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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즐 #15. 사랑하는 것을 기록하는 법

by 가브리엘의오보에

감정은 점층적으로 다가온다.

‘좋아해’보다 큰 감정은 ‘사랑해’라고 정의한다.


사랑의 어원에 관한 지배적 주장은 이렇다.

'생각하고 헤아린다'는 뜻의 사량(思量)에서 유래했다.

이 어원대로라면, 좋아해 보다 큰 감정을 사랑이라고 정의하는 것도 의미 있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의 가장 명확한 사례는 이렇다.


쵸파는 다른 사슴들과 다르게 태어났다(코가 파란색).

이질적인 것을 배척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서워서? 다르니까 곁에 두고 싶지 않고 다가오면 싫어서?

그러던 쵸파는 악마의 열매 ‘사람사람 열매’를 우연히 먹게 된다.

완전히 달라졌다.

사슴 사회 내에서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되어 버렸다.

괴롭힘이 뒤따랐다. 스스로 나가게 하는 것이 조직의 사회적 위상을 다치지 않게 하는 방법이다.

쵸파는 열매의 힘으로 사람으로 변신한다. 하지만, 일반적인 사람의 모습이 아니다.

난생처음 보는 이런 존재는 방어의 대상이다. 총을 맞았고 쓰러졌다.


이런 상처 많은 쵸파에게 루피는 동료가 되라고 한다(7단 변신의 신기 존재인 데다, 사슴이니 비상식량이라고 생각했지만).

쵸파는 자신의 상처를 이유로 든다.

“사슴인 내가 사람과 어떻게 함께 해!”

“나는 사슴도 인간도 아닌 괴물이야!”

모두 쵸파에게 상처를 준 말들이다.

하지만 루피는 이렇게 외친다.

“어쨌든, 가자!”

생전 처음으로, 쵸파에게 동료가 생겼다. 그렇게 갖고 싶었던 존재다.


난 루피의 행동에 울컥했다. 쵸파의 과거를 아는 나이므로 당연하다.

루피는 쵸파의 사정에 관해 잘 모르는 상황이었다.

동료를 구하겠다는 생각 외에는 없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쵸파에게 다른 접근이다.

박사를 제외한 모두가 배척한 자신에게 동료가 되라는 제안은 너무나 따스한 손길이다.

모르고 한 제안이지만, 난 이미 울컥하고 있었다.

저런 제안, 나도 받고 싶었다. 내 등 뒤를 맡길 동료가 된다고. 나에게 등 뒤를 맡기겠다고.


의학 지식이 없는 쵸파가 실수로 박사에게 독버섯 수프를 먹게 한다.

쵸파는 신념의 상징인 해적기를 흔들며 닥터 쿠레하에게 의사가 되도록 도와 달라고 한다.

자신이 만병 통치약이 되겠다고.

자신의 무지가 자신의 사랑에게 큰 상처를 입혔다는 사실이 그의 외침에 힘을 더한다.

나 역시 스승을 갖고 싶다.

내가 하는 일을 제대로 알려 줄 스승 말이다.

스승을 얻으려는 그의 의도보다도, 박사가 알려 준 신념의 표식을 흔들고, 박사에게 실수로 독버섯 수프를 준 자신을 회개하며, 앞으로는 절대로 이런 실수를 하지 않겠다는 신념의 외침.


그의 외침이 내 마음을 울렸다. 그것은 곧 나의 외침이기도 했다.

스승을 얻으려는 그의 외침.


나는 늘 가르침을 원했지만, 정작 배움 앞에서는 늘 서툴렀다.


루피 네들과 떠나는 쵸파를 위해 닥터 쿠레하는 바보 아들의 배웅을 박사가 만든 눈 벚꽃으로 배웅한다.

해적이 되겠다는 쵸파에게 도끼와 철퇴를 던지며 ‘웃기지 말라’고 말하는 박사는, 애틋하고 따스한 작별은 하지 못한다. 그를 몰아세우고 탈출용 썰매에 의료 도구 가방을 미리 실어둘 정도의 츤데레 사랑.

내가 자각 못했겠지만, 나에게도 그런 사람이 있었을 것이다.

오히려 나는 이렇게 외치고 싶다.

신념의 상징인 해적기를 흔들며,

“이제 다시는 나를 사랑하는 사람을 모르고 지나가지 않겠다!”라고.


난 이런 울컥하는 순간을 좋아한다.

요즘 다시 정주행 하고 있는 애니메이션 ‘원피스’의 이야기다.


울컥하는 순간은 작품마다 다르지만, 내 마음을 흔드는 본질은 같다.


영화 ‘Yesterday’의 엘리가 잭을 대하는 눈빛, 표정, 행동들을 사랑한다.

처음엔 연인인 줄 알았지만, 그들은 절친이라 생각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내가 아는 누군가도 절친을 그렇게 대하지 않는다.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로 실망하고 줄어드는 잭에게 그녀는 기타를 새로 사주며 그의 등을 떠민다.

“그러지 말고, 힘내서 일어서!”라고 말로 독려하지 않는다.

그런 사람을 갖고 싶다.

아마도 내가 누군가를 그렇게 대해야 하겠지?

관계는 내가 대하는 방식 대로 형성되니까 말이다. 이렇게 잘 알고 있으면서도 나는 항상 그랬다.


나를 울리는 건 결국 ‘누군가가 진심을 받아들이거나 끝내 드러내는 순간’이다.


이렇게, 앞으로는 내가 울컥하는 순간들을 메모하겠다.

내가 무엇을 사랑하는지 명확하게 하겠다.

그런 울컥하는 사람이 바로 나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스쳐 지나듯, 그 순간순간을 보내던 나는 나를 사랑하는 법을 잘 몰랐다.

하지만, 이렇게 하나 둘 명확하게 기록한다면,

나는 나를 더 잘 알게 될 것이고, 결국 나를 사랑하게 될 것이다.

나를 ‘생각하고 헤아리게 될 것’이다.


그 순간순간이 모이면, 결국 나라는 퍼즐의 조각이 될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퍼즐을 사랑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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