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험
*커버 이미지: Photo by James Coleman on Unsplash
내가 끝까지 지키려는 보물은 나의 아이다. 나로 인해, 원하든 원치 않든 세상에 나왔다. 나는 그 책임을 사랑으로 지려고 한다. 자신의 의지로 태어날 수 있다면 책임이 변한 사랑이라는, 약간은 순수하게 들리지 않는 표현을 굳이 쓸 이유는 없을 것이다. 만일 아이가 우리 부부의 꿈에 나와 '나 엄마 아빠에게서 태어나고 싶어'라고 의사를 전달했다면, 기쁨과 감사함으로 아이를 맞이했을 것이다. 책임 없이 순수한 사랑으로 대했을 것이다. 그만큼 내 세계에 자신이 없다. 그 세계는 내가 만든 세상이므로 더욱 그렇다. 깨달았을 때는 사회 활동이 어려운 시간이었다. '더 잘 할 수 있었는데'라고 때늦은 후회를 한다. '내가 더 잘 했다면 아이가 더 편하고 걱정 적은 생활을 할 수 있을 텐데' 싶다. 그래서 이렇게 이야기한 것이다. 책임이 변한 사랑.
아이처럼 함께 한 후에 보물이 되는 존재가 있다. 사물이라면 획득, 사람이라면 함께 한 후에 '내 보물이다'라고 인정한다. 보물에는 두 가지 속성이 있나 보다. '이것이 보물인지도 모르다니.' 가치가 없다면 금이라도 보물이 아니고, 가치가 있다면 흙이라도 보물일 것이다. 원하는 것이 보물일 수 있고, 시간이 지난 후 가치를 파악하는 경우도 있다.
아이는 오랫동안 태어나지 않았다. 조심을 한 것도 아니다. 비록 결혼하고 2년 간은 둘이서 놀자고 했지만 그 때도 조심을 하진 않았다. 결혼과 아이는 때가 되면 이루어지는 것이라 생각했다. 물론 나 혼자 만의 생각이지만. 생각은 혼자 했지만 둘이 비슷하게 생각했나보다. 결혼하고 4년이 지난 후에도 아이는 함께할 조짐이 없었다. 그래서 안 생기려나보다 생각했다. 처가는 처가대로 딸을 시집보내고 아이가 없어 안달을 했다. 다행이 우리집은 아무 말이 없었다. 그점은 지금도 고맙게 생각한다. 그 때였나? 직장에 무급 휴직을 냈다. 모아놓은 돈을 긁어 모으고 자동차도 팔았다. 그리고 생애 처음 미국으로 떠났다. 어학연수, 배낭 여행 모두 좋지만, 장기 체류 여행이라고 명명했다. 직업도 매너리즘의 연속이었다. 막 7개월짜리 프로젝트를 끝낸 참이었다. 반응도 좋았다. 고객사 사내 뉴스에도 나오고, 고객사 홍보로 9시 뉴스에도 소개됐다. 나에게는 좋은 간격이었다. 서비스업에 종사할 때 가장 필요한 재능은 사람에게 받는 스트레스를 소화하는 역량이라고 생각한다. 1995년 10월 졸업 전에 사회 생활을 시작하고 2005년까지 10년을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 전공과 무관한 사회생활이 어떤지 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성골도 진골도 아닌 이방인. 성과를 내도 자연스러운 결과로 보지 않고, 실수를 하면 당연한 듯한 시선. 그런 눈길에 아랑곳 않고 실적을 쌓고 인정을 받았다. 그리고 미국으로 떠났다.
2개월 15일 간의 뉴욕 체류는 사람 스트레스를 떨치고 나에게 집중한 시간이었다. 공원 벤치와 시립 도서관 계단에서 책을 읽고 도시락을 먹었다. 할렘가를 제외하고 걸어서 뉴욕 동서남북의 경계선에 닿았다. 지하철도 탔고 버스도 타봤다. 가장 싼 요금으로 보스턴에 2박 3일 간 작은 여행도 다녀왔다. 오래된 건물 속에 인터넷과 IPTV가 흐른다. 뉴요커처럼 마트 장을 보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노트북을 들고 1층 카페 벤치에서 모닝 커피를 즐겼다. 옥외 테이블에서 브런치를 즐겼고, 독립기념일 불꽃놀이를 그들 사이에 앉아 즐겼다. 지역 카페의 맛도 좋았다. 우유보다 에스프레소가 많은 진한 라테도, 원액이 탄산보다 진한 콜라도 좋았다. 330ml 캔 28개에 2달러 하는 맥주도 좋았다. 수입되지 않는(지금은 수입되고 있다) 라거 맥주에 즐거웠다. 식료품점에서 산 식빵이 우리 나라 전문 베이커리의 빵만큼 맛있었다. 갑자기 생크림 케익이 먹고 싶어 42번가 한인 빵집에 달려가기도 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돌아와 복직을 했다. 그리고 얼마 후 아이가 생겼다. 어쩌면 사람을 상대하는 직업을 가진 부부에게 잔존하는 스트레스가 장애물이었을지도 모른다. 지금 생각해도 얼굴이 빨게 지는 일이 있었다. 내일이 출산 예정일인데 밤중에 잔뜩 술이 취해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일 출산인 당사자인데도. '부모로서 아무런 준비도 되지 않았는데 아이가 태어난다'고 엉엉 울며 전화를 했다. 당사자에게 위로를 받은 밤이었다. 그렇게 얻은 아이가 중학교 졸업을 앞두고 있다.
삶에서 호호 불어 닦고 모시고 산 보물이 있다는 것이 나에게는 의외의 일이다. 난 한 번도 보물을 찾아 모험을 떠난 적이 없다. 하고 싶은 일이 있어 시작한 경우는 있어도. 아마도 나에게는 원하는 것이 보물이 아닐지 모르겠다. 하고 싶은 일은 하고 싶은 이유가 있어서 일 것이다. 하고 싶은 이유가 있다는 것은 그 일에 가치를 느꼈기 때문이 아닐까? 가치를 느끼지 않는데 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단지 갖고 싶어서일까? 호기심? 흥미? 모르겠다. 적어도 나에게는 하고 싶은 일과 보물은 이원화된 개념이다. 지금까지 그랬다. 만일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대한 태도를 '가치를 느끼고 이것을 획득하고 싶어서'라고 생각하면 그 일은 나에게 보물이 될까? 과연 보물은 무엇일까, 나에게?
어쩌면 없어진 후에도 영원히 잊혀지지 않는 것이 보물일지 모른다. 지금은 무엇이 그런가? 돈인가? 필요한 것을 직접 생산해 낸다면, 그리고 그 소재나 자재, 원료도 직접 구할 수 있다면 아마도 돈은 가치가 없을 것이다. 식재료, 신발 자재, 옷감, 집 자재를 직접 구하고 생산하고 구축할 수 있다면 나의 세계의 경제에서 돈은 필요없을 것이다. 모든 것이 분업화되어 있고 주위에 아스팔트만 가득한 곳에서 살다보니 필요한 것이 있을 때는 돈이 있어야 한다. 그럼 돈은 보물이 아닌가? 나에게 보물은 무엇인가?
#보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