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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영화

비디오 테이프 속의 사랑

by Jane

'비디오테이프'


핸드폰과 컴퓨터에 익숙해져 버린 지금의 시대에는 어색한 단어가 아니지 않나 싶다.

내가 초등학교 시절에만 하더라도 디스켓이 준비물인 시절도 있었다. 그보다 더 오래전으로 가면 내가 다섯 살 적일 무렵, 나의 삼촌과 이모는 서울에서 일하는 너무도 바쁜 실내 인테리어 디자이너와 도시설계를 하는 멋진 직장인이었다.


이제 막 회사생활을 하는 바쁜 직장인임에도 불구하고 나의 삼촌과 이모는 주말마다 네 시간이라는 긴 거리를 오로지 꼬맹이 조카를 보기 위해 고속버스를 타고 광주까지 내려오기를 반복했다.


한 손으로는 들기 무거운 비디오테이프를 녹음하는 카메라를 들고서 마치 연예인을 찍는 덕후들 마냥, 나를 찍어댔다. 어릴 적 생전 살면서 처음 혼났던 다섯 살과, 무더운 여름 빨간 김장용 고무대야에서 빨가벗고 물놀이를 하는 장면까지 정말 여과 없이 조카를 눈에도 카메라에도 담아내기 위한 고군분투는 매주 일어났다.



지금은 비디오테이프를 재생하는 기계가 없어 자세히 보지는 못하지만, 조금 컸을 무렵 틀어주었던 비디오 테이프 속에는 내 일상이 매일매일 재생되는 영화 같았다. 커다란 주택에 살았던 나의 조부모님의 마당에는 커다란 석류나무가 있었는데, 나의 할아버지가 개중에 가장 잘 익은 석류 하나를 따 내주어 이가 빨갛게 익을 때까지 열심히 먹는 꼬맹이.


아빠 없는 어린이가 얼마나 슬플까 싶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조카를 너무도 사랑해 주셨던 것이다.

애교 한점 없는 나는 마음속으로는 느끼면서 나의 삼촌 이모에게 사랑한다고 말을 잘 하지 못한다.



내 인생에 아름다웠던 순간들, 반짝이던 어린 시절의 카메라 맨과 예고편을 기다리는 관객인 나의 가족들.



남는 건 사진밖에 없다 하니, 이제는 내가 카메라 맨이 되어 나의 관객들을 주름살이 늘어가기 전에 멋진 영화로 만들어 드려야겠다. 나에게 붓어주었던 관객들의 성원에 보답하기 위해 나도 또한 나의 꼬맹이인 사촌동생을 반짝이는 순간으로 채워줘야겠다.



2004년 눈오는 날의 나의 할머니와 삼촌




아마_이번 주말은 더 늦기 전에 비디오테이프들을 찾아내어 시디로 구워내는 작업을 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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