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의 조각
- 숲 속 고요한 길
- 마음을 움직이는 커피 향기
- 편중되어 만족스러운 음악 듣기
- 책 읽기
- 느낌과 깨달음을 주는 만화, 그리고 애니메이션
- 세상에 하나뿐인, 재미있는 것을 좋아한다
- 나를 울컥하게 한다면 몇 번이라도
- 외국에 체류
물질의 조각
- 나를 사랑하는 운동 방법
- 빠른 취침과 이른 기상이 주는 여유로움과 결과의 달콤함
- 만들어 주위를 즐겁게 하길 즐겨
지식의 조각
- 실험과 시도로 세상 확인하기
- 검색이 주는 속 시원함
- 내 커피 맛을 찾기 위한 끝을 정하지 않은 여행
- 내가 사랑하는 것을 기록해 나가기로 했다.
앞으로도 내 퍼즐 조각을 찾고 마음속에 새겨 나갈 것이다. 되도록 사실 만을.
'있는 그대로 적는다' 만큼 달성하기 어려운 기준은 없다.
하지만, 가능성이 낮다고 노력을 포기할 이유도 없다.
한 조각 찾았을 때, 전율이 흐른다.
누군가에게 전하기 위해 작성하는 것이 아니라, 그 조각을 하루에도 몇 번씩 눈으로 더듬는다.
기록에 누락이 없을수록, '나'라는 퍼즐은 완성에 다가갈 것이다.
물론, 인정한다. 인간의 삶에서 완료는 없다는 것을.
인간의 삶은 아침에 다르고 저녁에 다른 상황에 대응하는 과정이다.
그러므로, 세상의 변화가 멈추지 않는 한 결말은 없다.
다만, 죽음으로 중단될 뿐이다.
그럼에도, 유전자, 보고 들은 바 등으로 또 다른 나를 찾는 과정은 지속될 것이다.
내가 모은 조각들은 다음 세대의 시작이 될 수 있다.
무엇이 나를 만족시키는가로부터 나는 누구인가에 이르는 길.
완료는 없다.
진작에 모으기 시작했다면, 지난 시간 내가 저지른 우왕좌왕의 과정은 시간이 갈수록 줄어들었을 것이다.
반복되지 않았을 것이다.
타인의 모습이 부러워 이탈하기도 했다.
CM에 감동해 충동을 참지 못했다.
허전함을 달래려 무언가를 집어 들기도 했다.
내가 울컥할 정도로, 눈물이 핑 돌 정도로 나를 만족시키는 것은 무엇이었나?
시의성 없이 지금도 나를 감동시키는 것은 무엇인가?
그 모든 것에 만족하는 나는 누구인가?
답이 없는 의문문, 'Who am I?'의 답을 구하고 있다.
이 모든 모습이 나다
닥터 지바고에서 니콜라이 삼촌은 어린 유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네 손으로 한 일, 네 가족, 다른 사람 속의 너.
타인의 눈에 비친 나는, 타인의 삶 경험을 통해 인식되니, 내 모습은 아닐 것이다.
퍼즐은 오롯이 나 스스로 바라본 나다.
나 역시 삶 경험으로 스스로를 미화할 수 있다.
그래서 되도록 사실만을 기록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퍼즐을 모으는 것도 나고, 만족스러운 것 외에는 여과해 버리는 것도 나다.
여과지 위에 남은 것들을 긁어모아, 나를 더욱더 만족시키도록 내 노력과 힘을 더한다.
점점 더 정교하게, 점점 더 세밀하게. 정련(refine)의 과정을 반복한다.
매월 마지막 주는 공공도서관에서 책을 10권 이상 대여할 수 있는 기간이다.
2025년 8월 마지막 주에 대여한 책들(작가명 생략):
에세이즘
디자이너 함께하며 걷다
현명한 이타주의자
일본 문화로 알아보는 일본어의 속성
캐리어의 절반은
책은 도끼다
P.S. 데이스
안도 다다오, 건축을 살다
사카나와 일본
해적의 시대를 건너는 법
일의 기쁨과 슬픔
신에 맞선 12인
H마트에서 울다(두 번째 대여)
죄와 속죄의 저편
좌파의 길
How To Read A Person Like A Book(외서)
이것이 나다!
당신도 언젠가 자신만의 퍼즐을 맞추고 싶다면, 내가 남긴 조각이 작은 힌트가 되길 바란다.
첫째, 이 과정은 내가 나를 위해 찾은 길이다. 당신에게 맞지 않는 열쇠일 것이다.
둘째, 당신은 이런 과정조차 필요 없을 정도로 만족의 바다에서 솜씨 좋게 수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셋째, 혹시 나를 찾는 여정 자체에 가치를 느끼지 않을 수 있다.
이런 이유를 대지 않아도, 이미 알고 있지 않은가?
동시대에 살고 있어도, 당신과 나의 시간은 그 내용에서 흐름 속도에서, 모든 상황에서 추출하고 획득하는 경험에서 다르다는 것을.
나에게는 나의 길이 있고, 당신은 당신 만의 길을 이미 걷고 있다.
어쩌면 우리는 같은 숲 다른 길을 걷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재미있는 생각이야'라는 한 줄의 생각이 여러분 앞에 내 퍼즐을 드러내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