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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괜찮을 거야.

아픈 손가락

by Jane

꽃피는 춘삼월에 긴 머리를 곱게 올리고, 석류나무 아래서 사진을 찍던 곱디고운 여인네는 조그마한 손을 양복 입은 이와 함께 손을 잡고 도토리가 가득 떨어져 있던 오솔길을 걸어갔다.


하얗던 손에 주름이 한두 개 늘어날 무렵, 생각지도 못하게 아픈 손가락이 되어 돌아온 젊은 시절 자기와 같은 어여쁜 여인네는 남들보다 조금 일찍 태어나 이제야 무르팍 옆 정도나 올만한 키의 꼬맹이를 데리고 다녔다.




95년도에 태어난 나는 몇십 년 만에 태어난 세상에서 그 누구보다도 예쁜 손녀였으리라.

그도 그럴 것이 어쩌면 나의 어머니나, 삼촌, 이모에게는 늘 조금은 엄격했던 어머니였던 나의 할머니는 첫 손녀인 나에게는 하릴없이 인자하고 무엇인들 다 들어주시는 분이었으니까.


심지어 나는 5살 적까지 할머니의 꾸중 한번 듣지 않고 자랐었다. 5살 적 첨 들어본 꾸중 또한 밥을 잘 먹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서 언성 한번 높이시고는, 곧 다시 걱정되시어 피아노 의자를 치며 '어떡해, 어떡해' 하고 있는 꼬맹이를 달래려 오시는 분이었으니까.


그렇게 자라온 나는 사실 무서울 게 없는 아이였다. 두려울 것 하나 없는 꼬맹이였지만, 개중에 무서웠던 것은 별로 멀리 않은 2000년도였음에도 불구하고 아빠가 없음을 말하면 안 되는 '편부모 가정'이라는 것.

당시에는 부모 중 하나가 없으면 뭔가 부끄러웠던 시절이었다. 나의 여인은 다른 사람 입에서 '아빠 없는 아이'라는 소리를 듣게 하고 싶지 않으셨을 뿐이다. 그래서인지 늘 무언가 미안해하며 사셨다.


물론 경제적인 부분이 약간 모자라서 힘들지 않았다고 하면 그것은 거짓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그 누구보다 그네가 필요하신 것은 사지 않으시고, 살이 통통하게 오를 정도로 자라는 나에게만 쏟아주셨던 사랑과 정성들을 잊지 않기 위해 짧지만 약간은 긴 글을 써보고 싶었다.




그것이 무엇이든지 내 손녀가 내 딸이 최고이고, 아픈 손가락이 되어버렸던 내가 세월이 지나니 이제 조금은 느낄 수 있게 된 나의 아픈 손가락에 대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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