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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브리엘의오보에 Jul 17. 2018

조명 혹은 빛

그들은 항상 대기하고 있다.

조명 혹은 빛의 존재 목적은 무엇일까? 그들은 항상 대기하고 있다. 항상 기다리고 있다. 사용자가 스위치를 켤 때까지.  

 

태양이 하늘에 있을 때 그들의 존재 목적은 무엇인가? 그들은 대기하고 있다. 태양이 있더라도 구름 뒤에 섰을 때를 대비하여. 


태양이 졌을 때야 말로 그들의 시간인 것 같다. 하지만 이 때도 그들은 대기하고 있다. 천정 조명이 대부분의 시간을 점유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대기하는 이유는 특정 상황 때문이다. 작업을 할 때 내 시선이 닿는 곳은 매우 밝아야 한다. 나름 집중력을 유지하기 위한 방편이긴 하지만. 혹은 사용자가 잠자리에 누울 때다. 그제야 천정 조명은 꺼지고 그들의 시간이 다가온다. 졸음이 몰려오기 전까지 이것저것 할 일도 있고 무엇보다 어두운 것이 싫으니까. 

 

세상에서 어쩌면 가장 바쁜 빛일 것이다. 그들은 태양과는 무관하게 언제나 켜진다. 그들은 정보를 전달한다. “배 고파요” 혹은 “다 먹었어요”가 그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두 마디이긴 하지만. 그 이상이 필요할까? 

 

사실 필요하다. 이들 정도가 되면 “전류가 불규칙해요. 제가 다치겠어요” 정도는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이 두 마디의 추가는 꼭 필요하다. 왜냐하면 이들은 어둠을 밝혀 앞길을 인도하진 않아도 알아야 할 정보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들이 다친다면 사용자는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없다. 필요한 정보를 얻지 못하면, 지속적으로 그들을 켜두게 되고 결국 지갑에서 더 많은 돈이 빠져나갈 테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묵묵하게도 불평 한 마디 없이 단 두 마디면 됐다는 듯이 무표정하다. 자신의 수명은 남았지만 제품의 수명에 따라 생을 마감하는데도. 요즘은 제품 수명이 다하기도 전에 미니멀리즘의 파도에 밀려 재활용 딱지를 달고 집 밖에 서 있다. 

 

소리는 듣기 위해, 말은 전하기 위해 존재한다. 남의 말은 듣고 잘 이해한다. 전할 정보가 있을 때 말을 사용한다. 생각으로 그칠 내용을 굳이 감탄사나 의성어처럼 전해 타인의 마음에 상처를 주지 말고.

 

빛은 비록 사용자의 선택으로 켜지고 꺼지지만 그들은 전할 말만 확실히 전하고 있다. 과연 사용자는 이런 그들의 말을 제대로 듣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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