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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브리엘의오보에 Apr 17. 2020

인간의 미래는 도대체

인간은 자연계의 진화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필자는 인간의 수명이 세포의 사용 가능 기간과 동일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전체 세포가 아니라 생명에 직접적 영향을 주는 장기의 세포가 기능을 정지하는 순간까지이다. 이는 모든 생물이 동일하다.


지구에서 발생된 이후 인간은, 진화를 거듭해 변하는 자연에서 살아남아 후손을 이은 사람들에 의해 지금까지 존재한다. 그리고 문화와 지식의 형태로 정신을 잇고 있다. 의학 발달로 질병을 해결하고 위생 개념이 확산돼 수명이 늘어났지만, 자연계의 진화에서 내려서지는 않았다. 유전자 돌연변이로 변하는 자연에 대응하며 살아오고 있으니까 말이다.


과학의 발달은 특수한 경우 유전자의 길에서 내려올 기회를 만들었다. 대부분 질병과 관련된 사례다. 인공 장기로 기존 장기를 대체해 생명을 지킨다. 태어날 때부터 없거나 부족하거나, 혹은 사고로 인해 잃은 신체를 인공 신체로 대체다. 로봇 기술이 발전하여 인간의 움직임에 가까운 로봇을 유튜브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인공 장기, 인공 신체, 그리고 로봇 기술, 여기에 신경학까지 연결이 되면 뇌를 제외한 모든 것이 대체 가능하며, 대체된 신체는 뇌에 의해 제어된다. 마치 그렇게 태어난 것처럼.


인간 중에 오래 사는 삶, 아니 죽지 않는 삶을 바라는 인간이 많다. 행복하면 할수록, 아쉬움이 많을수록 인간은 ‘조금만 더’ 살고 싶어 한다. 가장 잘 알려진 사례는 진 시황이 불로장생의 영약을 구하기 위해 사방으로 사람들을 파견한 일일 것이다. 21세기의 우리들은 생을 계속하고자 하는 열망을 얼마나 가지고 있을까? 생을 연장하고 싶은 걸까, 죽고 싶지 않은 것일까? 그렇지 않다면 환생, 저승, 연옥, 천국, 지옥을 믿는 사람들처럼 ‘다음 생’을 기약할까?


무엇을 바라든 인간의 기술은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인공 장기 및 신체를 사용해 최대한 교체 가능한 범위는 ‘뇌를 제외한 모두를 인공물로 교체’일 것이다. 아직 현실에 나타나지 않았지만 가능성은 나타나고 있다. TV 외화 ‘육백만 불의 사나이’가 그런 사례를 보여준다.



인공 장기 및 신체는 기존의 장기 및 신체를 교체하는데 머물지 않을 것 같다. 소설 ‘오리진’은 인간의 다음 진화 모형은 로봇 기술이 병합된 인간이라 표현한다.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는 이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전화기 없이 뇌 간 통신이 가능하다. 질병이나 사고로 인한 교체가 아니라 ‘필요’에 의해 신체 각부를 교체한다. 만일 이런 미래가 펼쳐진다면, 이런 규칙이 나오지 않을까?


‘올림픽 공인 세계 기록은 인공 및 강화 신체나 장기를 장착하지 않은 사람의 기록이다.’


뇌는 생체다. 세포로 구성된 뇌는 세포의 사용 기간이 만료되면 기능을 상실한다. 그럴 때 인간은 어떻게 할 것인가? 소위 인간의 ‘고스트 Ghost’는 존재하는가? 존재한다면 이를 인공물로 옮겨 의식을 지속해 결과적으로 영원한 삶의 세계로 접어들 것인가?



영화 ‘트랜센던스’는 자신의 영혼을 컴퓨터에 업로드하고 컴퓨터의 기능을 병합한 인공지능이 등장한다. 인공지능은 영혼을 제공한 과학자의 기억과 가치관에 기반을 두고, 컴퓨터와 병합 후 변화된 가치관을 보여준다.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의 세계는 인간이 강화 신체 및 장기를 장착하고 서비스를 로봇이 제공하는 세계다. 해킹을 통해 강화 인공물을 장착한 사람들은 기억이 조작되어 범죄자의 손발이 된다.


모두 무서운 예상을 보여준다. 모두 새로운 세계로 갈 것이라며 기존 세계를 공격한다. 하지만 과연 이런 무서운 결과만 생각해야 할까? 누군가 이야기했듯, 발달 및 발전되는 기술을 인간에게 도움이 되도록 사용하는 것은 인간의 몫이다. 그러니 이렇게 암울하게만 볼 필요는 없다.


생각을 사회로 확장해 보자. 미래에 우리는 어떤 사회에서 살게 될 것인가? 많은 가상 스토리에서 새로운 규칙 하에 사는 생을 그린다. 이는 이데올로기라기보다 ‘삶의 규칙’에 가깝다.



영화 ‘데몰리션맨’의 사회는 표준화된 세계이다. 의복도, 행동도. 발전된 과학 기술에 기반을 두어 문제를 일으킬 인간 본능적 행동을 금한다. TV 애니메이션 ‘Psycho-pass’는 인간의 스트레스 지수를 스캔하여 잠재 범죄자로 판단, 사전에 구속한다. 인간의 자질을 판단해 적성을 규명하고 직업도 규명 범위 내에서 선택하게 된다.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복수의 예지자가 범죄 발생을 예측해 사전에 범죄를 근절한다는 내용이다. 영화 ‘다이버전트’의 사회는 탄생부터 직업의 선택에 이르기까지 표준화된 과정과 규칙에 따라 정해지는 세계다.


이 네 편의 영화는 ‘표준화’ ‘규격화’된 미래를 보여준다. 인간 개인의 자유, 사회적 평등사상은 최소한으로 제한하고 획일화되고 표준화된 규칙 하에서 문제를 사전에 근절하는 세계들이다. 인위적 질서 위에서 제한된 자유와 표준화라는 평등 하에 사는 것이 깨끗하고 문제없는 사회가 된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체제는 인간에 의해 무너진다. 인간 본연의 속성을 무시하지 말라는 메시지로 필자는 생각됐다. 이런 생각도 했다. 익숙해지고 장점도 발견하며, 지금처럼 체념도 한다. 인간 본연의 속성이란 과거의 속성일 것이다. 이를 더 선호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새로운 것이 상대적으로 더 났다며 선호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인공물로의 교체와 새로운 규칙 하에서의 삶은 모두 인간 개개인의 선택이다. 기술의 발달, 철학의 변화 등이 계기는 됐을지언정, 실행은 모두 인간의 선택이었다. 그러한 미래를 동조하는 것 역시 인간이었다.


미래를 결정하는 요인 중에 ‘신 God’도 있다. 만일 인간의 기술이나 과학, 특정인의 사상에 동조하거나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신’이 다시 등장한다면 어떤 미래가 될까? 


책 ‘문명의 충돌’은 이데올로기 대립이 종료되면 문명 간 대립이 벌어질 것이라 예상했다. 그래서 세계 지도를 문명별로 나누어 보여준다. 문명의 중심이 될 수 있는 요소 중에 사상이 있다. 사상 중에는 종교에서 발현된 것이 있다. ‘문명의 충돌’에서 세계 지도를 나눈 구분자에는 ‘기독교 문명’, ‘이슬람 문명’ 등 종교 중심의 문명이 표시되어 있다. 만일 종교 중심의 문명에 기적을 일으키는 메시아가 나타나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 영화에서 특이한 점은, 기적을 일으키는 사람에 대해 이슬람교 지역에서도 기독교 지역에서도 모두 ‘메시아’라고 칭한다는 점이다. 아니 ‘메시아’라고 하며 매달린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까? 메시아는 지도자라 칭할 수 있다. ‘이쪽이 옳은 방향이다’라는 것을 입증하며 사람들을 이끌고 가는 사람이다.


자신의 힘으로는 고된 현실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움직일지도 모른다. 새로운 가능성을 종교 지도자의 기적에서 발견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들은 언제나 주체에 상관없이 새로운 가능성에서 자신의 기회를 연결하려는 사람들이다. 나쁜 의미로 듣지 않았으면 한다. ‘이기적 유전자’에서 추정한 바와 같이, 이기적인 존재가 어려움을 이겨내고 자손을 이을 확률이 높다. 


‘신의 기적’은 인간이 개발한 어떤 것보다 매력적일 것이다. 인간이 고치지 못하는 불치병이 치유된다. 막을 수 없는 자연 재해를 멈춘다. 중동에서 아메리카까지 한 순간에 이동한다. 인간이 보여줄 수 없는 매력이다. 그런 매력적인 사람이 하는 이야기에 귀를 가까이 하지 않기는 쉽지 않다.


인공 장기와 신체로 유한한 육체를 교체하고 생체인 뇌에 더 나은 영양을 지속적으로 공급하거나 오히려 뇌 세포 노화를 막는다면 300 년 정도는 살 수 있지 않을까? 지금의 혼란을 잠재우기 위해 표준화되고 규격화된 규칙 하에 뭉쳐 고민 없이 규칙대로 산다면 사회 문제로 인해 불편을 겪을 일은 없을지도 모른다. 신의 사자 ‘메시아’는 더 할 말이 없다.


세계는 A라는 생각이 주도할 때 B라는 경쟁 생각이 나타난다. A와 B의 경쟁 동안 혼란과 난세가 이어지다가 승자가 세상을 주도하거나 새로운 C가 A와 B를 물리칠지도 모른다. 아니면 천하삼분지계가 다시 등장할지도 알 수 없다. 과연, 그리고 도대체 우리의 미래는 어떤 세계일까? 


? 인간은 스스로 미래를 열어나갈 것인가?

? 종교에 기반을 둔 문명에 메시아가 나타나 다시 종교 중심의 미래가 될 것인가?


아마도 장담할 수 있는 것은, 한 순간도 멈춰있지 않고 매일 매시간 변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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