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2
아르고스는 그리스 로마신화에 나오는 생명체다. 어렴풋한 기억을 되짚어 보면 이렇다. 헤라가 자신의 남편 제우스를 감시하기 위해 눈 100개의 생명체 아르고스를 이용한다. 근데 어찌어찌해서 헤르메스가 아르소를 죽이고, 아르고스를 기리는 의미에서 그의 눈 100개를 공작새의 꼬리에 갔다 붙인다. 이게 나의 어렴풋한 기억 속 공작새의 정의다
21세기의 공작새는 그 꼬리털의 화려함을 빗대어 표현할 때 쓰인다. 닭백숙처럼 공작새의 털을 다 뽑고 몸통만 남긴다면 눈에 보이는 크기의 글쎄 눈에 보이는 것의 1/3 정도 나올 것이다. 그래서 내실에 비해 외적으로 부풀리는 회사생활하는 사람들을 빗대어 공작새라고 표현한다.
기술부서를 붕괴시키는 공작새
공작새에는 다양한 종류가 있다. 특정 출신을 거론하는 이들. 컴퓨터를 부전공했다는 이들. 어느 프로젝트를 참여했다는 이들. 이런 화려한 이름만 들으면 마치 그들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이라는 착각이 든다. 그리고 대부분 이들은 자신감 있게 "내가 했다" 또는 "내가 할 수 있다"라고 말하기 때문에 뭇사람들은 점점 빨려 들어간다.
하지만 어느 업계나 그렇듯 실제로 할 수 있는 사람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별게다. CTO 없는 조직에서는 유독 심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 세상에서는 기술 수준이 100인 사람과 기술 수준이 10인 사람이 같은 수준으로 취급받는다. 기술 수준이 높은 이는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아 하고 그런 반발심으로 회사 일에 100%의 능력을 발휘하지 않으려 한다. 그렇게 기술자는 그 자리를 떠난다. 반면 공작새는 특유의 언변으로 입지를 다져 나간다. 그리고 그들이 매니저가 되고, 더 높은 자리를 올라간다. 그렇게 한 조직의 기술 부서는 망가진다.
공작새의 존재 유무보다 중요한 건...
앞서 말했듯 공작새는 어디에나 존재하기 마련이다. 아무리 법과 사회가 매춘을 금지하려 했어도 지금까지 존재하는 것처럼 공작새는 결코 사라질 수 없다. 그들의 영향력을 상쇄시키는 것이 조직을 살리는 최선의 방법이다. 나는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게 매니저의 역할이라고 본다. 건축회사 개발부서의 매니저들은 대부분 건축 출신이다. 그렇다는 말은 높은 확률로 건축의 프로세스는 알지만 프로그래밍에 대해서는 모른다는 뜻이다. 어떤 이들은 공공연하게 개발 프로젝트를 위해 건축만 알면 되지 프로그래밍을 알 필요가 없다고 말할 정도이다. 와우.
하지만 나는 매니저의 역할이 단순히 프로젝트의 진척을 따지는 자리가 아니라고 본다. 대부분 상황에서 매니저는 높은 연차 또는 직급을 가진다. 또한 수직적인 건축업계 특성상 그들이 많은 결정권 또는 힘을 가진다. 사실 이 상황부터가 문제 이긴 하지만... 어쨌든 그들이 기술적 인사이트를 가지고 공작새를 걸러낼 수 없다면 이 업계의 프로그래밍은 절대 발전할 수 없다. 내 모든 걸 걸고 얘기할 수 있다. 절대 발전할 수 없다.
눈뜨고 코를 베어가는 공작새
위 내용에서 한 회 사의 미시적인 차원의 공작새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그러나 이들이 만약 회사의 대표라면? 그리고 이들이 당신의 회사에 접근해, 화려한 깃털로 프로젝트를 제안하고 수주할 가능성도 있다. 이런 경우 대부분의 말로를 보았다. 공작새보다 부족한 기술 수준으로 인한 주도권 뻇김. 마땅한 대안도 없어 돈만 계속 나가는 상황. 그렇게 데어도 또 그들과 할 수밖에 없는 상황. 끊임없이 공작새들을 키워주는 이 상황을 보고 있으면 내 눈과 귀가 원망스러울 지경이다.
공작새와 살아가기 위해서는
내가 너무 부정적이고 암울한 이야기를 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내가 아는 한 꽤나 많은 건축에서 프로그램을 다루는 사람들은 공작새다. 그럼 그들과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방법 1. 절대적인 기술격차로 깃털을 펼치지 못하게 만든다.
앞서 말했듯 공작새들은 큰 이름뒤에 숨는다. 그들이 숨은 이름을 걷어내면 실제 기술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기술적 챌린지가 들어오면 교묘히 도망가는 그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기술 우위에 있다면 비록 그들이 언변으로 모든 걸 커버 치려 해도 포위할 수 있다.
방법 2. 내 편으로 만든다.
나는 비위가 좋지 못해 잘하지 못하는 방법이다. 내가 본 공작새들은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가 강하다. 그래서 그들의 마음을 살살 긁어 주면 생각보다 쉽게 넘어오는 것을 볼 수 있다. 인간관계를 진심으로 다가가라고 했지만 그렇게 안될 때가 많다. 그들이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구를 해소해 주고 내 편으로 만드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방법 3. 신경을 끈다.
공작새를 보고 있으면 나는 부아가 치미는 편이다. 그러면 순간적인 판단에 "함정을 파서 한번 골탕 먹여야겠다"라는 생각도 드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머리를 잘 식혀보면 그건 좋지 않은 방법이다. 나의 이론엔 이렇다. 누군가와 싸움을 시작하면 싸움을 하기 전보다 수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런 불필요한 긴장감을 만들 필요는 없다. 이건 <손자병법>에도 나온 이야기다. 그러니까 싸우려 하지 않는 게 에너지의 총량으로 보면 더 나은 방법이다. 사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거다. 나도 똑같은 인간이 된다. 그런 계략을 짜고 그들을 상대하다 보면 어느새 나도 물들어 그들과 같은 수준이 되고 말아 버린다. 그러니 신경을 끄는 게 삶에 가장 좋은 방법이다. 비록 그게 어려운 상황일지라도.