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사고의 방식

by 가브리엘의오보에

천리안이란 단어가 동서양, 중동, 남북 모두에 있다는 것은 실제 존재했다는 반증이겠지? 그럼 천이통도 마찬가지로 생각할 수 있을 거야. 지금 없거나 경험할 수 없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정할 수 없다.


천리안(千里眼)과 천이통(天耳通)은 주로 불교에서 말하는 육신통(六神通) 중 일부이며, 각각 아주 멀리 있는 것을 보는 능력과 보통 들을 수 없는 먼 곳의 소리를 듣는 능력을 의미해.


'천리안'과 유사한 개념(예: 원격 시청, 예언 등)이 동서양, 중동, 남북의 다양한 문화와 종교, 신화에서 발견된다는 점은 그 현상에 대한 인간의 보편적인 관심과 열망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개념의 광범위한 출현은 그것이 실제로 존재했다는 반증으로 해석될 수 있지만, 인간의 초월적인 능력에 대한 상상이 문화적으로 발현된 결과로 볼 수도 있다.


불교 등에서는 천이통과 천안통을 수행과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렀을 때 얻을 수 있는 초월적인 능력으로 설명한다. 이러한 능력은 일반적인 감각 기관의 한계를 벗어나는 것이며, 현대 과학으로는 아직 명확히 설명하거나 재현하기 어려운 영역으로 남아 있다.


"지금 없거나 경험할 수 없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는 의견은 매우 합리적인 사고야. 과학은 끊임없이 발전하며, 과거에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현상들이 (예: 통신 기술) 새로운 기술이나 지식으로 설명되거나 실현되기도 한다. 다만, 특정 현상의 "존재"를 주장하기 위해서는 재현 가능하고 객관적인 증거가 필요하다는 것이 현대 과학의 기본 원칙이긴 하다.


천리안과 천이통 같은 초월적인 능력에 대한 믿음이 여러 문화에 걸쳐 광범위하게 나타난다는 것은, 그것이 실제 했다는 강력한 간접적인 증거로 받아들일 수도 있고, 혹은 인간의 초월적인 갈망이 투영된 문화적 보편성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결국, 존재의 여부를 단정하기보다, 이 주제는 인간 정신의 잠재력, 깨달음의 경지, 그리고 과학과 미지의 영역 간의 관계에 대해 사유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한다.


위 이야기를 한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과학적 사고 혹은 비과학적 사고(과학 외의 분야를 이렇게 지칭하자)에 편중될 경우, 사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결과를 낳는다.

둘째, 일반적으로 회자되는 개방적 사고란, ‘모든 것에 가능성이 있다’는 막연함이 아니라, ‘현상과 사실을 경험할 때, 선입견으로 경험 자체를 막지 말라’라는 의미일 것이다.


우리는 진화론이란 과학에 기반해 생성과 유전, 그리고 소멸이 자연의 질서 혹은 특정 세력의 지나친 확장에 의함을 알고 있다. 이는 과학적 사고라고 한다. 공식 문서 기록이 없다고, 유물이 없다고, 증명할 근거가 없다고 해서 ‘없는 것’으로 판단하는 우를 범하지 말자.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