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앨리스 먼로 (Alice Munro) - Runaway
가스라이팅이란 ‘가해자가 심리적 조작을 통해 상대에게 지배력을 행사하고, 판단력을 흐리게 함으로써 정신적 불안 상태에 이르게 하는 심리적 학대’를 의미한다. (장승용, 2023)
앨리스 먼로의 단편 『Runaway』는 클락(Clark)이 칼라(Carla)를 가스라이팅하여 그녀의 삶을 통제하고, 이에 실비아(Sylvia)라는 이웃집 부인이 관여하여 벌어지는 사건을 그리고 있다. 작품에서는 칼라가 애지중지하며 키우던 염소 플로라가 가스라이팅 피해자인 칼라와 평행선을 그리며 등장한다. 염소와 칼라는 모두 클락에게서 도망가지만 다시 되돌아옴으로써 작품의 주제인 ‘진실된 삶’과 주체성에 대한 주제의식을 상기시킨다.
따라서 해당 글에서는 플로라와 칼라의 유사성을 중심으로 작품을 분석하며, 플로라가 무엇을 상징하는지, 작품에서 도망(Runaway)은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대해 해석해보고자 한다.
작품에서 클락과 칼라는 가스라이팅의 가해자와 피해자의 모습을 하고 있다. 클락은 가스라이팅 가해자로서의 특징을 가지고 있고, 칼라는 피해자가 되기 쉬운 특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둘의 관계는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 특히 클락은 나르시즘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는데, 이는 칼라를 무시하고 오히려 탓하는 행동으로 나타난다. 일례로 칼라가 ‘Just don’t be mad at me, (253)’ 라며 클락에게 화를 내지 말라고 하자, 클락은 네가 이렇게 행동했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라고 오히려 칼라를 탓해버리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Don’t tell me what I am. You’re choking me. Start supper. (253)’ 이라며 오히려 칼라에게 벌컥 화를 내기도 한다.
또, 그는 거짓말과 폭력적인 언행을 일삼아 피해자를 공포에 떨게 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if you ever try to run away on me again i’ll tan your hide (274)’ 이라며 과격한 협박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거나, 죽은 이웃집 남편으로부터 지속적인 성폭행을 당해왔다는 아내의 고백에도, 그럼 고발을 해서 돈을 받아내야겠다고 말하는 점에서 이런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농장의 말들과 유대감을 형성할 정도로 공감능력이 뛰어난 칼라는 클락과 정반대의 성향을 가졌다. 그녀는 착한 아이 컴플렉스를 가지고 있어, 손님들이 무안하지 않도록 스스로 바보같은 짓(silly things)을 하기도 하고 어색하거나 좋지 않은 분위기를 나서서 풀려고 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런 그녀는 클락에게 이끌려 자신의 집에서 도망쳐 나오지만,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클락과의 관계가 자신에게 악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깨닫는다.
농장을 지키는 염소인 플로라는 칼라와 삶의 평행선을 그린다. 먼저, 칼라와 플로라 모두 클락에 이끌려 그와 함께 살게 된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볼 수 있다.
플로라는 농장에 처음 도착하자마자 클락의 ‘애완동물(pet)’로써 그의 관심을 끌기 위해 춤도 추는 등 마치 ‘guileless girl in love’와 같았다고 서술된다.
이는 칼라가 클락을 만나고, 그의 ‘good looks’와 자신에겐 없는 ‘colorful employment’, 또 무엇보다 성적으로 그에게 매혹된 부분과 비슷하다. 당시 그녀는 고등학교를 졸업할 예정이었고, 이후에는 대학에 진학해 사회에서 소위 말하는 성공이 보장된 삶을 살기 직전이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뒤로하고 그녀는 자신이 욕망하는 ‘진실된 삶’ - 당시에는 클락과 함께하는 삶-을 살기 위해 경제적 안정을 포기하고 이로부터 도망쳤다. 클락이 플로라를 다시 만났을 때, ‘Flora might have just gone off to find herself a billy" 라고 말하는 것도 그래서 칼라가 클락과 살기 위해 집을 나온 모습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다.
두번째로, 플로라와 칼라 모두 시간이 지남에 따라 클락에게서 벗어나, 주체적인 삶을 사려고 했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작품에서 플로라는 성숙해짐에 따라 ‘much wiser, less skittish’해졌고, 클락보다는 칼라에게 더 애착을 가지게 된다. 성장을 통해 독립성이 길러지면서, 칼라에 순종적인 관계라기보다는, 칼라와 위계가 없는 친구처럼 평등한 관계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때 클락은 이후 실비아를 만났을 때, 염소들은 ‘예측불가능’하다며 특히 다 자란 염소는 길들여지기 쉽지 않다고 말한다. ‘They can seem tame but they’re not really. Not after they grow up.’ 마치 칼라가 클락이 모르게 버스 표를 사서 도망치려 했던 일을 암시하는 듯한 말이다. 자신에게 순종하고 정신적으로 지배하고 있다 믿었던 칼라에게 배신당한 것 역시 그에게는 ‘예측이 불가능’했던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년을 넘긴 이웃집 여성인 실비아에게 칼라는 아직 다 자라지 못한, 도움이 필요한 소녀처럼 보였다. 예전에 자신이 가르치던 학생들처럼 보였고, 그 중에서도 가장 총명하고 활기가 넘치며 배려심이 많은 소녀처럼 보였던 것이다. 실비아는 칼라에게 엄마로서의, 친구로서의, 또 같은 여성으로서의, 인간으로서의, 그리고 성적인 매력과 사랑을 느끼는 인물이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처럼 남편에게 구속된, 폭력적인 결혼생활을 이어가는 칼라를 기꺼이 도와주려고 한다. 하지만 그녀가 칼라를 다소 이상화한 것과 달리, 칼라는 아직 독립할 준비가 되지 못한 어린 소녀였다. 위에서 클락이 플로라가 ‘grow up’했다고 말했을 때, 실비아는 정말 그녀가 다 자란 것이 맞느냐며 “She looks so small.”이라 대답한다. 이처럼 실비아는 클락과 칼라를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를 보여주는데, 그녀의 시점에서 칼라를 바라봄으로써 독자들은 칼라라는 인물에 대해 더욱 입체적으로 생각할 수 있게 되기도 한다. 실비아는 이후 칼라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자신이 그녀에게 지나치게 간섬했음을 사과한다. 본인이 보기에 ‘Carla's freedom and happiness were the same thing. (275)’ 이라고 오해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칼라와 플로라는 도망쳤다가 클락에게로 돌아간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플로라는 첫번째 도망 이후, 클락과 실비아가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 기이한 형태로 다시 등장한다. 그것도 실비아가 다소 위압적인 클락에 공포감을 느끼던 순간, 극적으로 등장하여 분위기를 완화시키는 것이다. 이처럼 긴장감이 있는 분위기를 부드럽게 풀어준다는 측면에서도, 플로라는 칼라가 가진 ‘착한 아이 신드롬’을 연상시킨다. 또, 험한 세상에 독립적으로 나가 살아가기엔 스스로가 너무 연약한 존재라는 점에서도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그렇게 플로라는 환영처럼 나타났다가 다시 사라져버린다.
칼라의 꿈에서 플로라는 다리를 다친 채로 전쟁같은 바리케이드를 넘어 도망쳐 버렸다. 이처럼 두번째 도망에 있어서 칼라는 플로라처럼 어딘가 ‘불편’한 상태였다. 플로라는 꿈에서 다리가 다친 것이었지만, 그녀는 도망을 하는 와중에 신체 증상으로까지 발현되는 심각한 불안증세를 경험한다. 클락에 대한 지나친 의존도, 아직 독립할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 그리고 무엇보다 다시 실패할까 두려운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플로라는 이어서 안개 속으로 사라졌지만, 칼라는 다시 클락에게 제 발로 걸어온 이후 그가 플로라를 죽였을 것이라 믿는다.
While she was running away from him—now—Clark still kept his place in her life. But when she was finished running away, when she just went on, what would she put in his place? What else—who else—could ever be so vivid a challenge?
먼로는 칼라가 도망치는 와중에도 클락이 그녀의 삶에 자리하고 있었다 서술했다. 그래서 만약 그녀가 도망을 멈춘다면, 누가 그 자리를 대체할 수 있겠느냐며 이를 ‘강렬한 도전’이라 표현했다. 클락을 완전히 삶의 나침반으로 생각하던 칼라에게 그로부터의 도망은 ‘lost’와 똑같은 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는 주체적으로 삶을 꾸려나가고자 하는 내면의 ‘constant low-lying temptation(276)’을 억누른다.
플로라가 죽었는지 살피고 싶지만 더 궁금하지 않다고 애써 속마음을 외면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녀의 상상 속에서 플로라는 뼈만 남아 처참한 몰골로 숲 속에 버려져 있다. 그리고 문단을 하나 내려가면, 서술자는 플로라가 자유의 몸이 되었을 수도 있다는 한 가지 가능성을 보여준다. ‘She might be free.(277)’ 여기서 She는 표면적으로는 플로라를 의미하지만, 사실상 플로라와 평행적 삶을 사는 칼라를 의미하기도 한다. 즉, 플로라의 행방이 묘연한 것처럼 칼라의 미래 역시 열린 결말로 해석할 수 있다는 뜻이다. 칼라는 자신의 의지로 클락에게 돌아옴으로써 내적으로는 이미 주체성과 독립성을 상실하고 죽음과 다름없는 삶을 살고 있다. 그리고 클락에게 돌아간 이후 다시 그에게 종속된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또 배신감을 느낀 클락에 의해 죽었을 수도 있고, 혹은 세번째 탈출을 감행했을 수도 있다.
가스라이팅은 비단 소설 속 이야기만이 아니다. 칼라가 원했던 것은 단 한 가지, ‘an authentic life’였다. 하지만 그녀는 사회에서 이상적으로 바라보는 안정적인 중산층 가정에서 이를 이룰 수 없어 첫번째 ‘도망’을 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선택은 실패였고, 두번째 도망을 시도하려 했으나 이미 클락의 ‘훈육 (discipline)’에 길들여졌던 칼라는 자신만의 욕망을 스스로 포기해버리고 만다. 여기서 클락은 사실 직장에도, 학교에도, 가족 내에도 존재하는 흔한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심지어 그처럼 폭력적이거나 위협적이지 않은 인물이라면 더욱 ‘가스라이팅’의 위험성이 높다. 안정되고 지적인 삶을 살았을 것 같은 실비아도, 유명한 시인인 남편의 곁에서 불행한 결혼생활을 마쳤고 그것이 트라우마가 된 삶을 살았다. 그렇다면 안정적인 중산층 가정의 모습이 정말 사회가 제시하는 최선이라 볼 수 있을까?
작품에서 도망은 다각도의 의미를 지닌다. 실비아가 칼라를 도망치게 도와준 것도, 실비아가 자신의 욕망을 칼라에게 투영하여 일어난 ‘현재로부터의 도망’이었다. 그녀 자신이 불행한 결혼생활을 했기 때문에 칼라도 똑같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버스 표도 잡아주고 칼라를 구해주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는 실비아가 불행한 자신의 현재로부터 도망친 것이나 다름없다. 칼라는 사실 독립을 위한 준비가 되지 않았고, 도망 자체를 원하지 않았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 도망은 클락의 회피성향을 뜻하는 것일 수도 있다. 대체로 가스라이팅 가해자들이 가지고 있는 애정결핍이나 인격장애는, 가까운 사람을 정신적으로 지배하여 소유하고자 하는 폭력적인 성향으로 나타날 수 있다고 하기 때문이다. (양해원, 2021)
마지막으로 ‘도망’은, 칼라가 자신의 꿈인, ‘진실된 삶’에 대한 도전의 의미를 지녔다고 볼 수 있다. 칼라가 본인의 집에서 도망쳐 나올 때에도 지지를 아예 받지 못한 채, 많은 것은 ‘포기’하고 나왔다는 설명이 있다. 그렇게라도 성취하고 싶었던 그녀의 꿈은 오직 시골에서 동물들과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녀의 첫번째, 그리고 두번째 도망은 모두 ‘진실된 삶’을 추구하기 위한 탈출이자 새로운 시작이라 해석할 수 있다. 이는 오늘 날 우리에게도 주입된 사상과 가치관을 벗어나 세상과 삶의 진실을 보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비록 가정과 학교에서 오랜 시간 훈육받은 가치관과 삶의 습관을 한 순간 뒤로 하고 계속해서 주체성과 본질을 추구하는 일은 엄청난 ‘도전’일 수 있다. 그러나 먼로는 열린 결말로 소설을 마무리함으로써 독자들에게 ‘captive’된 상태에서 벗어나길 바라고 있다. 우리가 모두 마음 속 깊이 원하는 진정한 ‘authentic life’를 찾아가기 위해서는 피해자의 탈출이 필요하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