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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브리엘의오보에 May 24. 2018

소설 ‘고래’의 주인공은 누구인가?

천명관 '고래'

소설 ‘고래’의 이야기는 마치 옆 사람에게 이야기하는 투로 전개된다. 글이라는 것이, 아니 출판이라는 것이 ‘타인에게 문자로 전하는 이야기’이니 당연하다 생각되지만, 지금까지 많지 않지만 소설, 수필 등 다양한 책을 읽은 경험에 비춰보면 튀는 말투인 것은 사실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다. 중간중간 “독자 여러분~” 같은 문구가 이런 느낌을 더 키운다. 
 
 그런 작법으로 소설 ‘고래’의 이야기는 춘희로부터 시작된다. 교도소를 나와 예전에 생활하던 벽돌공장으로 돌아온 것이 첫 장면이다. 그래서 이 소설의 주인공은 ‘춘희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글을 읽어나갈수록 과연 이 글의 주인공은 ‘춘희인가?’라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때로는 국밥집 노파가 중심이었고, 애꾸눈 아가씨가 이야기의 중심이기도 했다. 그러나 소설 전반을 아우르는 중심은 금복이다. 이야기의 중심에 서서 고난과 역경의 서사를 이끌어 나간 것은 금복이었다. 그리고 소설을 다 읽고 나서는 춘희는 주인공이 아닐 수 있다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주연과 조연 모두 죽음으로 결말을 맺기 때문에, 춘희는 가장 마지막에 생을 마감하는 등장인물로 정리를 해버렸다는 인상이 강하다.  
 
 두 번째 근거는, 이 소설의 제목에 있다. ‘고래’와 연관된 인물은 단연 금복이다. 바닷가에서 우연히 보게 된 고래의 유영은 현실에 옥죄어 있던 금복에게 자유라는 큰 명제를 던지는 트리거(trigger; 방아쇠)였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 이유로 소설의 제목 ‘고래’는 금복이 얻고 싶은 ‘삶의 자유’를 대변하는 메타포이자 상징으로 ‘주인공은 금복이 아닐까?’라고 나는 흔들렸다.  
 
 이 두 가지 근거로 나는 이 소설의 주인공은 금복이라 생각했고, 그 판단은 당연하고 명확하다 확신했다.  
 
 그러나 책을 덮고 나서 생각을 해보니 확신은 의심으로 바뀌었고, 의심은 혼란을 만들었다. 과연 금복이 주인공인가? 
 
 소설 ‘고래’는 국밥집 노파, 그 딸인 애꾸는 아가씨, 뜨내기 양봉업자, 금복, 생선 장수, 쌍둥이 언니들, 걱정이, 칼자국, 벽돌쟁이가 차례로 등장한다. 춘희로 시작된 이야기는 춘희가 왜 교도소에 가게 됐는지, 춘희는 왜 말을 못하는지에 대한 설명으로 이 등장인물들의 고난과 역경뿐인 이야기들을 풀어 놓았다. 따라서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소설의 1/3까지는 춘희가 주인공이라 생각하며 읽었다. 그러나 1/3이 넘어서면서부터 이야기의 중심은 단연 금복의 삶이었다. 전지적 작가 시점을 독자와의 대화체로 풀어놓는 파격을 빌어 금복의 탈출과 1차 성공, 다시 고난과 역경, 은인을 만나 춘희를 무사히 출산하고 기회를 잡는다. 국밥집 노파의 숨겨놓은 돈을 발견하면서 2차 성공 가도를 달린다. 이 모든 이야기들이 춘희가 어떻게 태어났고, 어떻게 자랐으며, 왜 교도소에 가게 됐는지를 설명하는 배경이라 여길 수도 있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절대적으로 많은 분량이 금복을 중심으로 전개되다 보니 주인공이 춘희가 ‘아닐 것이다’라는 의문에 빠졌다. 더욱이 금복의 굴곡진 삶의 이야기가 전개되는 과정에서 춘희를 비춘 앵글은 턱없이 적다. 마치 지나가는 딸 1 같다. 그래서 이 소설은 ‘전례 없는’ 소설이라 평가됐는지도 모른다. 
 
 세 번째 근거는, 춘희의 성장 과정이라고 하기엔 이야기의 중심과 분량이 금복의 삶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점이다. 주인공의 성장 배경으로서의 부모에 대한 이야기는 춘희가 태어나기 전, 태어난 후, 성장 과정, 결말에 이르기까지 주인공에게 음으로 양으로 주변 인물들이 ‘어떻게 영향을 미쳤나’를 설명하는 것이 내 경험에서의 서사다. 그러나 이 소설은 국밥집 노파에 대해서도, 애꾸는 아가씨에 대해서도, 금복에 대해서도, 서사의 중심을 제한 없이 할애하고 있다. 오히려 춘희의 말이 늦된 것에 대해 금복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죽은 지 4년이 넘는 남자의 씨라는 판타지적 설정을 들어가며 금복의 생각과 사고가 어떤 변화를 겪었는지를 보여준다. 다시 말해서 춘희는 주인공 금복의 현재를 설명하는 배경 중 미미한 존재로 보였다. 칼잡이로 인한 금복의 변화, 생선 장수로 인한 변화, 걱정으로 인한 변화가 소설의 주된 이야기인 것처럼 서사된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나? 과연 소설 ‘고래’의 주인공은 춘희인가 금복인가?  
 
 금복이 벽돌을 만들고 사냥과 채집으로 어렵게 생활하는 과정, 그리고 트럭 운전사와 재회하여 아이를 갖고 낳고 미숙한 엄마로서 아기를 죽음으로 이끈 그 과정을 보면 주인공은 다시 춘희로 바뀌긴 한다. 그렇다면, 소설의 제목은 ‘벽돌’이어야 하지 않을까? ‘벽돌’이라는 단어에 무리가 있음을 나도 알고 있다. 그러나 춘희를 상징하는 것은 수렵이나 채집도 아니고, 코끼리도 아니며, 벽돌이 맞는다고 생각한다. 그리운 사람들을 만나는 열쇠라 생각하여 시작한 벽돌 만들기. 그것이 춘희의 처음이자 마지막 사랑을 이어주었다. 더구나 코끼리는 춘희의 친구 역이었다. 따라서 금복에게는 고래가 자유를 상징하는 메타포라면 춘희에게는 벽돌이 기다림, 춘희에게 결핍된 사랑의 상징이다. 여기까지 이야기를 들어보면 소설의 제목이 ‘고래’이므로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금복이라 여러분도 생각하게 될 것이다. 여러분이 그럴 것이라 추측된다. 여러분도 생각해 보라. 
 
 한 권에 600 페이지에 달하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이야기 ‘대망’에 필적하는 두께를 자랑하는 소설 ‘고래’는 분량과 무관하게 ‘대망’보다 빠르게 읽혔다.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이지만, ‘대망’에 등장하는 등장인물의 수와 그 이름의 길이로 인해 인물들이 등장할 때마다 수첩에 이름을 써보고 나서야 뒷이야기를 읽으며 겪은 혼란을 줄일 수 있었다. 즉, 비교하기에 상황적 조건이 너무도 다른 소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 ‘고래’는 문학 동네의 상을 받은 타 소설에 비해 유혹적인 스토리텔링을 구사한다. 그 스토리텔링을 무협지의 작법이라 칭한 의견에 조심스레 동의를 표해본다. 무협지가 독자의 집중력을 만들어 내는 방식은 만화의 그것과 닮았다. 끊임없는 대결, 대결을 통한 주인공의 성장, 화려한 액션신(scene), 그리고 현실에서 볼 수 없는 판타지적 무예 기술, 그 환상적 무예 기술을 끔찍한 고통을 이기도 내 것으로 만드는 과정. 소설 ‘고래’에 대결은 있다. 국밥집 노파와 애꾸눈 딸의 충돌, 애꾸눈 아가씨와 금복의 대경, 금복과 칼자루의 대결, 걱정과 칼자루의 대결, 벽돌쟁이와 금복의 애인과의 대결 등. 또한 금복이 주인공이라면 삶 속의 투쟁을 통한 그녀의 성장이 그려진다. 작살로 칼자국의 배를 뚫어 버리고, 무너지는 원목을 몸으로 막은 장면은 판타지적인 신력(神力), 코끼리와 말이 통하는 춘희. 그러나 고래의 매력은 여기에 있지 않다. 밑바닥의 밑바닥에서 장군과 사진을 찍는 성공에 이르기까지, 다음 이야기를 읽지 않고는 궁금해서 못 견디게 만드는 스토리텔링에 소설 ‘고래’의 매력이 있다. 소설 ‘장길산’ 같이 비유적이고 세밀한 애정 묘사도 없다. 그런데도 고래가 빠르게 읽힌 것은, 다음 이야기에 대한 궁금증 말고도 다른 요소가 있는 것 같다.  
 
 그것은 연쇄라고 말하고 싶다. 전혀 무관하게 보이는 사람들이 음으로 양으로 연쇄된다. 천정이 비에 무너져 내리며 돈벼락을 맞았는데 그것이 국밥집 노파가 어깨들에게 죽도록 맞으면서도 털어놓지 않은 돈이라는 점, 사라진 것으로 이야기된 애꾸는 아가씨가 벌을 몰고 나타나 무협지처럼 벌을 조정해서 ‘그 돈은 내 돈’이라고 주장하던 장면. 그러던 애꾸눈 아가씨가 벌침으로 ‘너는 살려주마’라고 등장해 춘희의 생명을 살리는 연쇄. 어린 시절 팔씨름을 했던 남자아이가 성장해 트럭 운전자로 등장, 마을에서 사라진 생선 장수가 다시 나타나 운수업을 시작한 이야기. 이 외에도 황당하고 앞뒤 없는 이야기들이 연쇄되고 인물들이 연쇄되어 ‘그래서? (So what?)’을 지속적으로 외치게 한다. 그렇게 외치게 한 힘이 이 소설 ‘고래’의 ‘전례 없는’ 스토리텔링이 구사한 힘이다. 
 
 출간된 지 10년이 넘어서야 읽고, 뒷북치듯 ‘놀랐다’며 시끄럽게 구는 나도 앞뒤 없기는 마찬가지다. 그렇기 때문에 더 시끄러운 지도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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