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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한 병, 한 잔

by 가브리엘의오보에

왜 술을 마실까? 아니, 술은 왜 애용될까?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는 한 해 평균 소주 23병을 마신다고 한다.

나는 이 수치에 얼마나 기여했을까?

아니, 우리는 왜 그렇게 술을 마시는 걸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소비량은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고민도, 즐거움도 줄어들고 있다는 의미인가?


사람들은 기쁠 때, 아플 때, 슬플 때, 사랑할 때, 화가 날 때, 기념할 때 등등 술을 마신다.

혼자일 때도 술을 마신다. Bar가 대표적인 장소일 것이다. 아니, 식탁 위인가?


대부분의 경우, 1명 이상의 사람들이 모여서 술집의 문을 연다.

동호회일 때는 10~20 명 이상이겠지?

회식 역시 많은 사람들이 '회사 돈'으로 술을 마시니 혁대를 풀어 버릴 수 있다.

그 술값을 벌기 위해 혁대를 졸라 메어야 하겠지만.


오늘은 이야기의 초점을 '나'로 잡아 본다.

나는 왜 술을 마실까?


술은 문제 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물질이다.


애인이 이별을 통보해 왔다.

오늘도 상사는 자신이 구축한 생추어리에 집착한다.

친구가 날 오해하고 곁에서 멀어진다.

고단한 밤이 끝나고 야근 수당이 들어왔을 때,

잘 커준 무남독녀가 생일을 맞이했을 때,

우리는 기쁨의 한 잔을 나누며 그 순간을 영원히 기억하고 싶어 한다.


한 잔 하자.


술은 무척 아플 때, 통증을 경감하는 약효가 있다.

사람들이 술을 찾는 이유다.


차가운 소주 한 잔을 원샷한다.

목이 짜르르하다. 안주는 없다.

술과 대작하는 맛을 따라올 안주는 없다.

약간 속이 비어 있다면 짜르르 함은 짜릿함이 된다.


소주 1병을 잔 70%씩 나누어 마시면 7잔 반이 나온다.

주량에 따라서는 모자를 수 있는 양이다.

나에겐 딱 기분 좋은 양이다.


술이 피를 따라 흐르며 몸과 마음을 이완한다.

괴롭고 아픈 현실에서 한 발짝 벗어날 수 있다.

지금의 즐거움을 훨씬 크게 느낄 수 있다.

웃음소리도 더 커지고, 몸짓도 더 커진다.


마셨을 때 기분이 좋아지는 주량을 알 필요가 있다.

무엇이든 과하면 해가 되니까.

나의 경우, 소주라면 한 병, 양주라면 언더록 2잔, 아니 3잔.


분위기는 술 마시는데 좋은 영향을 주진 않는다.

잔을 따르는 속도, 잔을 기울이는 속도를 높인다.

'~를 기념하며',

‘아, 젠장!',

'그 XX 뭐야, 마셔!' 등등.


혼자 술을 마시는 것을 선호하는 이유는, 내 속도대로 술을 마실 수 있어서다.


마음의 진정제 효과는 꽤 크다.

마실 때, 아니, 현실에서 한 발 물러설 수 있는 마법은 중독될 정도다.

아프지 않게 된다.

통증에 무뎌지게 된다.

마시면 마실수록 통증은 줄어든다.

통증에서 벗어난 이 즐거움은 계속하고 싶다. 술을 계속 들이켤 정도로 아프기 때문이다.


기쁨에만 주목할 수 있으니 한 잔에 또 한 잔을 더한다.

감각은 즐거움을 느끼는데 집중된다.

세상이 손바닥 만하게 보이고, 모두 내 발아래에 있는 것 같다.


술이 과하면 괴로움의 선물을 받는다.

오늘 무엇을 먹었는지 확인시킨다.

땅이 흔들리고 또 다가온다.

다리에 힘이 빠져 잘 서 있을 수 없다.

길바닥을 방처럼 사용한다.

가로수가 이렇게 기대기 좋은 존재인지 몰랐다.

어렵게 택시를 잡았는데, 실수할까 봐 애써 기분 좋았던 마음이 긴장에 흔들린다. 비닐봉지라도 귀에 걸고 탈 껄.


집에서, 냉동실에 30분 넣어둔 소주를 꺼내 마개를 딴다.

유리잔도 좋고 사기 잔도 좋다.

한 잔 가득 붓고 그대로 원샷.

기쁘던, 아프던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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