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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브리엘의오보에 May 18. 2021

수학을 사랑할 수 있겠지!

Gabriel's Playlist

*커버 이미지: Photo by Elise Wilcox on Unsplash     



동사 ‘사랑’의 목적어는 사람만 대입될 수 있나? 만일 그렇다고 생각한다면, 반려동물과 수집품들이 구석에 가서 몸을 찌그러트린 채 울고 있을 것이다.      


사랑을 좋아하는 것이라 이해하고 있다면, 즉, Love를 Like로 이해하고 있다면, 대상은 더 넓어진다. 단지, 진정한 Love는 헌신이고 Like는 선호나 기호이니, 적용 범위는 더 넓어질 것이다.      


이야기 속의 박사는 수학을 사랑한다. 빈틈없고 유연한 증명을 아름답다고 표현한다. 수학을 대화가 가능한 연인으로 생각하는 모양이다. 아마도 박사는 수학의 맥을 만났고, 그 맛을 보았으며, 그 맛을 좋아하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화자는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이다. 사랑하는 대상이 수학이고, 수학과 교감 중이라니. 처음 원작을 읽다가 판타지 장면이 나오지 않을지 궁금했다.      


화자의 Like는 이야기다. 전통과 관례에 묶이지 않고, 유연하게 삶과 일의 문제를 풀어나가는 이야기를 좋아하고, 그중 한 캐릭터에 빠진다. 이야기의 형식이 영화든, 음악이든, 글이든 차이는 없다.      


전통과 관례를 법보다 잘 지키는 사람들은 답답하다. 아마 높은 담을 세우고 그 안에서 살더라도 전통과 관례를 지켜나가기 힘들 것이다. 하물며, 담이 없는 이 사회에서야. 법칙, 관례, 전통의 시의성을 무시하는 사람은 안타깝다. 화자는 새롭고 획기적이며 혁신적인 방법을 선호하지 않는다. 유연성 있는 사고를 좋아한다. 10번 넘게 본 작품도 있다. 작품성이 하늘에 닿은 작품은 아니다. 내가 좋아하면 좋아서 소름을 퓻퓻 세우며 보고 또 본다.     


Photo by Jeswin Thomas on Unsplash


작품에도 끌리지만, 캐릭터를 입은 배우의 연기(배우 본인은 내가 알 방법도 관심도 없으니까)에도 끌린다. 사견이지만, 우리는 대중 앞에 선 사람의 재능에 빠진다. 연기, 가창, 작곡, 작사, 연주, 글에 빠진다. 화자는 특히 그렇다. 그들의 재능이 나날이 매력적이면 애정은 지속한다. 가끔, 관음증에 온몸을 불태우고, 그 관음증에 편승해 트래픽을 올리려는 매체가 만나 그들의 사생활을 들쑤신다. 하지만 이는 화자의 관심이 아니다. 그들이 무대 위에서 보이는 재능은 3분의 출연이든 1시간 내내 연기하든 바로 드러난다. 하지만 사적인 부분은 몇십 년을 함께 산 부모님도 이해가 안 가는데, 설마 대중 앞에 선 그들이겠나? 이해하지 못하고 단면에 손가락질하는 일은 옳지 않다. 그러니, 재능에만 집중한다. 더욱이, 재능에 반한 이들이 하는 행동을 따라 할 만큼, 내 뇌는 팔랑거리지 않는다.     


사조영웅전 2017에서는, 부적절한 언행으로 퇴출당했다고 하는 조립신, 여전히 활발히 활동하는 리이퉁, 랑야방: 권력의 기록의 류타오, 랑야방: 풍기장림의 동려아가 생각난다. 조립신은 천성장가에서의 연기도 좋았다. 조립신, 리이퉁, 류타오, 동려아의 최근 작품을 찾아봤다. 똑같은 매력을 발산하는지 궁금해서다. 007의 대니얼 크레이그가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남자 주인공이 되었으면 어울렸겠다고 생각했다. 원작에서 캐릭터의 이미지를 그리며 그를 상상한 이유도 있다. ‘her’의 호아킨 피닉스를 조커의 그라고 생각하기 싫었다.      


Photo by Sam Moqadam on Unsplash


음악은, 시작 부분에서 듣는 이의 감정을 잘 끌어모아 절정까지, 그리고 마무리까지 잘 이끌어가는 가창을 좋아한다. 멜로디와 가사가 조화를 이루지 못해도 애정하지 못한다. 예전에 절창에 빠졌다. 무조건적인 고음, 고의적인 고음 편곡이 아니라, 버스에서 형성된 감정을 절정에서 팡 터뜨리는 음악에 귀를 꽂았다. 그러니 찌질 발라드가 주로 듣는 음악이었다. 못 잊고, 용서가 안 되는데 보고 싶어 안달하는 찌질 발라드. 어느새 듣는 형식이나 주제가 달라지면서 지금은 장르를 불문하고, 신곡, 인기곡, 추천곡(혹은 플레이리스트) 중심으로 듣는다. 좋아하는 아티스트(가수, 작곡자, 작사자, 프로듀서, 혹은 세션)가 생기면 그의 신곡을 듣고, 히트곡을 듣고 대표곡 리스트를 듣는다. 클래식도 좋아하는 연주자가 생겼다. 화자는 재능(명확히 말하면 내 취향에 부합하는, 구체적으로 내 감정을 가지고 노는) 아티스트를 좋아한다.     


소설은 영화, 음악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철학이 마음에 들 경우 ‘지지(support)’하는 편이다. 반복해서 읽는다는 것이다. 무협지 중 ‘태극문’은 초급자가 비웃는 아주 기본적인 권법과 검법 6가지만을 익히는 이야기다. 대신, 상대의 명치를 향해 정권 지르는 동작이 있다면, 이를 얼굴의 인중, 아랫배, 옆구리, 어깨 등을 타격하도록 연습한다. 즉, 동작의 빈틈을 찾아 하나하나 없애 나가는 것이다. 주인공은 결국 천하제일이 된다. 물론 그의 형의 노력으로 피부를 강철같이 단련하는 등의 과정도 겪지만. 태권도의 태극 1장을 반복해서 연습하면서 각 동작(공격기 혹은 방어기)가 갖는 단점을 없애나간다고 생각하면 된다. 굉장히 진득한 성격이 필요하다. 화자는 기초라도 이런 과정을 거치면 어떤 상승 기법도 이겨낼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이 철학을 지지했다.     


화자는 음악은 귀, 영화는 눈, 책은 머릿속 그림이 기준이다.     


Photo by JOSHUA COLEMAN on Unsplash


수학과도 사랑에 빠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모든 애정의 대상은 첫인상에 좌우된다고 믿는다. 세상에는 ‘잘 가르치는 사람’이 존재한다. 지식을 타인에게 이해하도록 설명하는 재능이 있는 사람이 있다. 이런 논리에서 보면, 우리는 수학을 재미없게 배운 것이다. 문제 해결이 중심이고, 효율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공식을 외웠다. 수학 올림피아드 등 수학의 이해도를 묻는 시험이 각 학교로 확산하면서 많은 변화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수학 시간은 공식을 외우고 문제를 풀어 정답 찾기에 중점을 두고 있다. 만일 영화에서 루트가 소수와 우애수, ‘4의 계승’을 설명하는 방식이었다면 좀 달랐을까? 딱딱한 수학이 아니라, 이야기를 이해하는 시간이 됐을까? 영화에 그런 장면이 있다는 것은, 잘 가르치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방증이라고 믿는다.     


영어와 사랑에 빠진 사람들도 존재한다. 신체 기관, 눈, 코, 입, 귀 등을 영어로 찾아보고, 일상에서 만나는 다양한 대상들의 영어 표현을 찾아본다. 숙제를 푸는 일도 아니고 과제를 해결하는 일도 아니다. 영어를 만나는 일을 즐기는 사람들은 새로운 단어, 새로운 표현을 알게 되는 일이 즐겁다. 번역과 해석의 차이를 발견하면, 큰 발견을 한 기분이 든다. 바로 크든 작든 깨달음의 순간인 것이다. 학문의 재미는 깨닫는 순간에 생긴다. 이것이 맥을 잡고 맥을 맛본다는 것이다.     


Photo by Paul Hanaoka on Unsplash


이번 ‘박사가 사랑한 수식’의 관람은 평소와 다르다. 우선 원작 소설을 읽다가, OTT에서 영화를 본다. ‘어, 책을 여기까지 읽었어!’ 싶으면 영화를 끄고 다시 책을 편다. 특별함이 있는 것이 아니라, 신선하다. 시작은, 책을 보다가 영화 표현이 궁금해서다. 영화는 나중에 보겠다고 찜을 해두었다. 밀린 숙제 같이 마음 한구석이 무겁다가 이렇게 숙제도 하고 궁금함도 푼 셈이다.     


https://blog.naver.com/gegmagazine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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