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 이미지: Photo by Bonnie Kittle on Unsplash
사람들의 가치관은, 화자를 포함하여, 옳고 그름이 아니라 사실은 싫고 좋음이 아닐까?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물건을 구입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과 연애한다.
옳은 것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고, 그른 것은 자신이 싫어하는 것이다. 화자 역시 이 범주에서 벗어날 길은 없다. 하지만, 제3자의 입장에서 타인의 이런 행동을 보고 있자면, 간혹 스스로를 다시 돌아보곤 한다. 악하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싫은 것이고 선하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좋은 것이다.
보기 싫고
듣기 싫고
만지기 싫은 것이 존재한다.
이럴 때 핏속에 남아 있는 조선 시대의 명분론이 작동하는 것은 아닐까? 싫은 것은 하고 싶지 않지만 해야 할 경우, 이를 거절할 명분은 대상이 나쁜 일이, 잘못된 일이 되어야 한다. 이를 증명한 근거를 댄다. 그 근거는 듣는 이들의 공감을 살 수 있는 근거여야 한다.
싫은 것을 택하지 않을 자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좋은 것을 택하지 못하게 할 때 평등하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이때는 좋은 것을 하고자 하는 욕심, 욕망이 작동해서 일 것이다.
모든 가치 판단이 이를 근거로 일어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진짜 옳은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닐까? 아니, 정확히는 ‘이제는 알 수 없다’일 것이다. 좋고 싫음으로 판단을 해 온 역사와 그렇게 판단해 온 사람들이 길고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좋고 싫음은 각자 살아온 삶의 경험이다. 옳고 그른 것은 선형적 시간상에서 변하는 기준과, 시간의 영향을 받지 않는 기준으로 구성될 것이다.
그럼, 옳은 것은 무엇인가?
그른 것은 무엇인가?
선한 것은 무엇인가?
악한 것은 무엇인가?
과거 철인이 옳다고 한 바를 옳은 것이라 여기기는 망설여진다. 어쩌면, 그의 의견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가 당시와 당시의 과거의 데이터를 모아 정리한 것이고 사견은 없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다만, 데이터를 모아 생각하고 검토하고 철학한 바는 사실일 것이다. 그래서 이런 과정을 거쳐 옳은 것을 정리한 철인의 말에 신뢰를 싣게 된 것일 뿐일 수 있다. 철인 외 사람은 철인의 말을 참고하고 자신의 경험을 축적해 옳은 것을 알게 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이 선하다고 말하는 것을 경험한다. 그럼 그 선한 것은 절대 선이 아니라 여러 사람에게 선한 것이다. 그리고 여러 사람이 선하다고 판단한 바는 사회적 규범이 되고 그것이 유산으로 전해지고 있을 것이다. 악한 것도, 그릇 것도, 옳은 것도 이 범주는 넘지 못할 것으로 생각된다. 인간은 스스로의 선택에 따라 사회적 개인으로서 혹은 고독한 개인으로서 산다. 그럼에도 오감으로 전해지는 바와 자신의 경험으로 사회적 규범에 동의하고 개인적 경험을 유지하는 삶을 살 것이다.
절대 선, 절대 옳음, 절대 악, 절대 그름을 반드시 규명할 필요는 느끼지 못한다. 다만, 좋고 싫음 만으로 가치 판단을 하는 것이 너무 가벼워 보일 뿐이다. 자신이 사회적 존재로 살든 고독한 존재로 살든, 가능한 한 옳고 그름, 선과 악을 구별하며 살고 싶을 뿐이다. 이런 마음이 이 이야기의 시작점이다.
이기적인 마음과 행동은 대체로 악하고 그르다고 판단한다. 혼자만 맛있는 사탕을 먹고, 때로는 남의 사탕을 빼앗아 먹기 때문이다. 혼자서 사 먹을 때 옳거나 선하다 할 수 없지만, 얌체라고 판단한다. 하지만 타인의 사탕을 강제로 빼앗아 먹으면, 그릇되고 악하다고 판단한다.
선하고 옳다고 판단되는 바는 이타적 마음과 행동이다. 타인을 돕고 보살피는 마음을 아름답다고까지 한다. 더욱이 행하는 자에게 손해를 끼치는 경우에도 이타적 마음과 행동을 전개할 경우, 존경을 얻는다.
그럼, 시간이 지남에도 변하지 않는 선하고 옳은 행동은 이타적 마음과 행동이다. 자신의 손해를 감수할 정도는 되지 않더라도, 타인의 어려움을 돕는 것은 사회적으로 옳음, 선함으로 분류된 사회적 규범이다. 고독한 존재로서의 옳음과 선함이란, 타인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마음과 행동일 것이다. 교류 없이 혼자 지내기로 결정한 고독이므로, 타인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사회적 법률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 범주에서 살아간다면 악하고 그릇된 범위에 발을 들여놓지 않게 될 것이다.
사회적 존재든, 고독한 존재든, 타인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사회적 법률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 마음과 행동, 그리고 판단과 선택이라면 선하다고 말할 수 없어도 옳게 산다고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다. 각자의 삶에서 타인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마음과 행동은 다양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타적인 마음과 행동을 한다면 선하게 산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 외에도 옳고 선하게 사는 마음과 행동은 또 있겠지만, 이 범위가 꽤 넓을 것 같아 이야기를 여기서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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