 들어온 것은 기존의 문법을 파괴하는 소설의 형식이었다. 경하의 시점이었다가, 인선의 시점이었다가, 정심의 시점으로 우리는 제주 4.3을 보게 된다. 죽었던 앵무새가 살아난 건지, 아니면 과거를 회상하는 것인지, 병원에 있어야 할 인선이 왜 갑자기 경하와 제주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시공간적으로도 비연결적이다. 심지어 말따옴표도 없다. 그저 이탤릭체로 인물의 발화가 등장한다. 하지만 오히려 이렇게 조각조각 등장하는 정보들로 인해 인선이 만들고자 했던 다큐멘터리를 직접 보는 느낌도 들었다. 또, 이탤릭체는 저자가 일부러 감정의 밀도를 높이고자 그런 형식을 사용했음을 알게 되었다.
한 인터뷰를 발췌하자면, 한강 작가는 “정자체로 담을 수 없는 다른 의미가 담긴다”며, “글자를 기울여 놓았을 때 독자들의 읽는 속도가 좀 느려지는 만큼, 그 문장에 더 머무르면서 작가가 꾹 눌러쓴 마음을 읽어주었으면 좋겠다”라고 이야기했다. 이처럼 산발적인 눈처럼 느껴졌던 형식은 오히려 독자가 눈물을 머금도록 정서적인 부분을 강조하는 데 매우 효과적이었다.
다음으로, 작품이 진행되는 323페이지 내내 내렸던 눈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이 작품에서 눈은 결국 사랑이라는 결정체를 의미하지만, 여기엔 다양한 결정들이 존재한다. 이 중 가장 많이, 그리고 빈번히 등장했던 결정은 결속의 이미지이다. ‘결속’의 이미지는, 눈을 통해 사람을 연결하고,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고, 또 현실과 꿈을 연결한다. 그리고 이러한 결속을 잘 보면 그 가지들 사이에는 빈틈이 있다.
‘가지들 사이의 텅 빈 공간 때문에 눈송이는 가볍다. 그 공간으로 소리를 빨아들여 가두어서 실제로 주변을 고요하게 만든다.(93)’
즉, 눈송이의 결정체인 우리가 연결됨으로 인해 작게나마 눈송이 전체의 무게가. 가벼워지고, 또 고요해진다고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두 번째로 눈은 제주 4.3 사건 희생자들의 흰 뼈처럼 보이기도 한다. 특히 경하가 4.3 사건을 스크랩한 자료를 넘기며 덤덤히 바라보는 사진 이미지들은 흰 결정체가 모인 눈송이를 연상케 한다. ‘측면에서 촬영된 머리뼈들, 두 개의 텅 빈 안구와 움푹 파인코가 정면을 향한 얼굴들, 대퇴골과 정강이뼈들(283)’이 언덕이나 산에 쌓여 있는 이미지들이 조각조각 묘사될 때 더욱 그렇다. 이때 희생자들의 모습은 끔찍하고, 사망 당시의 상황에 마음이 먹먹해지기도 하지만, ‘눈’은 다시금 뼈를 죽음의 이미지가 아닌 더 가벼운 어떠한 것으로 전환시킨다.
아무것도 더 이상 아프지 않다. 정교한 형상을 펼친 눈송이들 같은 수백수천의 순간들이 동시에 반짝인다. 어떻게 이게 가능한지 모르겠다. 모든 고통과 기쁨, 사무치는 슬픔과 사랑이 서로에게 섞이지 않은 채 고스란히, 동시에 거대한 성운처럼 하나의 덩어리로 빛나고 있다. (138)
마지막으로 눈은 차가움과 따뜻함이라는 촉각적 이미지를 대비시킨다. 그리고 작품에 등장하는 사랑의 불씨 그 자체를 더욱 강조한다. 예를 들어 정심의 이야기 중, 차가운 눈이 죽은 이의 얼굴에 내려앉을 때 바로 녹지 않고 그 위에 쌓인다는 부분이 있다. 그녀는 어렸을 적 언니와 함께 시체의 얼굴에 쌓인 눈을 닦아내며 어머니와 아버지를 찾은 경험이 있다. 또, 전쟁과도 같은 상황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구덩이를 눈 속에 파고 그 안에서 아침을 기다리기도 했다.(132)' 이때 그녀는 ‘잠이 들면 얼어 죽을 거라 몸을 꼬집으며 버텼(132)’고, 비록 그렇게 숨어 있을지라도 바깥의 상황보다는 ‘눈 속이 더 포근했다(132)'고 말했다.
여기서 눈을 녹이는 ‘뜨겁다’는 속성은 사실 다양한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뜨거움으로 인해서 인간이 눈을 녹이고 살아있을 수 있기도 하지만, 상처로 인해 쓰라리게 아플 때도 우리는 뜨거움을 느끼기 때문이다. 먼저, 작가는 우리에게 '무엇을 생각하면 견딜 수 있나.(134)'라고 질문을 던지고, 뒤이어 바로 ‘가슴에 활활 일어나는 불(134)’이 있어야 우리가 이 추위를 견딜 수 있다 말한다. 물리적으로도 맞는 말이지만, 상징적으로 이 불은 ‘사랑’이 아닐까 싶다.
차가운 눈 속에 숨어서 잠들지 않기 위해 몸을 꼬집으면서도 버티던, 운동장에 눈으로 덮인 시체들의 얼굴을 닦아내며 부모님을 찾던, 그리고 집에 돌아오지 못한 오빠를 찾으려 했던, 총상으로 출혈이 심했던 동생의 입에 본인의 손가락을 잘라 피를 직접 흘려 넣어주던, 그리고 배에서 숨이 끊어진 젖먹이를 향해 울부짖던, 울부짖던 그녀를 바라보던 호송차에 탄 마을 사람들의 시선까지, 그 모두의 뜨거운 사랑 말이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뜨거운 사랑’은 고통이기도 하다. 인선의 손가락 두 개가 잘렸을 때, 그녀가 이를 아예 포기할 경우 통증은 한평생 지속될 것이었기에, 지금 계속 통증을 느끼면서라도 손가락을 지켜야 했던 것처럼 말이다. 치매에 걸린 엄마를 보면서도 인선은, ‘그때 알았어. 사랑이 얼마나 무서운 고통인지(311)’ 라며 아픈 마음을 내뱉는다. 그녀는 죽어야겠다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오히려 엄마를 간병하면서 우연히 보게 된 사건 관련 자료들로 인해 엄마 정심의 세계로 스며들게 된다. 아프다고 해서, 고통스럽다고 해서 외면하고 그저 잘라내 버릴 수 없다는 걸 깨달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때, 작가는 인선과 경하의 대화를 통해 우리에게 앞으로 취해야 할 태도에 대해 귀띔한다. 뒤를 돌아보지만 않으면 됐는데 뒤를 돌아보았다가 돌이 된 여인의 이야기다. 인선은 이때, 그 여인이 돌이 된 것일 뿐 죽은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여자는 지켜야 할 무언가가 있어 뒤를 돌아본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뒤를 돌아봄으로 인해서 거기에 얽매이면 안 된다. 발이 돌처럼 무거워지고 굳어지고 있더라도 남아있는 눈을 돌려 어떻게든 언덕을 넘어갔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혹은 돌이 되었어도 죽은 건 아니니까, 앞으로 걸어가는 것을 멈추지 말라는 뜻일 수도 있겠다. 이는 제주 4.3 사건과 같이 비극적인 일을 겪은 생존자들, 혹은 그 유가족들에게 해주는 작가의 위로가 아닐까 싶다.
‘작별인사만 하지 않는 거야. 정말 작별하지 않는 거야?(192)’ 인선이 묻는다. 그리고 경하는 대답을 하지 않지만, 나는 이렇게 대답하고자 한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말은, 작별할 수 없다기보다는 ‘않겠다!’는 선언과 의지에 가까운 표현이라고. 죽은 이를 살려낼 수는 없지만, 우리는 한 명 한 명 모두가 연결되어 있는 눈송이처럼 서로의 곁에 함께 해줄 수 있다고. 비록 사랑은 고통이고, 과거를 돌아보면 돌처럼 발이 묶여버릴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불꽃같이 뜨거운 심장을 가졌기 때문에 눈보라 치는 폭풍우 같은 날씨도 헤쳐나갈 수 있다고 말이다. 그래서 이 책은 눈송이와 같은 책이다. 정심을 통해, 인선을 통해, 그리고 경하를 통해, 마음속에 영원히 타오를 따스한 불꽃을 피워내는 책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