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트릭 네스, 시본 도우드(구상)/몬스터 콜스
삶은 말로 쓰는 게 아니다. 삶은 행동으로 쓰는 거다. 네가 무엇을 생각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오직 네가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하다. (255)
지난 시간을 되뇌어 볼 때, 내가 과거에 무엇을 생각했나 보다는, 과거에 무엇을 행했나를 상기한다. 나의 행동 중 무엇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나? 나는 그 때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나? 만일 동일한 상황이 다시 벌어진다면, 지금 더 나은 행동이라 판단한 행동을 할 수 있을까?
공부를 열심히 했다. 덕분에 좋은 점수를 얻었다. 그 점수로 서울대 지원반, 소위 우반에 있었다. 지속적으로 노력했고 계속 좋은 점수를 획득했다. 나는 공모전에 도전했다. 공모전에서 금상을 수상했다. ‘공모전까지?’라는 좋은 평가가 더해졌다. 사람들은 나를 공부만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다재다능한 사람이라 판단한다. 힘을 얻은 나는 공모전을 찾아 다녔고 결과도 좋았다. 갈림길이다. 성적을 기준으로 대학 전공을 고를 것인가 공모전 결과로 선택할 것인가? 이러한 선순환 과정이 나의 쾌감 중추를 충족한다. 쾌감이 노력을 낳고 노력이 쾌락을 낳는 과정이 반복됐다. 좋은 대학, 전망 있는 학과, 지속적인 노력. 어느새 나는 존경의 시선이 당연히 여겨졌다. 사람들이 주위에 모여들었고 나는 사업을 일으킬 수 있었다. 사업은 고르지 않았지만 성장을 지속했다. 작지만 좋은 결과가 하나둘 쌓여갔다. 그것에 만족하지 못한 우리 회사는 노력을 거듭하여 커다란 성공도 종종 맛보았다. 결과는 점층적으로 커졌으며 우리 조직을 인정하는 힘들이 하나둘 모여든다. 우리는 힘이 있는 기업이 되었다. 우리를 믿는 고객도 늘어났다. 고객층이 안정화되면서 매출도 안정화됐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변화하기로 결심했다. 안정적 매출로 투자 여력이 생겼으므로, 변화하는 시장 상황을 리드할 새로운 상품을 만들어내기로 결의했다. 노력을 쌓았고, 작은 것부터 좋은 결과를 얻었다. 우리의 철칙은 어제보다 나은 좋은 결과였다. 그것으로 성공했으므로.
만일, 내가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함에 두 가지 생각을 하게 됐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첫째 생각은, 이 공부를 어디에 활용할까? 적분과 미분이 나의 생활에서 직접적으로 활용될까? 둘째 생각은, 나는 학생이므로 내가 최선을 다할 일은 공부이다. 그러므로 공부에 지속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 첫째 생각으로 나에게는 틈이 발생했을 것이다. 그 틈에 쾌락 중추를 자극하고 충족할 일이 새어 들어왔었을 수도 있다. 열심히 하려는 의지와 쾌락의 달콤함 사이에서 나는 과연 누구의 손을 들어 주었을까? 이렇게 두 가지 생각을 가졌다는 것만으로 나는 혼란 속에 빠졌을 것이다. 쾌락을 잊지 못했다면 삶의 과정에 무수히 많은 절충을 시도했을 것이다. 10분 동안만 쾌락 중추를 채우면 휴식이 되어 나의 열정은 더 불타오를 수 있다. 쾌락은 열정에 불을 더하는 연료와도 같다. 이런 절충이 수도 없이 시도됐을 것이다. 그런데 만일, 미래는 나의 행동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생각에 얽매이기보다 행동을 했을 것이다. 나의 인생을 그리며 필요한 행동에 집중했을 것이다. 학생이 되면서 공부를 하고, 공부를 일상처럼 하루도 누락하지 않고 수행한다. 그런 존재가 나는 될 수 있었다.
나는 내가 자신과 주위 현상에 객관적으로 분석 판단을 내린다 믿는다. 수많은 가능성을 상정하고 지금에 최선이 무엇일지를 결정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내가 쾌락 중추의 만족에 이렇게 흔들리지 않을 거라 믿었다. 아니 쾌락 중추를 충족하는 행동이 휴식이 아니라 노력으로 전환될 수 있다 믿는다. 전환된 쾌락 중추가 요구하는 행동을 했을 때 나는 인생이란 살아볼 만하다는 것을 느꼈다. 전에는 쾌락 중추가 목표 달성에 이렇게 큰 영향을 줄지 몰랐다.
‘이랬으면 지금 이러지 않았을 거야.’
‘저랬으면 지금 이러지 않았을 거야.’
이것은 단지 생각일 뿐이다. 지나간 시간으로 다시 돌아가더라도 나 자신을 설득하지 못해 노력의 행동으로 전환시키기 못한다면 내 현재는 반복될 뿐이다.
‘이랬으면 지금 이러지 않았을 거야. 늦었어.’
‘저랬으면 지금 이러지 않았을 거야. 늦었어.’
이것은 진실도 사실도 아니다. 단지 더 이상 노력의 행동을 하지 않는다는 선언이다. 이러한 판단은 과거에 살고 있다는 증거다. ‘늦었어’라고 말하기 전에, 다시는 그렇게 행동하지 않는다. 과거에 묶이지 않고 한 발 내딛는다. 좋은 결과를 낳을 것이다. 오히려 쾌락 중추를 내 편으로 만드는 것이다. 작은 것이라도 달성했을 때 얻은 달성감을 하한선으로 조금 높은 목표를 설정한다. ‘마쳤다’로 완결하지 않고 ‘마쳐서 좋아! 다음은?’이라고 생각하자. 지금 이만큼 좋으니 더 좋은 기분을 느끼기 위해서 더 큰 달성을 정하고 또 한 발을 내딛는다. 목표에 집중한다. 시선을 고정한다, 내 마음의 흔들림이 멈출 때까지. 좋은 결과를 낼 때마다 쾌락 중추가 충족의 팡파르를 울리도록 훈련한다.
삶은 자연스럽게 흘러갈 때 가장 편안하다. 일상에 괴로움과 고뇌가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우리는 스스로 달콤함을 만들어낼 능력이 있다. 스스로 설 수 있다. 작은 결과를 얻었을 때의 기쁨으로 쾌락 중추를 총족하고 이를 일상화 한다면, 내가 달콤한 인생 속에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하고 싶은 것을 하려면 지속적인 노력의 행동을 하자. 그리고 작은 결과부터 얻고, 다음엔 더 큰 결과를 얻기 위해 노력의 지속하자. 그러면 신기하게도, 행동과 목표 설정의 반복적 연쇄 작용으로 인해, 자신이 원했던 인생의 퍼즐이 하나둘 맞아 들어가는 것을, 그리고 시간이 갈수록 퍼즐이 맞춰지는 속도가 빨라지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럼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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