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은 우리 삶의 모든 측면을 바꾸어 놓았다. 우리는 기술의 변화와 함께 성장하며 다양한 기기를 접해왔다. 이 에세이에서는 내가 경험한 기술의 진화와 그에 따른 개인적인 변화를 살펴보고자 한다.
어린 시절, 우리 집에는 다이얼 전화기가 있었다. 전화가 울릴 때마다 집안에서 누가 가장 빨리 전화를 받을지를 두고 작은 경쟁이 벌어지곤 했다. 다이얼을 돌리며 친구들과의 대화를 이어가는 재미는 그 자체로 특별했다. 또한, 아버지의 카세트 플레이어를 통해 들었던 비틀즈의 노래는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소중한 기억이다. 저녁이면 라디오를 통해 흘러나오는 DJ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다. 히트 프로그램, 스타 DJ 역시 탄생했다. 영화 음악 전문 프로그램도, 대중음악과 토크가 가득한 프로그램도. 그들은 지금 모두 어디에 있나?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팟캐스트에서 그 명맥을 잇고 있다.
필름 카메라로 촬영한 가족사진은 앨범 속 소중한 추억으로 남았다. 서재 한 부분에는 책과 더불어 사진 앨범이 꽂혔다. 인문학적 감상은 없었어도, 우리 집 앨범은 우리가 자주 찾는 베스트 이야기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무선 전화기와 PDA가 등장했다. 무선 전화기로 집 안 어디서나 통화할 수 있게 되면서, 전화를 받기 위해 뛰어가던 일은 사라졌다. 반찬 하던 손으로 전화를 받아 전화기에 묻은 반찬을 닦아 내는 일은 다음 사용자의 짜증이 되기도 했다. ‘우리 집‘을 외치던 휴대폰은 또 어떤가? 디지털 사진을 경험한 순간이기도 하다.
PDA는 내게 노트북의 전신이자 스마트폰의 전신이었다. 아마도 앱 시장이 활성화 됐다면, 컴퓨터에 전화 기능이 추가됐을 것이다. 스마트폰은 전화가 앞선 덕분에 통신사라는 거대 투자사가 제조사와 어깨동무를 했고, 지금의 시대가 됐다.
첫 컴퓨터인 286 PC는 마치 새로운 세상을 여는 열쇠 같았다. 게임부터 워드 프로세서까지, 새로운 가능성을 탐험하는 데 하루가 짧을 정도였다. 처음으로 노트북을 갖게 되었을 때, 마치 세상을 손에 넣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때부터 배터리가 내 생활에 들어왔다. 컴퓨터 교체 전에 살펴볼 사양 중 주요 항목이 됐다. 카페에서 숙제를 하고, 도서관에서 리포트를 작성하며 이동의 자유를 만끽했다. 당시 노트북 브랜드의 캐치프레이즈는 ‘Any time, Ant where’였다. 이는 익숙해진 우리의 문명이 됐다.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모든 것이 달라졌다. 처음 스마트폰을 손에 쥐었을 때, 그 화면을 스와이프 하는 감촉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마우스가 핑거팁으로 변한 순간이다. MP3 플레이어에서 스마트폰으로 옮겨가면서, 수많은 노래를 한 곳에 담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스트리밍 서비스가 되며, 음악을 듣는 방식 자체가 바뀌었다. 이제는 듣고 싶은 음악을 즉시 검색해 들을 수 있고, 새로운 음악을 추천받기도 하며, 다른 사용자가 구성하고 공유한 플레이리스트에서 내 취향의 음악을 발견한다. 다양한 매체를 구성해 한 화면에서 뉴스를 보는 일, 종이 플래너를 앱으로 대체한 것, 항공권을 예매하고 극장표를 브랜드 혜택으로 저렴하게 예매한다. 기기와 기술의 발전은 서비스 발전을 이끌고 혹은 영향받았다. 제주 한 달 체류 여행은 폰 하나면 준비가 끝난다. 사진기와 노트북이 없어도 풍경과 경험 기록이 가능하다.
디지털카메라와 DSLR은 이제 스마트폰 카메라에 자리를 내주었다. 한때는 거창했던 장비들이 이제는 손 안의 작은 기기에 모두 담겨 있다.
이러한 기술 변화는 생활 방식을 크게 바꾸어 놓았다. 특히, 스마트폰은 편리함을 가져다주었지만 때로는 아날로그 기기의 감성을 그리워하게 한다. 친구들과 함께 다이얼을 돌리던 전화기의 추억이나, 아버지와 함께 카세트에 녹음했던 그 시절의 즐거움은 그 어떤 첨단 기기로도 대체할 수 없다. 함께 하던 문화가 개인 생활로 전환됐다. 이젠 각자 원하는 콘텐츠를 즐긴다. 사이가 좋고 취향이 수용적이면 공유하기도 한다. 터치 스크린의 편의성은 인정하지만, 여전히 버튼을 누르는 손맛을 좋아한다. 아날로그와 디지털 사이의 균형을 찾는 것은 나에겐 계속되는 도전이다. 과거의 문화 중 내게 지속되는 버튼의 감각과, 새로 다가온 터치의 감각 사이에서, 나라는 과도기 세대는 신세대보다 더 풍부한 문화를 즐긴다. 아직도 리모컨 버튼이 사용되지만, 스마트 패드 터치로 채널을 돌리는 아이들이다. 어쩌면 우린 싫은 단절을 경험하고 있나 보다. 아직 유용한 버튼을 이것을 사용해 보지 않은 아이들은 모른다. 멀리 떨어져 조작하는 맛을 모른다. 내 것을 가까이에 두고 손으로 쓸며 즐김에 익숙하다. 멀리 두고 보는 맛을 그들은 모른다. 그렇게 가까이에 두면 애정이 더 빨리 식진 않을까?
나는 과도기 세대로서, 이러한 변화를 직접 경험했다. 다이얼 전화기부터 스마트 기기까지, 안테나 기반 지상파 TV부터 OTT 서비스까지, 나에게 기술의 등장은 어장관리에 가까운 즐거움의 시간이자, 끊임없이 적응해야 하는 대상이었다. 새로운 것이 익숙해질 때쯤이면, 또 다른 변화가 찾아왔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도 나는 아날로그와 디지털 모두를 즐기는 풍족함 속에서 살고 있다. 더불어, ‘SS501’을 ‘에스에스 501’로 읽어 놀림을 받기도 했다(더블에스 501이라 읽더군).
기술은 계속 발전할 것이다. 인공지능과 사물인터넷, 가상현실 등 새로운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나는 과거를 여전히 남겨두고 신기술에 적응해 나갈 것이다. 동시에, 새로운 기술의 편리함을 즐기면서도 옛 감성에 아날로그 기기를 만지작거릴 것이다.
이렇게 기술은 제 삶을 풍요롭게 했지만, 그 변화를 따라잡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기술은 앞으로도 우리의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 줄 것이다. 미래에 어떤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든, 나는 그 과도기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즐길 준비가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