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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경 Apr 10. 2024

이처럼 사소한 것들

서평『이처럼 사소한 것들』, 클레어 키건 지음, 홍한별 옮김, 다산북스


   큰 변화를 위해선 이에 상응하는 큰 힘이 필요하다고 믿었다.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돕기 위해 기부를 하는 것도, 기후 위기를 위해 캠페인에 참여하는 것도, 기아문제나 먼 나라의 재난 재해, 혹은 전쟁으로 인한 피해 상황을 돕기 위해 모금을 하는 것과 같은 것들도 말이다. 하지만 이 책은 긴 말을 하지 않고서도 개인의 사소한 행동 하나가 한 세계를 구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저 평범한 아일랜드 한 마을의 펄롱이라는 남자가 보내는 크리스마스 시즌을 담백하게 보여주면서, 독자가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만들기 때문이다. 뻔할 수 있는 메시지이지만, 저자가 이를 전달하는 방식은 모두를 설득하고 변화하게 만든다. 날마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타인을 바라보고, 그리고 나를 바라보며 모든 관계를 회복시키는 키건만의 시선. 그 평범한 세계가 아름다워 마음이 눅눅해지는 책이기 때문이다. 

  


  소설치고는 얇은 두께의 책이지만, 오히려 그래서 이 책은 한 편의 긴 시를 읽는 기분이 들게 한다. 더불어 작가의 문체나 어휘는 ‘뉘앙스’, ‘분위기’와 같은 한 폭의 이미지를 섬세하게 쌓아올린다. 우리가 직접 펄롱의 세계에 들어가서 그의 시선으로 그의 삶을 바라볼 수 있도록 말이다. 책의 도입부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가 없는데, 저자는 도입부를 통해 ‘임신하고 물에 뛰어들어 죽은 여자를 암시하고자(128)’ 했다. ‘헐벗다’, ‘벗기다’, ‘가라앉다’ 등의 언어만을 사용해서 특정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이를 통해 전체 서사에 대한 예고를 하려 했다는 것이다. 


  물론 개인적으로 이러한 이미지까지 세심하게 캐치하지는 못했으나, 이후 전개되는 도입부분의 상황에서 모두가 녹록치 않게 하루하루 바삐 살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또 저자가 말한 것처럼, 그 음울하고 바쁘지만, 또 한 편으로 다들 자신만의 안락한 공간에서 소소한 행복을 가지고 하루하루 살아가는 소시민의 인생을 머릿속에 한 폭의 그림처럼 그려낼 수 있었던 듯 하다. 


늘 이렇지. 퍼롱은 생각했다. 언제나 쉼 없이 자동으로 다음 단계로, 다음 해야 할 일로 넘어갔다. 멈춰서 생각하고 돌아볼 시간이 있다면, 삶이 어떨까. 펄롱은 생각했다. 삶이 달라질까 아니면 그래도 마찬가지일까 - 아니면 그저 일상이 엉망진창 흐트러지고 말까? (중략) 내일이 저물 때도 생각이 비슷하게 흘러가면서 또다시 다음 날 일에 골몰하리란 걸 펄롱은 알았다. (29)


 특히나 공감했던 부분을 발췌했다. 펄롱은 매일 반복되는 하루하루를 살아가면서도 삶의 의미를 찾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런 그에게 수녀원에서 마주친 한 소녀는, 애를 쓰고 지켜오던 본인만의 안온한 세상을 감수하게 만든다. 말그대로 ‘그 수녀들이 안 껴 있는데가 없’(106)는 마을에서 수녀원을 적으로 만들어야만 하는 선택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는 간접적으로 암시하는 방식으로 우리에게 메시지를 전한다. 


  아내인 아일린이 말리고, 마을 사람들이 이상한 눈초리로 바라보거나 그를 멀리하고, 그리고 예측컨대 앞으로도 그의 형편이나 삶은 더욱 살기 팍팍해지고 힘들어질 것이다. 하지만 그는 ‘하지 않은 일, 할 수 있었는데 하지 않은 일 - 평생 지고 살아야 했을 일은 지나갔다. (121)’ 며   ‘몸이 가볍고 당당한 느낌’(119)으로 뿌듯하게, 그리고 떳떳하게 계속 걸어나간다. 감히 뒷 내용을 예측할 수도 없지만, 우리는 그의 선택의 과정을 따라오면서 이미 펄롱을 적극 응원하게 된다.



  이 책은 아일랜드의 모자 보호소와 막달레나 세탁소에서 고통받았던 여자들, 아이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다. 무겁고 어려운 주제일 수 있었으나 작가는 이 주제를 평범한 한 소시민의 인생과 시점으로 독자들에게 전한다. 그리고 그가 선량한 마음을 따라 한 소녀를 구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에게 선한 영향을 끼친 미시즈 윌슨과 그 사소한 순간들 덕분이었다. 선량한 노부인은 미혼모인 본인의 어머니와 펄롱을 거두었고, 마치 자기 자식인 양 단어 시험을 잘 볼 수 있도록 아이에게 진심어린 다정함과 친절을 베풀었다. 그리고 펄롱은 자라서 자기 자식들이 거스름돈을 받으며 고맙다고 말하는 것에 뿌듯함을 느끼고, 가난한 아이에게 석탄 하나 더 얹어주는 사소함에서 삶의 의미를 느끼는 인물이 된다. 


  “이 길로 어디든 자네가 원하는 데로 갈 수 있다네” 펄롱이 수녀원에서 나와 길을 헤메다 만난 노인은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사소하지만 그 사소한 순간들이 모이면 큰 변화를 만들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변하지 않을 것만 같은 권력과 세력에 대해서도 바윗돌로 치는 것만 같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다정함, 타인에 대한 친절을 베풀 것을 잃지 않을 것. 서로에 대한 증오와 이로 인한 범죄가 만연하고, 각자의 몫을 챙기기에도 바쁜 현대인들에게는 뜬구름 잡는 소리처럼 들릴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럴 수록 우리에게 더욱 필요한 이야기가 아닐까. 


  어제는 한 손님이 빨대를 배달하지 않았다고 가게 점주를 무릎 꿇고 사과하게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뉴스를 보았다. 출퇴근길도 생각해보면 줄을 서는 것이 의미가 있는 건가 싶을 정도로, 모두가 자기의 한 몸을 이미 꽉 찬 열차에 싣기 바쁘다. 지금 이 시대의 우리는 어떤 길을 걸어가고 있는걸까. 우리가 원하는 길이 무엇인지 나는 생각이나 해보았을까. 무엇보다 펄롱만큼의 사소한 친절이 내게도 있긴 할까 되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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