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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브리엘의오보에 Jun 05. 2019

신장개업

B급 식당 업그레이드

TSUCHIYAMA SHIGERU 작 '신장개업'이라는 만화가 있다. 일본 양식당의 시초 격인 레스토랑의 수석 셰프가, 망해가는 B급 식당을 탈바꿈 시켜, 이른바 '신장개업 新裝開業'을 돕는 옴니버스 구성의 작품이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B급 식당들의 공통점은 음식 혹은 서비스 수준이 '어중간함' 이하이다. 오히려 한 술 먹어보고는 화를 내야 할 수준이다. 이 B급 식당들의 차이라면, '왜 이렇게 어중간함 이하의 수준이 됐는가'라는 내역에 있다. 주인공은 이 B급 식당들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맞춤식' 업그레이드 방법을 돈을 받고 제시하며 그들을 훈련한다. 결코 녹녹치 않은 훈련이다. 누구는 무거운 물통을 지고 등산을 해야 하고, 누구는 몸의 유연성을 길러야 했다. 누구는 포장마차를 끌고 주인공이 제시한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 하지만 결론은 '신장개업'이고 B급 식당 사람들은 따스한 가족애와 더불어 어제보다 더 나아진 식사를 제공하게 된다. 또한, 주인공을 도와 다른 B급 식당의 신장개업을 돕기까지 한다.


왜 스파르타식 교육인가? '이럴 필요가 있을까?' 싶은 훈련 혹은 신장 방법들이 나온다. 조리 수준을 높이고 서비스 품질을 높이기만 하면 되는 것 아닌가? 작가는 이 작품에서 현재의 '어중간함 이하의 수준'이 발생된 원인을, 식당의 주역들의 정신에서 찾는다. 당연히 해야 할 조리 과정을 생략하거나 알지 못하거나 잊고 있는 것을 일깨운다. 우리는 주인공이 강압에 가까운 방법으로 이들을 몰아치는 훈련 방식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또한 그 방법은 무술 혹은 무예를 닦는 과정과 유사점이 있다. 무술과 무예의 궁극은 무엇인가? 선을 행하고 악을 응징하는 것이다.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악에 맞서는 것이다. 무술 혹은 무예의 동작에 숙달된다고 하여 그 목적을 이룰 수는 없다. 선의 善意에 기반된 파괴력을 얻어야 한다. 상대의 공격을 무위로 돌리고 나의 공격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유연성과 파괴력이 동시에 충족되어야 한다. 몸이 유연하지 않은데 적의 공격을 무사히 흘려 넘길 수 없다. 파괴력이 없는 공격으로 상대를 제압할 수 없다. 선의의 무술 혹은 무예란, 악을 제압함에 있지 악을 박멸하는 데 있지 않다. 


다시 작품 속으로 들어가 보자. 하루에도 몇 십 명의 손님에게 수십 혹은 수백 그릇의 음식을 대접하기 위해 대중 식당들은 동선을 최적화한다. 자연히 조리 공간은 몸을 살짝 돌리는 것만으로 필요한 작업을 할 수 있도록 협소해진다. 이럴 때 허리의 유연성이 필요하다. 한꺼번에 5~6 인분 이상의 음식을 만들어야 할 경우, 강한 팔힘이 요구된다. 장시간 서서 조리를 하기 위해서는 하체 및 코어 부분이 강해야 한다. 여기까지 이야기를 해보니, 왜 무거운 물통을 양손에 들고 등산을 해야 하는지 이해가 가기 시작한다. 또한 패배감에 찌든 정신에는 땀을 흘리는 육체적 활동이 효과가 있다. 처음엔 무거운 물통을 든 팔이 아파 훈련 방법뿐만 아니라 주인공에게 악감정이 생긴다. 그러나 더 이상 실패할 수 없다는 자각을 하며, 능동과 수동의 등락을 거듭하며 산을 오른다. 누구나 경험한 바가 있을 것이다. 혼자 장시간 걷다 보면, 신기하게도 머리는 나 자신에게로 돌아선다. 1주일가량을 하게 되면 전신에 힘이 생겨나는 것도 느낄 수 있다.


그다음은 레시피이다. 상업적 조미료로 범벅된 음식이 혀끝에서는 맛있을지 몰라도 결국엔 실패의 나락으로 무너져 내린다. 제대로 된 식자재, 올바른 화력의 사용, 먹기 편한 도공(칼질), 식자재의 맛을 살리는 조미료의 선택, 마지막으로 아름다움이 아니라 완성된 음식이 서로 간섭하지 않고 시너지를 내도록 그릇 위에 구성하는 일이다. 이러한 전 과정을 처음부터 다시 훈련한다. 그리고 시험도 치른다. 만든 사람이 만족하는 것은 미식의 세계다. 타인을 만족시키는 것이 대중 식당의 세계다. 


실현 가능한 방법인지를 따지기 전에, 우리는 '어중간함'이라는 말의 의미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 '어중간하다'라는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 명확하지 않다는 의미다. 맛이 없지도 맛이 있지도 어느 정도 수용할만하지도 않은 수준이다. '어중간함 이하'란 무슨 의미인가? 타인 앞에 내놓을 수준이 아니라는 것이다. 무료로 배식을 하는 음식도 이러면 안 되는데, 돈을 받고 파는 음식은 당연히 이 대역에 있으면 안 되지 않겠나? 작품의 주인공이 아니라 작품 속 식당 주인들이 인식해야 한다. '어중간함 이하의 수준'은 하지 않는 것보다 나쁘다. '가족들이 맛있다고 했는데...' 어중간하다. '내 친구들이 식당 차려도 될 수준이라고 했어...' 어중간하다. '이 냄새는 뭐야?' '음....!!!!'의 수준이 되어야 지갑을 열고 다시 찾아온다.


만화 혹은 드라마 '심야 식당'을 생각해 보자. 첫 편에서 빨간 프랑크 소시지가 나온다. 고객이 요구한 달달한 계란말이가 나온다. 만화 '화려한 식탁'에서와 같이 향신료 조합에 심혈을 기울여 만든 것이 아니라 기성품 카레로 '어제의 카레'를 만든다. 그 심야 식당을 찾아온 손님들은, 향수에 젖고 추억을 떠올리며 이 식당을 다시 찾는다. "드라마니까..." 그러나 여러분은 경험한 적이 없나? 먹는 동안 스마트폰을 줄곧 보느라고 위로 가야 할 혈류를 뇌로 돌려 향수나 추억을 떠올릴 기회조차 없었던 것은 아닌가? 조리를 해서 음식을 내놓은 입장에서, 물론 모두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먹는 사람을 보게 된다. 내가 조리한 음식을 음미하는지. 그런 조리한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쓸 필요는 없다고 접어두더라도, 조리를 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맛있는 음식'을 내놓을 의무도 권리도 가지고 있다. 이를 위해 다각적인 훈련을 하고 식자재 지식을 쌓으며 건강한 조리를 위한 도공과 화공(불질)을 익혀야 한다. 이 모든 것을 익히는 조리인의 마음은 어떠해하나? 수도승의 그것은 아니더라도, 학자의 그것은 아니더라도, 분명 그 수준에 상응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B급 식당을 신장개업하는 목표에 도달하게 하는, 허물어져 가는 타인을 돕는 이타 주의가 친절의 길을 통과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어중간함'을 깨뜨리고 진정 마음속에 오래도록 지켜야 할 '식당 정신'을 심고 가꿀 필요가 있다. 더구나, 음식이란 사람의 육체 속으로 들어가 다양한 소화액으로 분해되어 흡수된다. 만일 부정한 것이, 건강하지 않은 것이 흡수가 되면 어떡할까? 매일 깨끗이 주방을 유지하는 노력 또한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이런 것을 잊고 이런 마음을 잃고 허물어져 가는 식당 주인들에는 따끔한 잔소리도 필요하지만 부족한 것을 일깨우고 이를 극복할 방법을 몸에 익히게 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따끔한 방법이니 친절할 수 없다. 비록 그 배경에는 '타인을 돕는' 따스함이 흐르더라도 말이다. 필요악일 것이다.


우리는 식당에 들어가서 무엇을 원하는가? 아니 무엇을 원해서 집밥이 아닌 식당에 들어가는가? '허기'를 채우기 위해서이다. 회식 후 이상하게 공복을 느낀다거나, 습관적으로 식사를 해야 한다거나, 혼자 먹기 싫어서, 조리 실력이 모자라서, 여기가 맛있으니까 등등 우리가 식당을 찾는 이유는 다양하고 개별적이다. 감동까지는 필요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사업자 입장의 식당은 반복 재방문 고객, 능동적 입소문 생성 고객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어떤 이유에서든 식당의 문지방을 넘어선 고객이 포만감과 충족감을 느끼게 하는 것은 오롯이 식당의 역할이다. 신장개업까지는 필요 없을지라도, 돕자고 한다면 이룰 수 있게 도와야 할 것이다. '어중간함'을 벗어나야 하는 사람은, 이타 주의를 실현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우리는 '잔소리'만 할 것인가, 그들을 도와줄 것인가? 돕겠다면 어떻게 도울 것인가? 그리고 형편없는 음식을 내놓는 식당을 제거하는 것이 제대로 '허기'를 채울 식당을 확산하는 길일까, 아니면 그들의 가능성을 키우고, 부족한 부분을 훈련하는 것이 허기진 이들에게 충족감을 선사할 식당을 확산하는 길일까?


*이미지 출처

#신장개업 #renewal #upgrade #이타주의 #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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