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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브리엘의오보에 Jun 15. 2020

이상하게 보이겠지만

이번에는 이렇게 해보는 거야.


장거리 여행이 될 테고, 식사는 중요한 기준이 아니니, 수분 종류, 즉 음료와 와인과 맥주 혹은 리퀴어의 종류를 기준으로 선택하는 거야. 목표는 가장 내 취향에 맞는 수분류를 제공하는 항공사가 택함 받는 것이지. 또 이번엔 단거리 여행이 될 텐데, 식사 시간을 가로질러 이동하게 되므로, 기내식이 택함의 기준이 되는 거야. 좌석의 급을 높이면 높일수록 괜찮은 식사가 나오겠지만, 여행에 가서 꼭 써야 할 비용 때문에 항공권에 투자할 수 없어. 그러니 이코노미에 제공되는 식사 중 가장 내 취향에 맞는 항공사를 선택하는 것이지.


왜 이렇게 미친 듯이 사냐고? 


‘여기서 저기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이 금액을 내고, 우리가 마련한 대로 먹고 마셔’


이런 태도가 싫기 때문이지. 내가 이 여행을 위해 일한 대가로 받은 돈을 투자하는데, 왜 주도권이 그쪽에 있는 거야? 이러면 되잖아.


내가 원하는 좌석은 1, 2, 3급 중 2급. 제공되는 식사는 4끼에 이런 메뉴, 음료는 스코틀랜드 에일 맥주와 스페인 와인. 그래서 나온 금액을 비교해서 가장 저렴한 티켓을 고르고 싶은 거지. 내가 노력해서 번 귀한 돈이니 사용했을 때 얻는 제공품도 내 마음에 들어야 하는 것이지.


세상은 열심히 돈을 버는 영역과, 상품을 생산하는 영역으로 나뉘어 있어. 이 두 그룹이 만나는 장소에서는 이미 완성되어 버린 상품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르는 것이 규칙이지. 그러나 이제는 그러고 싶지 않다는 거야. 왜냐하면 언제나 어중간한 만족만 느꼈기 때문이지. 자신들은 최상의 상품이라지만, 그것은 최상을 경험하지 못한 자가 주도하는, 책상머리에서 기획된 어중간한 상품일 뿐이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들 중 하나를 우리는 ‘선택’이라고 불러. 그들이 급여를 주고 투자를 하고 개발을 하고 선전을 하는데 드는 돈은 우리의 선택에 따라 지불 되니까. 만족시키지 못한 플레이어는 철저하게 선택에서 제외해. 결코 담합이나 협력은 맺지 않아. 개인의 순수하고 만족 중심의 선택이 저변화될 때 고객이 진정으로 힘을 얻는 순간이지. 선출할 정치인이 없으면 누구도 투표하지 않아. 정족수 미달이면 후보를 바꿀 테니까. 이런 모습은 선택권을 보유한 우리 입장에서 보면 혼란이 아니야. 더구나 우리가 절대 다수야. 민주주의라고.


주문형 생산과 소비, 만족 중심의 소비가 어쩌면 선택받지 못하고 버려지는 자원을 절약하게 해 줄지도 몰라. 엉성하게 결과를 내는 태도를 고쳐낼지도 몰라. 소설도 그렇고 음악도 그렇고 우리가 돈을 내는 모든 분야에 대해 우리는 절대 선택권을 행사해. 충족을 위해 고유한 권리인 선택을 유감없이 발휘하지. 상품을 만드는 그들도 퇴근하면 우리와 같아. 그러니 저변화가 되면 그들과 우리는 원해 하나였음을 떠올리게 될 거야. 그러면 세상은 원활하게 움직일 거야. 만족스러운 상품 중 내가 살 수 있는 상품을 고르는, 새로운 가성비의 세계가 열릴 것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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