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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즐 #17. 가사로 노래를 부르면 당할 수가 없다

by 가브리엘의오보에

나는 노래를 '이야기를 멜로디에 담아 전달하는 행위'로 정의한다.

작곡을 하고, 그 곡에 가사를 붙이는 것이 아니라,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제대로 전달하는데 필요한 멜로디를 만드는 것이 작곡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요즘은 작곡을 하고 작사를 하지만 말이다.


그 대표적인 시작이 음유시인이 아닐까?

그들은 신화, 다양한 뉴스를 멜로디에 담아 전한다.

말하는 방식으로는 전달 효과가 덜 했던 걸까?

직접 들어본 적은 없지만, 지금의 음악과는 많이 다를 것이다.

그에 비하면, 현대의 음악은 매우 정교해졌다고 할 수 있다.


나는 가수를 '가사로 노래를 부르는 사람'과 '소리를 좇는 사람'으로 나눈다.


가사로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은 단어, 글자 하나하나를 꼭꼭 씹어 전한다.

가사 속 단어에 음악 속에서의 의미를 담아 청자에게 전한다.


이는 딕션(diction)과는 다르다.

딕션은 사전적으로 발음의 정확성을 의미한다.

딕션이 명확하다고 해서 가창이 자동으로 감동을 선사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단어 하나하나를 정답처럼 발음하는 데 집중하면, 이야기의 흐름을 방해하고 가창이 딱딱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내가 말하는 '가사로 노래를 부른다는 것'은 정확한 발음을 넘어, 보통의 말투를 멜로디에 실어 그 의미를 과장하거나 극적으로 해석해 전달력을 강화하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억양, 호흡, 템포 변화를 통해 이야기로 전할 메시지를 증폭하는 것이다.


내가 요즘 즐겨 보는 예능 '우리들의 발라드'에서 사례를 찾아보자.


김민아, <내 사랑 내 곁에>

https://youtu.be/1 qjkKpJE4 jE? si=O70 HdnMYFOJjBwkJ

이렇게 가사로 노래를 부르면 당해낼 수가 없다.

김민아는 김현식의 곡을 자신의 이야기처럼 읊조리며 전달력의 정수를 보여준다.


한 곡 더 들어보겠는가?


이서영, <꿈>

https://youtu.be/D42 MeC9 WcRM? si=vdOl8 jgQ9 ftfz3 H_

이서영의 <꿈>은 가사의 무게만큼 템포를 늦춰 듣는 이에게 사색할 시간을 허락한다.


이런 경우도 있다.

멜로디 라인 등 손을 많이 댔지만, 노래가 전하려는 바를 극대화한 경우다.


임지수-김영흠-나상현의 'Tears'

https://youtu.be/UbAtG6 Na0 ls? si=Lmx6 k6 EgjF-mcUkP

멜로디 라인 등 편곡에 손을 많이 댔지만, 노래가 전하려는 간절함을 극대화한 경우다.


'우리들의 발라드'를 시청하는 동안 몇 곡이 떠올랐다.

그리고 '가사 중심 취향'을 만족시킨 보석 같은 곡들을 여럿 발견했다.

특히 이 곡들은 가창이 지닌 메시지 전달의 힘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문세, <사랑 그렇게 보내네>

https://youtu.be/mSHFL2 k3x5 Y? si=8 ZFiPcXbtOti7-eq


신승훈, <사랑, 어른이 되는 것>

https://youtu.be/3 geRA7 a3 HIo? si=63 HOpUrcNOk4 ABPE


이적,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https://youtu.be/2 TK0 eL50 EkA? si=v9 YPDVB1_y07 dOCg


어떤가?

당신은 어떤 청취 취향을 가지고 있나?

당신의 플레이리스트에는 어떤 곡이 담기나?


이번 오디션 시청을 계기로,

내 취향의 음악들을 모아,

올해 첫가을 플레이리스트를 구성해 공유하려 계획하고 있다.

우선, 위에서 소개한 음악들을 담아 봤다.


https://youtube.com/playlist?list=PLM1rQ_GENOjhqJxNXKrgk0aE9PNekmVfB&si=rW2KckD_LEkENHjp


내 취향의 음악들을 모으고, 또 반복해서 듣는 즐거움과 함께,

이처럼 가사에 깊이 집중하는 취향 때문에, 나는 요즘 대중음악의 몇몇 현상에 아쉬움을 느낀다.


일례로, K-Pop 그룹 멤버들이 솔로 활동에서

그룹 활동을 위해 대중성과 전달력을 염두에 두고 최적화시킨 목소리 톤을 사용하기보다,

새로운 '소리'나 '테크닉'을 보여주는 데 집중하는 경우를 본다.

또한, 고음 위주의 음원 커버가 줄을 잇는 현상 역시 본다.

이는 '소리를 좇는 가창'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여전히 크다는 방증일 것이다.

나의 취향은 이러한 지향점과는 다소 멀다.


결국 소리를 좇는 가창이 기술적으로 높은 기량을 보여줄 수 있을지 몰라도,

곡의 시작부터 감정을 공유하고 저 높은 하이라이트까지 청자들과 함께 서사적으로 동행한 후 감정을 마무리하는 일에는 '가사로 노래를 하는 가창'이 훨씬 효과적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가창이 단순히 고음을 전달하는 행위에 머무는 대신, 이야기를 완성하는 도구가 되기를 바라고 있다.

이 가을, 이 노래들을 들으며 독자들도 멜로디 속에 숨겨진 이야기의 힘을 함께 느껴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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