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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성한 Dec 19. 2019

패션도시 멜번의 날씨

호주 멜번에 사는 한 버스기사의 삶 이야기

하루에 사계절을 다 경험할 수 있는 곳 멜번, 이런 이야기는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한국에서 살다온 내 입장에서 왜 그런 이야기를 하는지는 알겠으나, 한국의 겨울처럼 눈이 내리거나 하지는 않으니 그냥 3 계절 정도 겪는다는 것이 더 깐깐한 표현일 것이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여러 가지 날씨가 뒤죽박죽 되는 날씨가 참 자주 있다. 한때 전 세계 기상청중에 멜번의 기상청이 제일 꿀보직이라는 말이 있었다 한다. 어차피 맞추는 것이 불가능하고, 예측이 어긋나도 대부분 사람들이 그다지 신경도 안 쓰니 말이다. 하지만, 요즘은 앱으로 보는 날씨도 상당히 정확한데, 시드니의 그것에 비교하여 멜번날씨를 보여주는 앱은 그 그래픽이 참으로 다양하다. 시간에 따라 그림이 확확 달라지는 경우가 많으니 말이다. 참고로 이번 금요일은 우리 동네 기준으로 최고기온 43도가 예상되고 있다.

물론 그다음 날은 최고기온 20도로 '뚝' 떨어지는 멜번 다운 날씨가 예측된다.

어떻게 표현해도 이러다 저러다 하는 멜번 날씨는 골칫거리이기도 하지만, 참으로 매력적이기도 하다. 예전에 시드니 살 때는 날씨가 하도 평이하여 그날 입었던 옷을 내일 입어도, 다음 달에 입어도, 6개월 후에 입어도 그렇게 문제가 되진 않지만, 멜번에 살면서는 매일 날씨를 생각해서 옷을 준비하고, 만남을 약속하고, 일정을 짜고, 거기다 변덕 부릴 날씨에 대비해서 여분으로 이것저것 챙기고, 백업플랜을 생각하게 된다. 물론, 그런 준비들이 무용지물 되어버리는 경우도 자주 있으니, 그냥 '산다는 것이 그런 거지.'라며 철학 근처도 안 가본 사람이 뭔가 깨닫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내 입장에서는 이런 날씨를 아주 사랑한다. 우리가 드라마나 영화 볼 때도 너무 뻔한 스토리는 그저 그렇지 않은가? 예측이 불가능하고, 반전이 생기고, 이런 요소들이 있어야 재미가 배가 되지 않는가. 그런 면에서 나는 멜번의 날씨는 참으로 매력적이고, 개인적으로 사랑한다. 어찌 보면 멜번의 날씨와 비슷한 성향을 지닌 내 아내를 사랑하는 이유도 여기 있으리라.


어제는 내일의 예행연습으로, 누가 기획했는지는 알 수가 없으나, 35도 정도까지 수온주가 올라갔다. 버스 운전사의 캐빈에서는 따가운 햇볕을 피할 방법이 따로 없으니, 한두 구멍으로 나오는 버스 에어컨은 버스기사에게는 그다지 소용이 없다. 좀 큰 버스터미널에 회사 매니저들과 사무직 직원들이 출동하여 시원한 생수를 제공해주긴 하지만, 화장실을 자주 왔다 갔다 하기 난감한 기사 입장에서 벌컥벌컥 뭘 마신다는 것도 쉽지가 않다. 배우 하정우가 영화에서 그러했듯 병아리 목 축이는 정도로 입을 적셔서 말라버린 입술을 다스리고, 달아오른 오른쪽 팔을 차게 적셔주는 정도로 만족해야 한다.


멜번을 방문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고, 날씨에 대해 내게 누군가 묻는다면 이런 답을 해주고 싶다. 그냥 얇은 옷 여러 벌을 준비하고, 수시로 변하는 날씨에 그대로 적응하며 도시를 즐겨보라. 좀 더 제대로 즐기려면, 여러 벌의 옷의 조화도 잘 생각하여 그동안 잠자고 있던 패션인으로써의 감각도 함께 살려내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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