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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브리엘의오보에 Aug 13. 2024

세상을 마주한 너: 여행의 역할

인간의 삶에서 여행의 역할은 무엇일까? 의미가 아니라 삶에서의 역할.


더욱이, 이번 이야기에서는 가까운 곳으로 가는 여행이 아니라 먼 곳으로 가는 여행을 이야기하려 한다. 먼 곳에 휴식과 리프레시 요소를 부여하고, 그곳으로 떠나는 여행.


내가 생각하기에 먼 곳으로의 여행은, 가는 여정, 도착 후 직면하는 낯섦이 여행에 집중하게 하는 요소라 생각한다. 오랫동안 비행을 해야 할 것이고, 소도시나 시골 마을이라면, 교통편도 수월치 않을 것이다. 그런 여정을 지나며 드는 생각, 그리고 지난한 여정 후 도착한 곳이 주는 낯섦. 긴장의 연속이겠지만, 긴장은 신경을 더 날카롭게 해, 더 많은 풍경과, 사람들의 모습을 살펴보게 할 것이다.


익숙함에서의 이탈은 자신을 객관적 시각으로 볼 기회를 제공한다. 평소 하루를 보내는데 2~3가지 행동의 반복이라면, 낯선 먼 곳에서는 20~30 가지 행동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2~3가지로 자신을 인식하던 ‘나’에서, ‘내가 이런다고?’, ‘자신감이 줄어드는 느낌’. ‘어쩌지’를 반복하며 갈피를 못 잡는 모습, 혹은, ‘예전에 한 번 해 봤을 뿐인데’ 능숙하게 움직이는 손과 발. ‘믿거나 말거나’, ‘기묘한 이야기’를 직접 써 내려갈지도 모른다. 아니면, 낯섦에 움츠려, 뒤로 숨거나 앉아 방관하는 일을 반복하며, 비싼 호텔에서 나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같이 간 친구의 새로운 모습 역시 볼 재미다.


먼 곳은 생활방식이 우리와 많이 다르다. 혹은, 비슷한 모습을 신기해 할 수도 있다. ‘커피를 저런 식으로도 내리는구나’, ‘조미료를 뭘 썼지? 낯선데 맛있네’, ‘이 시장은 흥정을 하지 않는다고?’ 등등 평소 보지 못한 많은 모습, 그들 고유의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내가 살아온 삶 역시 세상이라면, 먼 곳 사람들의 생활 역시 세상이다. 세계는 70억 개 이상의 세상이 있다. 세상이란, 경험하는 이가 정의하고 구획 짓는 환경이기 때문이다. 70억 개 이상의 세상 중 몇 가지를 보게 될 것이다. 그 수많은 이 세계는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다. 그것을 직접 경험하며 세계관에 영향을 받고, 시야에 영향을 받을 것이다. 그 결과 무엇이든, 좋든 나쁘든,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여행의 역할의 전부다. 난 네가 그런 경험을 했으면 한다. 즐겁게 먼 곳 맛집을 즐기고, 기념품을 고르는 재미 말고도, 세계인으로서의 시야와 세계관을 가졌으면 한다. 국내 시장에서 활동하는 회사원으로 지내더라도. 그렇게 넓어진 시야와 세계관을 일에 써먹지 못하더라도.


2005년 6월 1일은 아빠가 처음 미국에 간 날이다. ‘언젠간 가야지’ 했던 곳. 뉴스 등 방송이나, 문화 잡지, 영화 등등 다양한 매체 속에서 미국은 美國으로 그려졌다. 그래서 궁금했다. ‘과연 미국일까’는 아니었다. ‘Which?(어떤 색깔의 나라일까?)’ 혹은 ‘What?(미국의 분위기는 어떨까?)’ 정도의 뉘앙스였다. 아빠 성격 상 궁금하면 겪어 봐야 하니까. 눈으로만 보더라도 말이다.


모아 놓은 돈을 모두 털어냈다. 자동차를 팔았다. 그 시기 아빠는 매너리즘에 빠져 있었다. 디지털 커뮤니케이션, 디지털 캠페인을 기획하는 에이전시 생활에서 뺄 수 없는 요소는 창의성, 혹은 ‘쌈박한 아이디어’이다. 아이디어가 돈이 되는 세상 중에 가장 치열하고 잔혹한 동화가 에이전시 생활이다. 마침, 마른걸레를 짜고 짜서 겨우 7개월 프로젝트를 마친 즈음이다. 플래시로 우리나라의 정보통신 역사박물관을 구축하고, 과거 솟대부터 시작된 우리나라 정보통신의 역사를 담았다. MMORPG에서 활용하는 기술로, 입체적 게임 환경을 구축하고, 퀴즈를 맞히며 게임을 풀어가는 Edutainment 공간을 만들었다. KT에서 진행한 정보통신박물관 구축이 그것이다. 7개월간 50명이 넘는 인원을 관리하며, 기획을 이끌어가는 역할이 프로젝트 매니저의 역할이었다. 힘이 들고, 기획팀 팀원들은 자료 정리 하느라 등짝에 파스를 몇 장씩이나 붙였고, 한자로 된 자료를 사전(자전)을 찾아가며 한글로 바꾸었다. 교육 설계를 통해 청소년이 정보통신 역사를 익힐 수 있도록 했다. 보다 입체적인 효과를 원하는 고객을 다독거리는 일도 아빠의 역할이었다. 인터넷 대상 중 교육부문 대상과 기획상을 받았다. 지상파 뉴스에도 보도(고객사의 역할이 컸다)됐다. 뉴스에는 기획 리더가 대신 나갔다. 뉴스 촬영 때 이미 아빠는 New York에 있었다.


New York에서의 생활은 참 안타깝게 적어 내려간 글(https://brunch.co.kr/magazine/200506ny)을 보면 알 것이다. 엄마와 함께 한, 네가 태어나기 전의 이야기다. 먼 낯선 곳에서 아빠가 무엇을 생각했는지 조각조각 적혀 있다.


미국 여행의 역할은 아빠에겐 매너리즘의 해소가 아니었다. 계기는 그랬지만, 일상에서 벗어나 나를 찾는 시간이었다. 이스트빌리지에서 센트럴 파크까지, 매일 아침 1시간 30분의 거리를 걸어 올라갔다가 2시간이 걸려 걸어 내려왔다. 내려오는 길은 마음이 편하지만 몸은 파김치였다. 문도 열지 않은 빌딩 숲, 출근하는 이들 사이를 걸었다. 묘한 느낌이다. 우리나라에 있었다면, 나도 채 마르지 않은 머리카락을 흔들며 저 사이에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나에게 집중한 INTP의 시간들이었다.


하와이와 일본 여행이 너에게 관광이라면, 이번에 너에게 이야기하는 여행은, 성인의 문턱을 넘은 네가 낯설고 먼 곳에서 너를 돌아보고, 새로운 환경에서 너를 발견하는 여행이다. 이후 어떤 삶을 살지는 너에게 달려 있지만, 여행은 자아를 살펴보고, 세상을 넓게 보며, 변화의 촉매에 닿아 스스로를 성장시키는 계기가 되는 시간이다. 그 이후 너는 어떤 삶을 그리며 살게 될까? 부모 자식 사이지만, 네 인생의 앞길은 궁금하기 그지없다.


여행을 갈지 여부까지 너에게 맡긴다. 아빠는 다만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너를 발견하는 여행’의 계기를 만들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준비했다. 영화와 플레이리스트를.


1. Holocene - Bon Iver

2. Saturn - Sleeping at Last

3. We Move Lightly - Dustin O'Halloran

4. Rivers and Roads" - The Head and the Heart

5. Intro - The XX

6. Aerials - Lights & Motion

7. Bloom - The Paper Kites

8. Big Sky - John O’Challaghan

9. 바람이 불어오는 곳 - 김광석

10. 걷고 싶다 - 조용필

11. 꽃 - 김광석

12. 가을이 오면 - 이문세

13. 서울의 밤 - 랄라스윗

14. 야상곡 (Nocturne) - 김윤아

15. 산책 - 백예린

16. 비상 - 이승열

17. 소풍 - 하림

18. 너의 의미 - 산울림

https://music.apple.com/kr/playlist/세계관을-넓히는-여행/pl.u-NpXml5kumx16R0?l=en-GB


각 음악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다양한 매체에 적혀 있지만, 네가 듣고 생각해 보길 바란다. 길을 걸으며, 숙소에서 잠들기 전에, 비행기 안에서 들어보길 바란다.


영화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The Secret Life of Walter Mitty, 2013)‘를 추천한다. 너와는 다른 캐릭터이다. 다만, 그가 사라진 사진을 찾아 떠난 여행 후 어떤 변화가 있는지 살펴보면 좋겠다. 여행이 휴식이나 일상 탈출 만은 아닌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성장하고 자신을 이해하며 삶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되는 과정은 어쩌면 내가 너에게 선물하고 싶은 여행일 것이다.


가기 전에, 아마도 넌, 다양한 정보를 통해 계획을 세울 것이다. 방문할 곳, 경험할 것들의 리스트를 정리할지도 모른다. 아빠의 New York 여행은 계획은 있었지만, 계획대로 하지 않은 일상이었다. 무엇을 볼 지는 정해 놓고 그곳에 갔지만, 엄마와 아빠는 주변 다른 공간으로 이동했다. 그곳에서 만난 풍경, 광경, 사람들 덕에 미묘한 변화가 발걸음을 통해 우리의 여행을 풍부하게 만들었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너 역시 그럴 것이다. 가이드 서적이 다 알려주지 못하는, 지금의 그곳을 경험해 보면 어떨까? 낯선 곳이라 염려할 수도 있겠지만, 예상치 못한 곳에서 기대하지 않았던 아름다움을 만날 수도 있을 것이다. 비단, 석양이나 유적이 아니더라도 말이다.


너는 어떤 곳으로 가고 싶니? 어디가 너에게 새로운 세상이 될까? 아빠는 소도시나 지방을 추천한다. 우리가 사는 Urban의 세상에서, 특정 Spot이 아니면 Internet이 되지 않는 곳은 어떠니? 불편할까? 음식과 물이 낯설 것이고, 번역기 사용이 너무 답답할 수도 있겠다. 하루에 한 번 다니는 버스만 있는 곳일 수도 있고, 교통은 어느 정도 구축된 곳일 수도 있다. 오지로 가라는 말은 아니다. 다만, 소도시나 시골은 ‘또 다른 세상’이라는 표현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 곳이라 추천한다.


미래의 너를 상상해 보렴. 간 곳이 너무 마음에 들어, 여기서 살고 싶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Urban에서 벗어나 어촌의 비릿한 내음, 알려지지 않은 바다의 파도, 등산로도 없는 푸른 산과 들, 우리와 다른 농촌의 방문이 자연에 대한 감각, 자연과 어울려 사는 인간의 모습을 볼 흔치 않은 기회가 될 수 있다. 먼 곳의 도시 만으로도 새로운 세상을 볼 수 있다. 먼 곳 만이 자연과 교감할 수 있는 장소는 아니다. 우리나라 지리산 역시 훌륭한 교감 지점이니까. 알려지지 않은 동해의 바다도, 남해의 하얀 백사장도 자연 교감의 장소다.


잊지 말고 할 일은 너의 꿈을 그려보는 것이다. 당연히 거창하거나 화려하거나 세련된 꿈일 필요는 없다. 그저 너의 꿈을 그려보렴. 어린 시절, 세계 최고가 되고 싶었던 꿈이 시간이 지나며 현실과 타협된 이야기를 너도 들었을지 모른다. 먼 곳에서 그린 꿈이 한낯 여행의 한 구성요소로 끝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렸다’와 ‘보고만 왔다’는 다른 이야기임이 분명하다. 그러니, 작은 종이나, 너의 머릿속에 한 번 그려보렴. 5년 후의 너의 모습, 혹은 10년 후의 너의 모습을. 그려보는 것이 핵심이다. 아마도 너의 성격이라면, 허망하게 그리고 끝내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하지만, 어떤가? 과거 네 세상에서 그린 미래와, 지금 멀고 낯선 곳을 경험한 후에 그린 미래가 다를지. 그마저도 여행이 역할을 다한 것이다. 여행의 시간을 귀하게 사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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