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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성한 Jan 06. 2020

호주의 산불, 그리고 자원봉사 소방관

호주 멜번에 사는 한 버스기사의 삶 이야기

공기 좋기로 유명한 호주, 그중에서도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다는 멜번. 멜번에 살면서 날씨가 좋다는 것이 어떤 기분을 선사해주는 것인지 제대로 배웠다고 할 수 있다. 이전 날 밤새 흩뿌린 비가 그친 아침의 바깥 풍경은 실로 청명함 그 자체이고, 감히 선글라스를 끼고 그 고유의 색상을 망쳐버리고 싶지가 않다.


그런 곳이 몇일 전부터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건조한 여름, 바람이 강한 여름이 되면서부터 곳곳에 산불이 나 대피령이 내려졌다는 뉴스가 나오더니, 이젠 호주 역사상 가장 최악의 산불 사태로 번져나가고 있고, 더 큰 문제는 앞으로도 몇 주간 더 이 상황이 지속될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어제 호주 총리는 앞으로 8주 정도, 비슷한 상황이 지속될 것이라는 암울한 발표를 하기도 하였다. 산불로 인한 연기가 전 도시를 뒤덮었다. 분명 일기예보를 보여주는 앱에서는 밝게 웃는 해님 표시가 뜨지만, 도시는 하루 종일 스산한 안개가 먼발치에 자욱하고, 멀리 시티의 마천루가 보이던 우리 집에서도 시티가 어디인지 가늠할 수가 없는 상황이 되었다.

이 역대급 산불로 인해 빅토리아 주에서만 동원된 소방관만 수천 명이고, 이미 소방관들 마저도 각종 인명사고로 지쳐나가고 있으며, 그 중에는 사망그사고 까지도 있었다. 이들 중 많은 수는 자원봉사 소방관인데, 이들은 평소에는 본인의 생업에 종사하다가 훈련 시나 위급 시 소집되어 자신의 맡은 역할에 따라 산불진압에 투입되기도 한다. 지금은 시기가 시기인 만큼 최전선에도 많은 수가 투입되어 산불진압, 인명구조 등에 힘을 쓰고 있다. 마침 내가 있는 버스회사에서도 자원봉사 소방관이 하나 있어 요즘엔 빅토리아주 시골지역으로 파견되어 있다. 버스회사에서는 이 소방관에서 정상적 급여를 지불하고(사회환원 차원), 정부는 회사의 지원을 재지원해줘서 일선의 자원봉사 소방관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고 생계에 변화가 없도록 하는 시스템인데, 이는 아주 운이 좋은 케이스이다. 대부분의 자원봉사 소방관의 경우, 자신의 휴가를 이용하거나, 아예 생업을 포기하고 커뮤니티를 지킨다는 일념으로 목숨 건 진압작전을 펼치고 있으니, 지금 호주 대부분이 사회에서는 이들을 위해 수당을 지급해야 한다는 여론이 넘쳐나고 있다.

호주 뉴스는 잘 안 보던 아내마저도 막상 자신이 사는 동네의 공기 질이 달라지고 시야가 달라지니 걱정이 되기 시작하였다. 안 하던 기도도 저절로 하게 되고, 안 보던 호주 뉴스도 눈여겨보게 된다. 나도 회사에 출근하여 쉬는 시간을 지내면, 동료들과 산불 이야기 외에는 거의 할 이야기가 없는 상태이다. 마침 어제부터는 아내의 기도를 들어주었는지 비가 내리고는 있다. 뉴스에서는 하루 이틀 정도 약간의 휴식이 있겠지만, 목요일에 다시 최악의 상황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전망을 내어놓고 있다. 다시 기도해본다. 하나님, 장대비 몇일만 내리게 해 주세요. 모두가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당신이 은혜를 베풀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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