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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법은 그냥 한다

by 가브리엘의오보에

결심에 얽매인다.


결심을 세운다. 하고 싶은 일이 있다. '이 일은 해야 해.'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하고 싶은 일에 닿을 방법을 찾는다. 그 방법으로 계획을 수립한다. 새해이니 새로운 마음으로 심기일전(心機一轉; turning over a new leaf)한다. 하지만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었음을 자각한다. 그때, '해야 해'라고 마음을 다진다. '의지를 발휘해'라고 독려한다. 장애에 굴하지 말라고 용기를 북돋운다. 오히려 일이 되지 않고 결심에 얽매인다. 결심이 '해야 해'라는 의무로 변한다. 결심을 세웠으니 해야 하고, 해야 하니 의무가 됐다. 일이 잘 진행되지 않는다. 아니, 결심에 마음이 얽매여 일에 집중하지 못한다.


결심에 얽매이는 이유는 무엇인가? 의심이 인다. 의심을 구체적으로 떠올리지 못하지만, 스스로 세운 결심임에도 자신이 없다. 하고 싶은 마음뿐이다. 첫 의심의 싹은 '필요하지만 할 수 있을까?', '하고 싶지만 할 수 있을까?'이다. 불안이 생기면 '할 수 없는 이유'가 떠오르기 시작한다. 마치, 이루지 못했을 때 변명을 찾는 것처럼. 의심은 불안을 낳는다. 해내지 못할 것 같아 마음이 급해진다. 불안은 의심을 가중한다. 할 수 없는 이유가 이렇게 많을 줄 몰랐다. 왜 이런 결심을 했는지 스스로를 의심한다. 마음이 난장판이다. 일을 벌인 후에야 '할 수 있는 일'인지 알게 됐다.


방법은 있다. 그냥 한다. 결심을 세운 대로 그냥 한다. 결심은 잊은 듯, 계획한 대로 몸을 움직인다. 마치 숨을 쉬는 것처럼, 마치 배가 고파 밥을 찾는 것처럼. 그냥 한다. 스마트폰에 설정한 알람이 울리면 알람에 표시된 일을 한다. 오늘은 조사 기획하는 날이니 조사 기획한다. 오늘은 작성하는 날이니 작성한다. 오늘은 퇴고 게시하는 날이니 퇴고 게시한다.


이는 알고 있는 내용이다. 독서를 했든 가르침을 받았든 풍문을 들었든 알고 있는 일이다. 의심이 생기고, 불안이 일어나고, 의심이 가중되고, 결심이 의무가 되고 이에 얽매일 때마다 생각을 감각으로 전환한다. 이는 알고 있는 내용이다. 의심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다만, 인위적으로 의심을 줄이려면, 생각에 집중한 뇌의 관심을 감각으로 돌린다. 심호흡을 깊게 한다. 크게 숨을 들이쉬고, 들이쉰 공기에 가슴이 부풀어 오름에 집중한다. 크게 숨을 내쉬고 가슴이 내려감에 집중한다. 혹은 악력기를 잡고 악력기의 양 다리가 서로 닿도록 집중한다. 이렇게 관심을 돌리고 다시 일에 손을 쓴다. 의심이 들면 호흡을 하거나 악력기를 든다. 의심이 들면, 관심을 몸의 감각으로 돌린다. 의심과 불안에 결심을 수행하지 못하면, 배운 것이 소용없는 일이 된다.


욕망과 능력 사이에서의 우왕좌왕은 흔한 일이다. 하고 싶은 일이 있고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할 수 있는 일이 시시해 보인다. 많은 돈을 갖고 싶다. 최근 돈을 버는 방법은 주식 투자라고 한다. 주식 투자 방법을 면밀히 조사하고, 고수의 경험을 청취한다. '이렇게 하면 되겠다!'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고, 마련된 자금으로 전개할 수 있는 주식 투자 방법을 다시 확인한다. 확실한 방법이라 판단했다. 투자했고, 이익이 크지 않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정보를 찾고 조사를 하는 일이다. 돈을 많이 버는 일이 아니다. 적합한 정보를 찾고 조사하는 일이다. 조사는 과거를 정리하는 일이고, 미래의 큰 이익을 만들기 힘들다. 조사한 내용을 정리하고, 이 일에 익숙지 않은 사람이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풀어낸다. 그 내용을 정리해 책으로 만들어 판매한다. 기대한 큰 이익은 아니어도 꽤 괜찮은 이익을 만들었다. 들어간 자본은 컴퓨터와 인터넷과 내 손의 수고로움이다. 할 수 있는 일이므로 손의 수고로움이다. 전기요금과 통신료와 내 시간이다. 이 비용에 비하면 적지 않은 돈을 벌었다. 원하던 큰 금액은 아니더라도. 중요한 점은, '조사를 해서 책을 만들어야 해'에 얽매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냥 했다. 집중하고 조사하고 정리하고 '이해할 수 있을까?' 검토하고 퇴고했다. 장애가 없었다. 일이 막히지도 않았고, '아, 책상에 앉아야 해..'라는 마음도 들지 않았다. 잘하는 일이었다.


미래의 큰 이익은 상상에서 나온다. 과거에 발을 딛고 미래를 잡을 수 없다. 과거는 과거에 유효하다. 인간은 앞으로만 가는 선형적 존재여서, 발은 지금 외에는 디딜 수 없다. 그러니 과거에 디뎠다는 생각은 오해다. 미래를 잡으려면 상상한다.


상상을 실현하는 방법은 '그냥 하기'이다.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방법을 찾는다. 방법을 찾는 방법은 조사가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을 구체적으로 상상하는 것이다. 주름 하나, 솜털 하나까지 상상하려고 노력한다. 그렇게 상상을 구체화하면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이 구분된다. 상상하는 만큼 이룰 수 있다.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할 수 없는 일은 사람을 찾는다. 혼자 벽에 머리를 박지 말고 할 수 있는 사람을 찾는다. 그가 내게 그 일을 '해주도록' 한다. 그 일이 내가 아니라 그에게 어떤 이익이 될지 알려준다. '그걸 해주면 돈을 줄게'가 아니라 '그 일을 하면 네가 얻을 수 있는 이익'이 무엇인지 일깨워준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하냐고? 내 일인데 어떻게 그에게 이익이 되냐고? 이 일로 인해 그와 내가 관계를 맺는 것이다. 내가 그의 이익이 되는 것이다. 이익이 되지 않는다고? 지금까지 어디를 바라보고 어떻게 살아왔나? 무엇을 바라고 있나? 그가 듣기에 그 일(나와의 관계)이 이익이 될 수 없다면, 나는 누구인가, 지금?


인간은 자신의 욕망을 절대 혼자 이루어낼 수 없다. 아니, 혼자 이루어낼 수 있지만, 많은 시간이 들고, 그 시간이 다하기 전에 욕망이 식어 버린다. 욕망이란 그런 속성을 가진다. 이제 어디로 갈지 우왕좌왕하게 된다. 쉬운 일은 마음이 무겁고 발이 앞으로 나아간다. 힘든 일은 힘들다 느끼고 발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지만, 목적지에 가장 빨리 닿는 방법이다.


할 수 있는 일로 소원을 삼지 않는다. 다만, 할 수 있는 일의 다음 단계를 목표로 삼는다. 그리고 하고 싶은 일은 그대로 추진한다. 하고 싶은 일을 구체적으로 상상한다. 할 수 있는 일을 구분한다. 할 수 있는 사람을 찾는다. 이 모든 것을 하나로 통합한다. 즉, 방법의 문제다. 결심에 얽매여 일을 실패로 몰지 않는다. 그냥 한다. 결심 자체의 실현 가능성에 얽매이지 않는다. 문제집을 풀다가 풀지 못하는 문제를 만난다. 해답과 풀이를 찾지 말고 교과서를 펴고 그 문제를 푸는 방법을 식별하고, 그 부분을 다시 공부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실력이 쌓인다는 말을 인정한다. '아, 다시 교과서를 펴라고?' 생각하지 말고, '해설지를 보고 공부해도 되잖아. 훨씬 효과적인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해설지 내용을 기억할 뿐이다. 내가 부족한 부분을 문제를 통해 알았으니 부족한 부분을 충전하면 문제는 풀리고 나는 성장해 있다.


스스로를 '할 수 없는 일을 안겨준 상사'로 만들지 않는다. 스스로는 자신의 멋진 상사, 무뇌충이 아닌 유뇌인으로 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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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image: Photo by Mathias Jensen on Unsplash


#실현 #구현 #도달 #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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