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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교 부리는 여자

행복하자, 우리

by Jane

참으로 웃기게도,

우리 엄마는 애교가 참으로 없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당연히 나도 애교가 없는 사람으로 자라왔다. 심지어 내 여동생도 너무도 무뚝뚝한 여성이다. 뭐, 애교가 없는 마음이 따듯한 사람일 수도 있지.

근데 이게 무슨 일인가! 나의 어머니는 애교가 참으로 많은 사람이었던 것이니!


어릴 적부터 보아왔던 어머니의 모습은 아침 일찍 출근하고 저녁이면 지쳐 들어와 높디높은 하이힐을 가지런히 벗어두고, 정직하게도 깨끗이 씻고 완벽하게 잠을 청하는 사람이었다. 두 아이를 먹여 살려야 한다는 마음가짐이 얼굴에 가득 내려온 다크서클만큼이나, 서비스업 직종이었던 지라 기분이 나빠도 영업용 미소를 지어가며 스트레스를 꾹꾹 눌러내려놓는 강인한 여성 었으니까.


내가 스무 살 무렵, 오랫동안 알아 왔던 아버지를 만나고 엄마의 애교는 급격히 늘어났다.

사람이 이렇게 변할 수도 있다는 사실에 나도 놀라고, 나의 할머니도 놀라셨다.


"느이 엄마가 애교가 저리 많은 사람인지 이제 알았다야."


엄마는 이제는 곧잘 나와 내 동생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곤 하신다. 내 기억에 어릴 적에도 몇 번 들은 적 없다고 생각한 어머니의 사랑한다는 단어는 아직도 가끔은 어색하게만 느껴진다. 그리고는 마음 한편이 아려온다.

어린 딸들에게 나의 어머니는 얼마나 사랑한다, 잘했다는 말들을 하고 싶으셨을까.

그런데도 집의 가장이 되어버린 그녀는 모질게도 강한 여성이 될 수밖에 없었던 현실에 어쩌면, 우리가 모르는높은 하이힐의 길이만큼이나 삶의 짐이 너무도 무거웠을 것이다.


새삼 세월이 지나 이제 돈을 벌 수 있는 어른 아닌 어른이 되니 별 것 아닌 삶의 무게를 나의 어머니는 오롯이 혼자 짊어지고 있으셨던 탓에 서로가 '사랑해'라는 말을 쉬이 하지 못하셨던 건 아닐까.-필자도 현재 오 년 내내 서비스업에 종사하고 있다.




가끔 나는 어머니와 아버지와 한 번씩 만나 저녁을 먹으며 술을 먹는다. 이제는 술잔을 함께 기울일 수 있는 나이가 된 탓에 우스갯소리로 어릴 적 오랫동안 했던 이야기들, 또는 서로가 숨겨서 하지 못했었던 이야기들을 안주처럼 만날 때마다 꺼내놓는다.


나는 어린 시절 엄마가 시켜서 처음 시작했던 '가야금병창'을 오랜 시간 해왔었다.

어머니는 술만 자시면, 그 당시 어려웠던 가정상황 때문에 더 오래 국악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해 늘 얘기하신다. 미안해라고 하시며.-사실 나는 별로 재능이 없었던 것 같지만.


나는 시간이 날적마다 엄마와 함께 데이트를 하려고 노력한다. 어린시절 서로 같지 못했었던 그 시간들이 그리워서인지도 모른다.



그럴 때마다 이것저것 사달라며 애교를 부리는 나의 엄마를 보며 짜증을 내는 척하면서도 너무도 사랑스럽다고 생각한다.-마치 연애하는 나를 보는 것 같다.


엄마 이제는 더 행복해도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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