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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브리엘의오보에 Sep 04. 2019

해리 포터는 즐기면서...

판타지 차별

21세기 모든 인간들에게 판타지는, 받아들일 수 있는 판타지와 받아들일 수 없는 판타지로 나뉜다 생각한다.


마법 지팡이에서 빛이 나와 상대를 공격하고, 물건을 띄우고, 마녀 빗자루를 타고 미식축구 같은 스포츠를 하며, 이를 방해하기 위해 마법을 걸던 영화는 안 본 사람이 없을 정도로 성황이다.


손에서 장풍이 나가 적을 공격하고, 웬만한 나무는 뛰어 넘고, 발끝을 축으로 몸을 거의 180도 뉘여 한 바퀴 빙빙 도는 무협 드라마는 덕후만의 전유물이다.


이것은 차별이다.


해리 포터의 마법도 훈련을 통해 획득되는 능력이다. 물론 호그와트에 입학할 사람은 마법의 재능이 있어야 한다. 마법사 집안의 자손이라도 모두 입학 가능한 것은 아니다. 즉, 그 자손이면 누구나 마법사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무협의 무공도 훈련을 통해 획득되는 능력이다. 물론 산을 뒤엎고 바다를 가르는 능력을 얻을 사람은 타고난 재능이 있어야 한다. 물론 무공을 배우고자 하면 누구나 배울 수 있다. 문제는 재능에 따른 성취된 결과가 다를 뿐.


소설가 김용은 중국에서 ‘신필(神筆)’이라 칭송 받는 작가이다. 그의 소설 영웅문(물론 번역 등 과정에 문제가 있던 시절의 책 제목)은 국내 베스트셀러였다. 뿐만 아니라 여러 나라에게 번역 출간될 정도로 세계적인 작가이다.


J. K. 롤링의 원작 해리 포터는 국내 베스트셀러였다. 해리 포터 시리즈는 전 세계적으로 억 단위가 넘게 팔렸다. 물론 신필이란 칭호는 붙지 않았다.


삼국지에서 관우는 82근(단위 환산으로 약 49 kg)의 무기 청룡도를 자유자재로 다루었다고 한다. 이는 정사 삼국지에는 80근, 삼국지연의에는 82근으로 기술되어 있다. 판타지가 아니다. 그러나 무협 드라마에서 내공이라는 것으로 몸을 띄우고 장풍을 갈기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따라서, 무협 드라마, 영화적 효과가 꽤 폭이 큰 무술 영화도 동등한 판타지로 대우하길 제안한다.


그러나 필자만의 사견이지만, 무협 드라마가 덕후의, 마니아의 전유물이 된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그것은 원작을 어떻게 영상화 하여 대중에게 다가갔는가 이다.


필자가 무협 드라마, 특히 중국의 무협 드라마를 처음 본 것은 80년대 말 비디오테이프 시리즈물이었다. 권선징악이 중심이었고, 의를 지키는 협의의 도를 그린 것이 거의 대부분이었다. 또 하나의 특징이라면 클리프행어 cliffhanger였다. 다음 편을 보지 않으면 안 되도록 한 편을 끝낸다.


그래서인지 필자가 무협 드라마를 보는 이유는 영웅문(정식 번역 출간된 제목으로는 사조영웅전, 신조협려, 의천도룡기)과 같이 원작을 시각적으로 보고자 할 경우, 혹은 단순히 판타지이지만, 산을 뒤엎고 바다를 가르는 무공을 시각적으로 즐기기 위해서 이다.


그러나 그런 필자의 취향 혹은 기호를 변화시킨 작품이 있었으니, ‘의천도룡기 2019(혹은 의천도룡기 2018)’이다.


아역들의 연기가 눈물샘을 자극하고, 가공할 무공도 곳곳에 나타나지만, 인간 드라마에 초점을 맞춘 연출이 백미인 드라마다. 양소와 같은 캐릭터는 원작에서 느낀, 잰틀하고 점잖은 캐릭터가 아닌, 스타일리시한 캐릭터로 연출 됐고, 캐스팅과 연기도 기억에 오래 남는다.

캐릭터들은 자신의 신념을 위해 몸을 아끼지 않고 현실에 부딪혀 나간다. 캐릭터들 간의 관계는 너무도 인간적이다. 은혜를 귀하게 여기고, 의리를 중시하며, 원한을 결코 잊지 않지만 이를 용서한다. 상황에 따라 캐릭터들이 느낀 감정들이 제대로 전달이 된다.


원나라에 대항한 민족 운동을 전개하면서도, 주원장과의 권력을 쟁투하는 스토리도 정치 드라마처럼 연출이 됐다. 주인공의 성장과 고뇌, 좌절과 극복이 극의 중심에 놓이고, 여기에 전형적 무협 드라마가 조화롭게 뒤섞였다. 원작을 잘 살린 극영화가 최신 기술에 뒷받침 되어 생생하게 다가온다.


김용의 영웅전 3부작, 사조영웅전, 신조협려, 의천도룡기는 역사의 흐름과 괘를 같이 한다. 사조영웅전은 송나라를 침략한 금나라와, 금나라와 결탁한 매국노와의 투쟁, 그리고 원나라 침략 초기의 대응, 신조협려는 원나라 침략에 대한 대항을 사조영웅전에 이어, 성장한 캐릭터와 새로운 주인공을 내세워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의천도룡기는 원나라에 대항하기 위한 두 가지 무기, 무목유서(병법서)와 구음진경(무공서)을 남겨 원나라를 향한 투쟁을 지속하라는 선배의 의지를, 욕망과 충절이 뒤섞이며 인간사의 고난과 역경, 도전을 이야기로 풀고 있다.


드라마 의천도룡기 2019를 추천하는 이유는 이러한 김용 소설의 중심을 잘 살렸을 뿐만 아니라, 권선징악과 신기한 무공보다 스토리 속의 캐릭터들이 만들어내는 인간 드라마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의천도룡기 2019의 감독이 누구인지 찾아봤을 정도다.


총 50편이라는, 긴 호흡이긴 하지만, 이번 기회에 서구 판타지와 동양 판타지를 차별하는 현상이 줄어들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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