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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브리엘의오보에 Feb 03. 2022

진실한 사랑인데 응원이 없어


백사전은 중국 항저우의 백사 전설이며 1736년 경극 희곡으로 데뷔했다.


백사 백소정과 선비 허선의 사랑 이야기다. 배경은 항저우 서호다. 비를 피하는 백소정에게 허선은 우산을 빌려주고, 백소정은 허선에게 호감을 갖게 되면서 이 이야기는 시작된다. 진강 금산사 승려 법해는 도력이 높은 법사로, 요괴를 조심하라고 허선에게 경고한다. 결국, 법해에 의해 백소정은 금산사 뇌봉탑 아래 봉인되지만, 백소정의 자매인 소청이 도술을 연마해 백소정을 구출하는 것으로 극은 마무리된다.



이 이야기는 도력이 높은 승려가 진실된 사랑을 나누는 부부의 고난이 된다. 도력이 높은 승려는 선(善)이고, 요괴인 백소정은 악(惡)이며, 요괴와 결혼한 허선은 피해자가 되는 것이 일반적인 설정이다. 이 이야기에서 법해는 악, 백소정과 허선은 피해자다. 요괴와 인간계를 분리하려는 법해의 활동은, 인간계라는 사회에서는 정의일 것이다. 요괴와 인간계의 교류를 막을 이유는 무엇일까? 백소정 외 요괴가 인간을 잡아먹고 인간계를 혼란에 빠뜨렸기 때문이다. 도력이 높은 법해는 진실을 보는 눈이 없는 것인가. 도력을 쌓는 동안 벽창호가 되어 고지식해져 버린 것일까? 진실에 눈을 감고 요괴는 악이란 확신에 요괴와 인간계의 교류를 막은 것인가? 백소정과 소청은 인간계를 혼란케 하지도 인간을 잡아먹지도 않았다. 간을 빼먹으려고 인간 남자를 유혹한 구미호도 아니다.



우리는 이 이야기의 구도에 낯설지 않다. 드라마를 예를 들어보자. 조직 출신의 남자 친구는 의리가 투철하고 의(義)를 실천하는 인물이다. 조직간 항쟁에서는 무서운 맹장이나 일반인을 괴롭히거나 피해를 준 적은 없다. 오히려 약자를 보호하고 도왔다. 둘은 결혼을 전제로 사귀고 있으며 여자 친구의 부모에게 허락을 받기 위해 인사드리러 간다. 여자 친구의 부모는 어떻게 알았는지 남자 친구가 조직에 몸 담고 있는 것을 알고, 결혼 반대는 물론 악인 취급에 서슴지 않다.



진실에 눈을 감은 우리는 과연 옳게 살고 있나? 진실에 눈을 뜬다면 누구도 슬프지 않았을 텐데, "그 사회에 있다면 모두 악" 혹은 "지금은 그렇지 않아도 가능성은 충분"이라는 근거 없는 가능성을 사실로 삼는다. 굳이 사랑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회의실에서 근거 없는 가능성에 호도되는 동료를 본 적이 있다. 이유는 매번 다르다. 그냥 싫던지, 조직에 방해되니 내보내려 하던지. 이유는 사람을 모을 수 있는 사람의 시각에 좌우된다. 진실을 볼 역량이 없는 사람은 많다. 그러니 특별하거나 희소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필요 없는 슬픔이 생긴다. 이런 일이 없어도 삶은 충분히 슬프고 괴롭고 아프고 화가 나는데. 


혹시 관객들도 숨어서 백소정과 허선을 응원하는 것은 아닐까? 드러내기에, 백소정은 요괴고 허선은 요괴에게 속은 바보이므로. 이로써 백소정과 허선은 응원군도 없이 외롭게 둘이서 손 잡고 이 세파를 이겨야 했던 것인가? 그래서 더 힘들었던 것인가? 세상의 환영을 받아야 정상적인 사랑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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