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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즐 #16. 나의 ‘지속가능한’ 인테리어

by 가브리엘의오보에

나는 종종 생각한다. '내 마음에 쏙 드는 인테리어는 어떤 모습일까?'


잡지에서 튀어나온 듯 완벽하게 계산된 공간,

유명 디자이너의 손길이 닿은 예술적인 집도 멋지지만,

그런 곳은 어쩐지 '처음'의 감탄 이후에는 시들해질 것 같은 기시감이 든다.


나에게 필요한 건 기계적이고 스킬적인 완벽함이 아니다.


매일 지내도 항상 새롭고, 처음의 설렘이 지속되는 공간.

어쩌면 그 해답은 '지속 가능성'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지속 가능성이라 함은, 환경적인 의미를 넘어

나의 일상과 취향에 딱 붙어

끊임없이 흐르고 숨 쉬는 공간을 의미한다.

이를테면 이런 것들이다:



차가운 겨울바람이 불어올 때,

거실 한쪽에 자리한 패치카에서 장작 타는 소리가 나지막이 들려오는 풍경.

마음은 피서(避暑) 보다 따스함을 원한다.

붉게 타오르는 불꽃을 멍하니 바라보며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시는 시간은

매일매일 다른 위로와 평화를 안겨줄 것이다.

굳이 불을 피우지 않아도,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공간에 온기와 아늑함을 더해주겠지.


물론, 사계절의 변화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작은 텃밭도 빼놓을 수 없다.

창밖으로 초록빛 생명력이 돋아나고,

손수 심은 채소들이 무럭무럭 자라나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기쁨이 된다.

흙을 만지고 씨앗을 심고 물을 주는 행위는 단순한 노동이 아니라,

자연과 교감하며 나 자신을 돌보는 명상과도 같을 것이다.


육체노동, 물질적 대응에 집중하다 보면,

어지러웠던 마음은 온데간데없고,

시간 역시 발이 달린 듯 빠르게 흐르며,

난 어느새 저 앞에 도달해 있다.


갓 딴 상추로 샐러드를 만들고,

허브 잎을 따서 요리에 사용하는 일상.

그 모든 과정이 공간에 살아있는 활력을 불어넣을 테니까.


나의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이 될 주방과 팬트리는 단순히 식사를 준비하는 곳을 넘어,

창조적인 활동이 지속되는 공간이어야 한다.

맛있는 요리를 하고,

향긋한 빵을 굽고,

정성껏 커피를 내리는 모든 행위가 멈추지 않는 곳.


내가 더 넓은 거주지로 갈 경우, 무리를 해서라도 갖추고 싶은 것이 팬트리(pantry)다.

한 달 장보기가 가능할 것이고,

주방 내 수납이 여유로워질 것이다.

시즌별로 도구와 식품을 교체하며 지낼 수 있고,

잊었던 오랜 메뉴를 위해 먼지 쌓인 조리 도구를 찾아낼 수 있다.


게다가, 다양한 식재료들이 보기 좋게 정리된 팬트리는

나에게 끊임없이 새로운 영감을 줄 것이다.

어수선함보다는 정돈된 자유로움 속에서 익숙한 재료로 색다른 맛을 찾아낼 수도 있지 않을까, 마치 작은 실험실처럼?


마지막으로, 내 작업실.

자로 잰 듯 정 없이 냉철하게 정돈된 곳이 아니라,

자유로운 아이디어가 샘솟는 아지트 같은 곳.


책상에 앉아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다가도,

문득 고개를 들면 새로운 영감을 얻을 수 있는 여백이 있는 공간.

일과 휴식의 경계가 모호하게 이어지면서도,

집중해야 할 때는 온전히 몰입할 수 있는 유연함을 가진 곳이면 좋겠다.


창밖 풍경이 시원하거나,

좋아하는 책과 그림들이 자연스럽게 놓여 있어

언제든 손을 뻗을 수 있는 그런 곳.

내 작업이란 세계와 책 혹은 그림 또는 음악이라는 세계로의 자유로운 왕복이 가능한 곳.

VR기어로 마음껏 이세계 체험을 할 수 있는 곳.



집은 단순히 머무는 장소가 아니다.

패치카의 불빛은 기억을 잇고,

텃밭은 시간을 일깨우며,

주방은 관계를 익히고,

작업 공간은 사유를 길러낸다.


겨울의 불빛과 봄의 새싹,

여름의 향기와 가을의 색감이 한 지붕 아래 모여 나를 둘러싼다.

이 집은 곧 하나의 이야기이며, 나를 닮아가는 작은 우주다.


나는 이 모든 요소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매일매일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공간을 꿈꾼다.

색깔이나 가구의 유행에 얽매이지 않고,

오직 나의 삶과 취향이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깊이를 더해가는 그런 집.


아마도 이것이 내가 추구하는,

'항상 새롭고 지속 가능한' 인테리어의 본질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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