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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브리엘의오보에 May 09. 2019

대세가 아닌 신념 따위

Game of Throne 네드에게

네드에게


나는 당신과 같은 국민의 대표를 원하고 있었나 보다. 원칙을 기준으로 올곧은 당신의 모습은 확실한 모양을 갖추지는 못했지만 식별은 가능한, 내가 생각한 대표의 TO-BE 이미지였다는 것이 이번에 확인됐다.


왕좌의 게임, 원작 읽기


내가 애용하는 VOD 앱에서 이번 ‘왕좌의 게임 Game of Throne’ 시즌 8의 동시 상영을 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 않는 것인지 (VOD라는 정체성 identity을 지키기 위해서인지) 모르지만. 그래서 안정적 환경에서의 관람 (혹은 시청)을 위해 원작을 펴들었다.


어디까지 읽었냐 하면, 왕좌의 게임 2권(1, 2권이 얼음과 불의 노래 1, 2부이다) 40% 지점쯤이다. 곧 네드 당신은 사형 당할 것이다. 원작과 드라마의 차이, 나름 쏠쏠한 재미가 있는 ‘원작 찾아 읽기’가 이번에는 ‘아직’ 재미를 주지 못하고 있다. 책을 읽어나가면서 머릿속에 떠오르는 드라마의 장면들이 원작에 몰입하는 집중력에 찬물을 끼얹는다. 원작에는 있지만 드라마에는 없는 장면들이 ‘찾아볼 만큼의 가치(?)’가 느껴지지 않아서라고 생각된다.


과연 당신의 정치력은 어느 정도 이길래


정치는 올바른 위치를 찾아주는 것이라고 누군가 이야기했다. ‘누군가’가 누구일지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올바른 위치 찾기’라는 풀이에 동의할 뿐. 흔히들 정치를 마치 ‘모략을 통해서라도 원하는 것을 얻는 활동’의 의미로 사용하는데, 나는 이것이 싫다. 회사 내 정치, 의회 정치, 행정부의 정치, 조직 내 정치 등등에서 사용되는 ‘정치’라는 단어는 후자를 의미한다. 그리고 그런 의미가 맞는다는 ‘큰’ 목소리가 너무 귀에 쟁쟁하다. 그래서 ‘피해자’가 생기는 모양이다. ‘무시’ 당하거나 ‘제외’ 되는 사람들이 생기는 모양이다.


북부의 군주(왕국 전체는 ‘왕’, 지역의 영주는 ‘군주’로 나뉘는 것 같다)인 당신은 북부에서 잘 하고 있었지 않나? 관할 영역의 면적 차이가 있을 뿐, 북부나 왕국이나 정치라는 측면에서는 동일하다는 의견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당신은 왕의 대리인 ‘핸드 Hand’로서는 기존 세력을 복속 시키지 못했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왕도 아닌’ 사람에게 충성을 할 리가 없다. 왕에게도 충성하지 않았는데. 


만일 나였다면, 나는 어떻게 했을까? 이것을 밝히기 전에 먼저 할 이야기가 있다. 아니 네드 당신에 대한 질문일 수도 있겠다.


‘왜 모든 국가는, 21세기가 20년 가까이 지냈는데도 많은 수의 군인을 동원하나? 요인들만 제거해도 충분히 뜻을 펼 수 있을 텐데?’


명예를 중시하고 원칙 중심의 당신에게는 들을 가치도 없는 질문일 수 있다. 물론, ‘착한 사람’의 방식은 아니다. 그렇다면 이런 방식은 어떨까?


내가 보기에, 북부에는 당신의 가치관, 신념, 정치 태도 등을 따르고 동조하는 세력이 있다. 즉, 당신의 가치관이 북부의 대세라는 의미이다. 물론 그들 중에는 당신을 답답하게 여기거나 당신의 방법이 옳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당신의 차가운 얼굴에 거리낌을 느끼다가 당신의 따스한 피에 결국 사랑하게 된 당신의 아내를 보면, 북부에서 당신의 신념이 대세가 된 이유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당신이라면, 속으로는 쓴 약을 먹는 것 같더라도, 그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신세를 지도록’ 하겠다. 그와 동시에 나의 눈과 귀를 그들 옆에 붙여 둔다. 그런 다음 서서히, 결코 빠르지 않게 주요 지점의 업무 수행 시 나를 따르는 이들을 주무자가 아닌 보조자로 붙이기 시작할 것이다. 주요 지점 중 가장 중요성이 떨어지는, ‘그들’이 촉각을 세우지 않을 지점부터.


상황에 따라 상기 방법은 변경될 것이다. 그러나 목표는 ‘나의 신념을 대세로 만들기’이다. 나의 신념이 대세가 되면 된다. 반대자와 불충자가 있어도 된다. 권력이란 나의 말과 의사에 따라 타인이 움직이게 되는 힘이다. 따라서 나의 신념과 의지가 ‘실행’되면 되는 것이다.

이것은 결코 정치 전문가들이 말하는 ‘유들이’ 혹은 ‘유연성’의 영역이 아니다. ‘잠식’ 혹은 ‘침식’이다. 야금야금 먹어 들어가는 것이다. 어느 날 그들이 아침에 일어나니 세상은 온통 ‘네드의 것’이 되어 있으면 된다.


불가능해 보인다고? 당신은 이미 경험했다. 로버트 왕이 죽고 왕의 유언장을 들고 왕가의 혈통이 끊기는 것을 막으려 했을 때, 라니스터의 ‘힘’과 리틀 핑거의 배신을 경험하지 않았나? 리틀 핑거가 라니스터에 충성하기로 해서 당신의 목에 단검을 겨눈 것이 아니다. 리틀 핑거 등은 당신을 따르면 ‘재미’가 없다고 생각해서이다. 자신들의 행동을 놓아두는 듯하면서 자신의 잇속 혹은 목표만 달성하면 되는 라니스터가 더 재미있어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대세의 전환은 다수의 진실한 충성을 이끄는 것이 아니다. 나를 따르면 ‘재미있을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당신은 로버트를 따라오면 안 되었다. 원작이든 드라마든 당신은 왕국의 상황을 알아보지도 않고 로버트와의 의리에 따라 움직였다. 라니스터는, 자신의 영지에 있으면서도 왕국을 손바닥 보듯 알고 있었다. 목표가 있다 없다가 아니라, 적어도 왕의 제안을 받았을 때, 뻐꾸기든 비둘기든 날려서 상황을 상세히 알아봤어야 했다.


당신의 사형은 ‘정보 없이 일을 시작한 누군가(들)’에게는 경종이 됐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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