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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방랑을, 때로는 여행을

by 가브리엘의오보에

여행은 목적지(목표)가 정해져 있고, 그 목표를 향해 계획적으로 움직인다. 비록 예측 불가능한 일은 생길지라도, 큰 틀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안정적으로 통제하려 한다. '여행 패키지'처럼 일정한 안락함과 예측 가능한 결과(성공적인 도착)를 기대한다.


방랑은 인생의 목적지나 방향이 아직 정해지지 않았거나, 정했던 계획이 틀어져 정처 없이 떠도는 상태다. 매 순간의 상황에 반응하며 유동적으로 움직인다. 불안정하지만, 그 불안정함 속에서 새로운 길을 발견할 수 있는 가능성과 함께 극도의 자유를 경험한다.


여행과 방랑은 단순히 지리적인 이동을 넘어, 우리가 삶을 대하는 태도와 상태를 상징하는 훌륭한 비유가 될 수 있다. 때로는 삶의 안정을 위해 '여행'처럼 계획적으로 살다가도, 새로운 목적지를 찾기 위해 '방랑'하는 시간이 필요할 수 있다.


여행(Travel)과 관광(Tour)의 차이


여행과 관광은 모두 '거주지를 벗어나 이동하는 행위'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그 목적, 성격, 태도 등에서 차이가 있다. 두 개념을 명확히 구분하는 학술적인 정의는 다양하지만, 나는 이렇게 정의한다.



여행(旅行)은 '두루 돌아다닌다'는 한자처럼, 여정 자체에 의미를 두며 자기 발견, 새로운 경험, 사색 등을 그 본질로 한다. 목적지까지 가는 과정과, 그곳에서의 모든 활동을 여행으로 정의할 수 있다. 능동적, 주도적 활동이며 내면적 만족을 추구한다. 관광(觀光)은 '빛나는 것을 본다'는 한자처럼, 다른 지방이나 나라의 풍경, 풍물, 문물 따위를 구경하고 즐기는 행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래서, 하나의 사업이 되는 것이다. 목적지의 볼거리나 소비 행위에 중점을 두며, 종종 산업적 활동을 수반한다. 수동적, 계획된 형태를 띤다.


여행은 스스로 일정을 짜고 미지의 것에 도전하며, 낯선 곳과의 깊은 교류를 시도하는 '여행자'의 태도를 띤다. 예기치 않은 상황에 당황하지 않고 그 안에서 지혜를 얻으려 한다. 관광은 이미 설계된 일정과 상품을 따라가며 편안하고 안전한 구경을 목표로 하는 '관광객'의 태도다. 정해진 코스나 명소를 빠르게 관람하고 돌아오는 경향이 있다.


넓은 의미에서 보면 관광은 여행이라는 큰 범주 안에 포함되는 특정한 형태라고 본다. 여행은 이동 자체를 포함한 모든 제반 활동을 아우르는 총칭이며, 관광은 그중에서도 '구경하고 즐기는' 활동에 초점을 맞춘 행위라고 분류하겠다. 결국, 여행은 삶을 발견하고 확장하는 과정이라면, 관광은 볼거리를 소비하고 즐기는 행위에 가깝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렇다면, 여행과 방랑은 또 어떻게 다를까?


'정한 목적지가 없다/있다'가 여행과 방랑을 구분하는 주요하고 명확한 기준이 될 것이다.


여행(旅行, Travel)은 특정한 목적지나 가야 할 도착점(Destination)이 설정되어 있다. 그 목적지가 명소, 휴양지, 혹은 단순히 '다른 지역'일지라도, 떠남의 끝에 도달해야 할 지점이 존재한다. 부산에 가서 해운대를 보고 오는 여행이라든가, 유럽 5개국을 도는 배낭여행이 그 사례일 것이다. 이런 정의이므로, 목적 달성을 위한 계획성과 방향성을 가진다.


방랑(放浪, Wandering)은 정한 목적지 없이 떠돌아다니는 행위다. '그저 가는 대로' 혹은 '발길 닿는 대로' 움직이는 것이 특징이다. 짐을 메고 '어디로 갈지' 정하지 않은 채 무작정 길을 걷는 행위가 바로 방랑이다. 목적이나 계획 없이 정처 없음과 자유로움을 본질로 한다. 따라서, 현대적 의미의 여행은 출발점과 도착점이 명확한 이동의 의미를 내포하는 반면, 방랑은 도착점 없이 유동하는 상태를 강조한다고 본다.


내면의 성장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정해진 틀을 벗어난 방랑(放浪)이 여행보다 더 깊은 울림과 변화를 가져다줄 수 있는 강력한 요소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극대화된 주도성과 자발성


여행이 '목적지'라는 목표를 향한 계획된 이동이라면, 방랑은 목적지 자체가 없으므로 모든 순간이 순수한 선택과 결정의 연속이다. 여행은 정해진 루트 내에서 선택한다. 오늘 갈 식당을 정하고, 오늘 방문할 장소를 미리 정하는 것이다. 방랑은 루트 자체를 매 순간 결정한다. 동쪽으로 갈지, 여기서 며칠 머물지 계획 없이 그때 그때 정한다. 이러한 극단적인 자발성은 스스로 삶을 주체적으로 이끌어가는 능력을 강화시키는데 도움이 된다.


고정관념과 계획의 해체


방랑은 계획을 최소화하거나 완전히 배제하기 때문에, 예상치 못한 상황에 직면했을 때 순발력과 적응력이 극대화된다.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 낯선 사람들과의 교류, 불편함 속에서의 생존 등은 자아의 경계를 확장시키고, 내면의 강인함을 시험하게 한다. 정해진 틀이 없다는 것은 사회나 자신의 습관이 만들어낸 고정관념에서 벗어날 기회가 더욱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 여기'에 대한 집중


목적지가 없다는 것은 서둘러 어디론가 가야 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이는 현재 머무는 장소, 현재 마주하는 사람, 그리고 현재 느끼는 자신의 감정에 더욱 집중하게 만든다. 이러한 멈춤과 관찰의 시간은 자신과의 대화를 깊게 하고, 평소 놓치기 쉬운 내면의 목소리를 듣는 데 유리하다.


방랑은 '불편함 속의 자유'를 통해 익숙한 자아를 해체하고 새로운 성장을 강제하는 더욱 근본적인 방식의 여정일 것이다. 다만, 이러한 방랑의 경험은 개인에 따라 극도의 불안감이나 고립감을 동반할 수도 있다는 점 또한 고려해야 한다.


언제나 여행을 한다면, 지루할 것이다.

언제나 방랑을 한다면, 생은 지옥의 연속일 것이다.

언제나, 지나침이 없는 상태가, 여행과 방랑이 인위적으로 적절히 조화를 이룰 때, 우리는 ‘나이에 맞는 향기’를 발하는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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