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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즐 #14. 홈 바리스타

취향을 찾아, 끝을 두지 않은 시도

by 가브리엘의오보에

집에서의 커피, 그리고 비용


원두를 사다 직접 내려 마시는 게, 카페에서 사 마시는 것과 큰 차이가 있을까? 요즘 원두 값이 오르는 걸 보면 종종 그런 생각을 한다. 카페 한 잔에는 원두 값뿐 아니라 인건비, 임대료, 운영비까지 포함된다. 소비자의 눈에는 단지 원두와 추출 과정만 보일 뿐이지만, 그 뒤에는 많은 비용이 숨어 있다. 그렇다고 그 가격이 부당하다는 건 아니다. 나는 단지 커피를 마시고 싶을 뿐이다.


아직까지는 집에서 내리는 게 조금 더 경제적이다. 캡슐 커피 하나에 1,000~1,200원. 열 개면 1만 원 남짓이다. 반면 스타벅스 톨 아메리카노는 4,700원. 용량을 따져 봐도 내 손에 쥔 230ml 머그는 언제나 이긴다.


게다가 집 근처 100m 이내에는 카페도 없다. 편의점 커피가 괜찮다던데, 아직 손이 나아가진 않는다.




아침의 의식


아침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물 500ml를 마신다. 정수기 물 반, 냉수 반. 그리고 커피를 내린다. 드립이든, 캡슐이든. 나를 깨우는 하루의 첫 의식이다.


내 취향에 맞는 원두를 찾기 위해 드립, 모카포트, 프렌치 프레스, 커피 메이커를 번갈아 쓴다. 가성비 좋은 원두를 구해 실험하듯 추출하며 맛을 맞춘다. 이 과정 자체가 이미 즐겁다.


빨간 머그잔은 나의 단골 잔. 350ml 용량의 이 잔은 아침에 빵을 곁들여 마시기 딱 좋다. 커피만 마실 땐 500ml 가까이 내린다. 실제로는 450ml 정도 나오지만 큰 차이는 아니다.




첫 커피의 기억


처음 마신 커피는 인스턴트였다. 커피 가루에 프림과 설탕을 듬뿍 넣은, 손님 접대용 커피. 그럼에도 내게는 ‘쓴맛’이 먼저 다가왔다. 한동안은 입에도 대지 않았다. 대신 프림 가루를 티스푼으로 퍼먹었다. 어린 입에는 묘하게 재미있는 맛이었다.


본격적으로 커피가 생활에 들어온 건 대학 시절 자동판매기 커피였다. 여전히 가루 + 프림 + 설탕 조합이었지만, 기계가 타 준 커피는 쓴맛보다 단맛이 강했다. 각성 효과도 컸다. 하루에 세 잔은 기본이었다. 당시 거의 매일 마시던 술 탓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다 결국 프림과 설탕은 멀어지고, 쓰디쓴 검은 액체만 남았다. 내 커피 취향의 시작이었다.




잔에서 머그로, 톨 사이즈로


커피 양이 늘어난 건 마치 술과도 비슷했다. 마실수록 양이 많아졌다. 커피를 마시고도 베개에 머리가 닿으면 금세 잠들었다. 늘 생각이 많아 뇌가 멈추지 않았고, 눈을 감아야만 겨우 멈췄다. 몸보다 마음이 더 지쳐 있었던 셈이다.


커피 양이 확 늘어난 계기도 있다. 어느 추운 겨울날, 두 손으로 커다란 머그를 감싼 모습을 본 순간이었다. 그 이후 내 커피는 작은 종이컵에서 머그잔으로, 200ml에서 320ml로 늘었다. 그리고 스타벅스의 ‘톨 사이즈’가 상용화되면서 내 기준은 자연스럽게 350ml로 고정되었다.




아이와 커피, 그리고 냉장고


내가 스스로를 홈 바리스타라고 부르는 건 실력이 뛰어나서가 아니다. 단지, 집에서 실험하고 조율하는 과정이 좋기 때문이다.


아이는 아이스커피를 즐긴다. 그래서 나는 커피를 내려 상온에 두었다가 냉장고에 보관한다. 다이소에서 산 500ml 병에 담아 두면, 아이는 언제든 컵 가득 얼음을 채우고 그 위에 커피를 부어 마신다. 냉장고 속 커피가 떨어지지 않도록 늘 확인한다.


우리 집의 콜드브루는 간단하다. 원두 21g에 물 500ml를 붓고 병을 흔들어 섞는다. 스푼은 쓰지 않는다. 설거지가 귀찮으니까. 입구 넓은 피클병을 세제로 닦아 햇볕에 말린 뒤 원두와 물을 넣고 반나절 이상 냉장고에 둔다. 이후 필터로 거른 커피를 병에 옮겨 담아 다시 보관한다.


아이스커피는 매일 방식이 다르다. 프렌치 프레스로 우려 식혀두기도 하고, 모카포트로 에스프레소를 추출해 희석해두기도 한다. 때로는 커피메이커로 1리터를 내린 뒤 두 병에 나누어 담기도 한다. 다양하지만 원리는 같다.


그래서 늘 원두를 갈아 두어야 한다. 하루 40g, 두 병이면 딱 맞는다. 새벽에 그라인더를 돌릴 순 없다. 모두가 자고 있으니. 그래서 저녁에 미리 갈아둔다. 입구가 단단히 닫히는 유리 용기에 담아 2~3일 안에 쓰면 향은 크게 날아가지 않는다.




차를 내리는 또 다른 시간


차도 좋아한다. 요즘은 냉출법을 자주 쓴다. 영화 <협녀, 칼의 기억>에서 물 끓이는 법을 배웠다. 물이 끓으면 말발굽 같은 소리가 나고, 점점 잦아들다 가장 낮아지는 순간 불에서 내린다. 전기포트라면 그 순간 스위치를 내린다.


차를 내리는 방법은 두 가지. 드립 방식은 커피와 비슷하다. 조금 붓고 기다린 뒤 다시 천천히 부어 내린다. 또 하나는 80도의 물을 주전자에 붓고 잎차나 티백을 담가 5분 뒤 건져내는 방식이다. 여름에는 정수 500ml에 티백 두 개를 넣어 냉장고에 두면 반나절 후 향 좋은 아이스티가 완성된다.


라테는 집에서는 좀처럼 못 만든다. 연유나 바닐라빈 같은 재료는 늘 장바구니에서 밀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라테는 카페에서, 오늘의 커피는 집에서. 내 생활의 균형은 그 정도다.




나만의 커핑 공식


이런 홈 바리스타의 생활은 즐겁다. 혼자 술을 마시듯, 혼자 밥을 먹듯, 내 속도에 맞춰 마실 수 있기 때문이다.


커피는 아직도 ‘내 답’을 찾는 중이다. 10년을 넘게 실험했지만, 어쩌면 평생 도달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내게는 커핑 공식이 있다. 물의 양 × 상수 = 원두의 양. 내 입맛은 0.055, 가족들은 0.033. 나는 진한 커피를 좋아하지만 최근에는 0.042 정도로 내려왔다. 물 500ml에 원두 21g이 가장 마음에 든다. 원두의 종류와 배전에 따라 수치는 조금씩 달라진다. 중배전은 0.066까지 올라간다.


이렇게 연구하고, 조정하고, 시도하는 과정 자체가 즐겁다. 아마 마지막 날까지 나는 커피를 내리고 있을 것이다. 마지막의 마지막에 내가 내린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싶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나와 가족을 위해 무언가를 실험하고 조율하는 그 시간이 나를 살아 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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