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의 100년 전통 인간관계 수업에서 “세상은 자신이 아는 만큼 보이고, 아는 만큼 들린다”라는 말을 외국어 학습에 적용하고 싶다.
우선, 외국어를 정의해 보자. 외국어란 자국어를 제외한 모든 언어를 의미한다. 이는 명백한 정의다. 외국어는 우리나라 말을 제외한 모든 언어로, 그 언어가 체계적이든, 문자로 표현할 수 있든 상관없이 외국어로 간주된다.
그러면 나에게 특별한 외국어는 무엇일까? 나에게 특별한 외국어는 내가 배우고 싶은 외국어다. 내가 그 언어를 배우고 싶은 이유는 듣고, 말하고, 읽고 싶은 작품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영화 Perfect Days를 떠올려보자. 이 영화의 주인공은 오래된 중고서점에서 문고판 서적을 고르고 골라 매일 읽는다. 나 또한 그런 서점을 찾아가 한 권을 골라 읽고, 그다음 책을 선택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이 영화에서 언급된 도서들은 윌리엄 포크너의 <야생 종려나무> ,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11>, 고다 아야의 <나무>다. <야생 종려나무>는 국내에 <야생의 정열>이라는 제목으로 1958년에 번역되었으며, <11>과 <나무>는 절판된 상태다. 하지만 일본의 중고 서점을 방문한다면 이 책들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나는 일본어를 읽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일본어를 배우고 싶은 첫 번째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누구나 보고 싶지만, 번역된 텍스트나 더빙된 콘텐츠로만 접하는 언어가 있을 것이다. 번역이나 더빙은 원작의 문화적 표현을 그 나라의 시청자에게 맞게 변환한 결과다. 외국어에 눈과 귀가 열리면, 작가가 의도한 뉘앙스에 더욱 가까워질 수 있다. 이것이 내가 외국어를 배우고 싶은 두 번째 이유다.
이제, 내게 필요한 것은 용기가 아니다. 그냥 히라가나와 가타카나를 외워서, SNS나 책에 있는 일본어를 읽기 시작하면 된다. 한자에는 독음이 달려 있을 것이니, 뜻을 몰라도 읽을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나의 외국어 학습이 시작된다.
외국어는 듣기에서 시작된다. Native 아이들이 자국어를 익히는 방법을 생각해 보자. 그들은 반복적으로 듣는 과정을 거친다. 엄마가 반복적으로 말을 걸며 하는 단어와 문장을 받아들인다. 하지만 우리는 외국어를 배울 때, 잡념이 많아 어려움을 겪는다. 외국어는 일찍 배울수록 좋다는 이유도, 바로 이러한 무의식적인 받아들임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사과 사진을 보고 단순히 ‘Apple’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처럼, 잡념 없이 외국어를 익히는 것이 중요하다. ‘Apple은 사과니까 사과를 말하는 것이구나’ 따위의 잡념은 외국어를 아는데 걸림돌이 된다.
내가 외국어를 배우고 싶다는 열망을 느낀 것은 2005년 뉴욕에서였다. 한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고 있었는데, 옆에 앉아 있던 사람이 “아! 나 이 책 아는데, 좋았어”라고 말을 걸었다. 짧지만 자연스러운 대화가 이어졌고, 그 순간 여행의 진정한 즐거움을 느꼈다. 단순히 관광지에서 사진을 찍고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그곳 사람들과의 예기치 않은 대화를 통해 얻는 경험은 전혀 다른 감동을 준다. 내가 영어를 더 잘 듣고 말할 수 있었다면, 그 사람과 책에 대해 더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넌 지금 어떤 책을 읽고 있니?”라고 물어보고, “난 그 책 모르는데, 어떤 책이야?”라고 대답하며 대화했을 것이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Strand Bookstore에 가볼 이유가 생겼을 것이다. 가이드북에서 읽고 방문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자연스럽게 대화에서 책과 장소를 추천받는 것은 여행의 또 다른 즐거움이다.
외국어를 배우는 과정이나 방법은 입시 위주의 교육 환경과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그 목적은 전혀 다르다. 단어를 많이 알수록 좋고, 어휘를 많이 익히면 표현이 풍부해지고 이해력이 높아진다. 그러나 외국어를 배우는 진정한 이유는, 그 언어와 문화에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서다.
예를 들어, 영어에서 “To kill a mockingbird is a sin”이라는 문장을 번역할 때, “흉내쟁이 새를 죽이는 것은 죄다”라고 직역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문장을 의역하면, “죄 없는 이를 해치는 것은 나쁜 일이다”라는 더 깊은 의미가 드러난다. 마찬가지로 “Break a leg!”은 직역하면 “다리를 부러뜨려!”가 되지만, 의역하면 “행운을 빌어!”라는 의미로 전달된다.
또한 일본어에서 「腹を割る」는 직역하면 “배를 가르다”가 되지만, 의역하면 “솔직하게 털어놓다”라는 의미로 더 정확히 전달된다.
이런 번역과 의역의 차이를 이해하면서 외국어를 배워가는 과정은 더 큰 즐거움을 준다. 외국어를 통해 새로운 문화를 이해하고, 그들의 표현 방식에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외국어 학습의 목적이 아닐까? 당신은 아직도 TOEIC 교재를 붙잡고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